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이정섭 형사3부장을 향해 “이해충돌”이라고 지적해, “법무장관이 말뜻도 모른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김 전 차관의 성범죄·뇌물 의혹 등을 수사했던 검사가 불법 출금 의혹을 수사하는 것은 이해상충이라는 게 박 장관의 주장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해충돌이라는 법률용어를 잘못 쓴 사례”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 장관이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앞두고 김학의 관련 수사팀을 해체하기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해 잘못된 법리를 들이대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의 지시로 출범한 ‘김학의 수사팀’...박 장관은 ‘잘못된 법리’ 들이대며 해체추진?

'김학의 수사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시로 출발됐다. 대검찰청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재임했던 지난 1월 불법 출금 의혹 사건을 배당받은 안양지청이 사건을 뭉갠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수원지검의 이 부장검사에게 사건을 재배당했다. 따라서 팀장인 이 부장검사를 교체하려면 명분이나 구실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부 반발을 잠재울 명분으로, 박 장관이 미리 포석을 깔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박 장관은 지난 14일 아침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피의자로 수사, 피해자로 수사, 이것을 이해충돌이라고 하는가”라는 짧은 글을 올렸다. 그 글과 함께 김 전 차관의 파기환송심 관련 내용을 다룬 언론 보도가 링크돼 있었다.

박범계 장관이 “피의자로 수사, 피해자로 수사, 이것을 이해충돌이라고 하는가?”라는 짧은 글을 통해, 이정섭 부장검사와 수사팀을 해체하려는 명분을 쌓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박범계 페이스북 캡처]
박범계 장관이 “피의자로 수사, 피해자로 수사, 이것을 이해충돌이라고 하는가?”라는 짧은 글을 통해, 이정섭 부장검사와 수사팀을 해체하려는 명분을 쌓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박범계 페이스북 캡처]

대법원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스폰서 뇌물' 혐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심의 판단을 확정하면서 '성 접대' 혐의에 대해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됐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4천여만 원의 뇌물 혐의에 대해서도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로 뒤집힐 경우, 불법 출국금지 수사·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박범계의 논리, 김학의가 피의자인 사건과 피해자인 사건을 동일 검사가 수사하면 이해충돌

당일 출근길의 박 장관은 기자들을 향해 “수사팀은 김 전 차관의 성 접대·뇌물 사건에서 김 전 차관을 피의자로 수사했고, 이번 출국금지 사건에서는 피해자로 놓고 수사를 했다”며 “그것을 법조인들은 대체로 이해 상충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의 짧은 글의 의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박 장관의 발언은 ‘2019년 김 전 차관 성범죄·뇌물 의혹을 수사한 이 부장검사가 불법 출금 의혹까지 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즉 김 전 차관이 뇌물 사건 재판의 ‘피고인’이면서 불법 출국금지 의혹의 ‘피해자’라는 이중적 상황을 꼬집었다는 것이다. 이 부장검사는 현재 김 전 차관 뇌물 의혹 사건 공소 유지도 맡고 있다. 대법원이 지난 10일 이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이 부장검사는 뇌물 혐의를 재차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박 장관이 언급한 ‘이해충돌’을 ‘정치적 해석’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차관의 뇌물 혐의가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나올 경우, 현 정권에서 김 전 차관을 출금한 게 무리한 조치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검찰청의 한 차장검사는 “이 부장검사가 불법 출금 사건 수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혹시나 김 전 차관의 뇌물 사건 공소유지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있다고 박 장관이 우려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 “피의자와 피해자가 뒤섞이는 사건은 오히려 동일 검사가 담당해야”

특히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상황이 이해충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박 장관이 ‘이해충돌’이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원지검의 관계자는 “어떤 사건의 피해자·피의자인 검사가 해당 사건을 맡게 될 때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것이 이해충돌이다. 이 부장검사는 이 사건의 피해자·피의자가 아니어서 이해충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의 A변호사는 ‘박 장관의 잘못된 해석’을 질타했다. 특정인에게 피의자와 피해자 신분이 뒤섞이는 경우가 많아, 이를 모두 이해충돌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A변호사는 “고소당한 피의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오히려 무고 혐의로 고소할 경우, 사기 사건 피의자이면서 동시에 무고 사건 피해자가 된다. 이런 경우 고소 사건과 무고 사건을 다른 검사가 맡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 “수사대상 중에 검사의 친인척 등이 포함된 게 이해충돌”

또다른 검찰 관계자 역시 박 장관이 이해충돌이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저격했다. 이해충돌은 검사의 ‘사적 이익’과 수사라는 ‘공적 이익’이 관련돼야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사대상 중에 검사의 친·인척이 포함돼 있거나 가족 회사가 연루돼 있어야 이해충돌이 생기는 것”이라며 “이 부장검사의 경우에는 사적 이익과 관련이 없으므로, 이해충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법조계 안팎에서는 ‘적절치 않은 용어 선택’이라며 박 장관의 포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박 장관이 무리하게 ‘이해충돌’을 거론한 배경에 대해 ‘정권 관련 수사팀을 해체’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는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이 부장검사를 교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춘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사팀은 불법 출금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기소해야 한다고 대검에 의견을 올렸지만 대검은 결재를 미루고 있다.

미루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수사팀을 해체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수사팀 해체를 위한 명분 쌓기”라며 “오히려 검찰 인사권을 가진 법무부 장관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 이해충돌”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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