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명문 경기고등학교, 영어 기말고사에 “성별은 이분법적이지 않으며 다양해”

강남의 명문 경기고등학교가 최근 기말고사에 출제한 영어 시험문제가 제3의 성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아 물의를 빚고 있다.
강남의 명문 경기고등학교가 최근 기말고사에 출제한 영어 시험문제가 제3의 성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아 물의를 빚고 있다.

강남의 명문 경기고등학교가 최근 교내 시험에서 성별은 남녀 이분법적이지 않으며 다양하다는 이른바 ‘젠더 이데올로기’를 암시적으로 주입하는 내용의 문제를 출제해 물의를 빚고 있다.

경기고등학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명문 남자 고등학교다. 1900년 10월 3일 대한제국 시기에 개교해 현재까지 12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평준화 이전에는 우리나라의 최고 명문학교들 가운데 하나였다. 대선 후보 출마가 유력시되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경기고는 최근 치룬 1학기 기말고사에서 기존에 불특정 복수를 지칭하는데 사용됐던 대명사 “they”를 메리엄-웹스터가 “젠더 정체성이 이분법이지 않은 개인”을 지칭하는 3인칭 단수 대명사로 등재했다는 내용의 영어지문을 1학년 영어시험에 출제했다. 문제는 이 시험지문이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것.

지문은 “참고도서 회사 메리엄-웹스터가 명사 ‘they’의 새로운 정의를 유명한 웹스터 사전에 추가했다”며 “사전은 ‘they’ 단어를 ‘젠더 정체성이 이분법이지 않은 개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등재했다. 이것은 자신을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이분법적 정체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환영할 뉴스”라고 했다. 이어 “점점 더 많은 수의 지방정부와 학교들, 항공사들이 그들 스스로를 남성 또는 여성으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젠더들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젠더 선택지에 ‘X’를 도입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설명은 타고난 남녀 성별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적 조류인 ‘젠더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긍정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학생들의 성(性) 가치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별다른 고민 없이 혹은 의도적으로 ‘젠더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은연중에 주입하는 지문을 시험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 지문은 “메리엄-웹스터는 ‘he(그)’ 또는 ‘she(그녀)’의 자리에 ‘they’를 사용하는 것은 ‘기대되는 젠더 표현에 순응하지 않았거나 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인식한다고 명시했다”고 했다. 타고난 남녀 성별을 받아들이는 것을 “기대되는 젠더표현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부정적인 뉘앙스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지문은 단수 대명사에 ‘they’를 사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유래가 깊은 일임을 강조했다.

“메리엄-웹스터는 ‘they’라는 단어는 1300년대 후반 이래 단수 대명사로 사용돼왔다고 지적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 단어를 17세기 초에 사용했다. 1898년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그의 희곡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어느 사람(No man)도 전쟁터에 죽임을 당하기 위해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they)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 메리엄-웹스터는 오늘날 거의 모든 이가 단수 ‘they’를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용한다고 말한다.”

학교 측은 타고난 남녀 성별을 부정하는 이러한 편향적 내용의 지문을 제시한 후에 “이 글의 맥락과 다른 의견을 말한 사람을 고르라”는 문제를 냈다. 선택지는 다음과 같았다.

“①앤: 언어는 항상 변화하며, 진화하고, 언어 사용자들의 필요에 적응한다.

②브라이언: 모든 언어는 문법으로 알려진 다른 종류의 규칙들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언어들은 그 규칙들에 따른다.

③캐티: 메리엄-웹스터가 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개인을 위해 단수 “they”를 포함시킨 것은 새로운 대명사가 주류에 도달했다는 중요한 인식을 갖는다.

④다니엘: 단수 “they”는 남성도 아닌 젠더의 경우 “he” 또는 “she”를 대체할 수 있는 대명사가 되었지만 그것의 사용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⑤에밀리: 단수 “they”는 사람의 젠더, 인종, 신체 상태와 많은 다른 범주에 예민한 단어를 의미하는 편견이 없는 언어의 예이다.“

정답은 2번이다. 나머지 선택지들은 제3의 성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문장들이다. 특히 선택지 3번은 “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은 개인을 위해 they를 사용한 것은 새로운 대명사가 주류에 도달했다는 중요한 인식을 갖는다”며 제3의 성이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져 ‘주류’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선택지 5번은 “they는 편견이 없는 언어의 예”라며 남녀 이분법의 성별을 주장하는 것은 “편견”이라는 암시를 하고 있다.

이 시험을 접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경기고는 지난 5월 18일에 시행한 영어경시대회에서도 포브스 경제지를 인용해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정치편향적인 지문을 사용했다”며 “편향적인 시험 내용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항의를 해도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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