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5전쟁 당시 서울대병원 학살극을 벌인 류경수 사단의 남침훈련 모습 [사진=연합뉴스]
6 25전쟁 당시 서울대병원 학살극을 벌인 류경수 사단의 남침훈련 모습

북한군의 불법남침으로 비롯된 6·25 전쟁 개전직후 서부전선 일대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된 대한민국 국군 부상병 다수는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서울 시내 여러 병원에 분산, 후송돼있는 상태였다.

1950년 6월28일 아침, 서울에 가장 먼저 입성한 인민군 제9 땅크여단 병력들이 서울대병원까지 들이닥쳤다. 당시 병원 내부는 부상장병과 미처 피난하지 못한 민간인 환자 및 가족들로 만원이었다. 병원 경비를 위해 남아있던 대한민국 육군 보병 1개 소대와 움직일 수 있는 전상병 80여명이 소대장의 지휘하에 뒷산에서 인민군에 응전했으나 모두 전사했다.

저항하는 국군을 전멸시킨 북한군은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끔 병력을 산개시켜 병원을 둘러쌌다. 병원을 점령한 인민군 장교가 “원쑤놈들의 앞잡이들이 여기 누워있다!”고 선동을 시작했고, 곧 학살극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병동을 순회하며 침대와 바닥에 누운 환자들에게 총을 난사한 뒤 총을 맞고도 죽지 않은 이들은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학살의 총성이 들리자 다른 병동에 있던 환자들은 급히 탈출을 시도했지만 병원을 에워싼 인민군들에게 모두 사살됐다.

일부 권총을 가지고 있던 장교들은 병실에서 총격전을 벌이다가 사살되거나 자살하기도 했으며, 인민군은 국군과 구분이 잘 안되자 환자의 가족들까지 살해했다. 당시 인민군은 심지어 국군 부상병이 있는 곳이 아닌 정신병동까지 들이닥쳐 정신병 환자들까지 학살을 계속했다.

인민군은 세 시간 동안의 학살극을 벌인 뒤 아직도 병원 안에 남아 있는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을 악착같이 잡아내서는 보일러실로 끌어가 10톤의 석탄 더미에 생매장하고 불을 붙였다.

학살을 당한 시체들은 병원 마당에 쌓인 채로 20일 동안 방치됐다. 병원에 썩는 냄새가 진동하자 북한군은 시체들을 병원 앞 큰길인 창경궁 앞 길에다가 시체를 쌓은 뒤 기름을 붓고 불로 태웠다.

이렇게 살해된 희생자의 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1963년 서울대병원에서 세운 추모비에는 1000여명으로 기록돼있다. 이와관련, 국방부가 편찬한 한국전쟁사 제1권에는 6·25 전쟁 개전 초기 서울대병원 상황과 관련,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서울대학병원에는 약 1백여명의 아군 환자가 수용되어 있었다. 이 곳에는 1개 소대의 아군 경비원들이 병원을 경비하고 있었는데 새벽에 적이 시내로 들어오자 이들은 뒷산으로 올라가서 지하다가 모두 전사하였다고 한다. 지휘관은 중령이라고 하는데 누구인지 지금까지 알 길이 없다. 적병들은 병실에 마구 난입하여 부상환자들에게 따발총으로 난사하는 蠻行(만행)을 감행하였다. 이 가운데는 시민들도 끼어 있었는데 구별조차 하지 않고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는 것은 天人共怒(천인공노)할 노릇이다”

국군 부상병보다 민간인 희생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인민군 난입직전 서울대병원측은 병원 지붕에 적십자기와 백기를 내걸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당시 간호학교 학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했던 두명의 간호사는 월간조선 1999년 6월호에서 이같은 학살극을 증언하면서 인민군을 이끌고 서울대병원에 들어닥친 군의관은 6·25 전에 월북한 서울대병원 의사였다고 밝혔다.

당시 국군 부상병이 수용돼있던 지금의 서대문로터리 적십자병원에서도 탈출하지 못하고 남아있던 부상병들은 전원 학살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두 곳 외에도 당시 국군 부상병이 있던 서울 시내 여러 병원들과 교회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학살이 벌어졌다는 증언이 있으나, 정확한 희생자들의 명단과 숫자는 파악되지 않는다.

1949년 8월 채택된 제네바 협약에는 '전지(戰地)에 있는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조약' 제12조에 "군대의 구성원과 기타의 자로서 부상자 또는 병자인 자는 모든 경우에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그들은 성별, 인종, 국적, 종교, 정견(政見) 또는 기타의 유사한 기준에 근거를 둔 차별없이 인도적으로 대우 또는 간호되어야 한다. 그들의 생명에 대한 위협 또는 그들의 신체에 대한 폭행은 엄중히 금지한다. 특히 그들은 살해되고 몰살되거나 고문 또는 생물학적 실험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6·25 당시 북한군의 이같은 서울대병원 학살극이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권과 같은 친북성향 정권이 아닌 박정희 정권 등 역대 보수정권에서도 왜 북한 공산군의 이런 끔찍한 만행을 교과서 등을 통해 교육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6·25때 서울에 가장 입성, 서울대병원 학살극을 일으킨 인민군 제9 탱크여단은 해방후 소련군으로부터 T-34 탱크 60대를 인수해 만들어진 남침 선봉부대다. 이 부대는 서울 점령직후 그 공을 인정받아 김일성으로부터 명예칭호로 '서울'을 수여받아 군사 명예부대 칭호인 '근위대' 칭호를 수여받고 ‘근위 서울제105땅크사단’으로 승격된다.

6·25 당시 부대장이던 류경수의 이름을 따 류경수 사단으로도 불리는 이 부대는 과거 김정일은 물론 최근에는 김정은까지도 가장 자주 찾아 격려하는 인민군 최정예 군대로 꼽히며 과거 남한 지명을 적어넣은 도로에서 남침훈련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상호 객원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