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남북조절위워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 채택을 위해 우리 정부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왼쪽)이 北 주석 김일성(오른쪽)의 모습.2021.07.03(사진=대한민국 외교부, 편집=조주형 기자)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남북조절위워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 채택을 위해 우리 정부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왼쪽)이 北 주석 김일성(오른쪽)의 모습.2021.07.03(사진=대한민국 외교부, 편집=조주형 기자)

지금으로부터 49년 전인 지난 1972년 7월4일,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통일을 향한 첫 대화나 다름없는 '7·4 남북공동성명'을 내놓은 날이다.

'최초의 남북공동성명'으로, 핵심은 바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었지만 반세기 동안 북한이 기획한 용어전술의 형태로써 왜곡됐다.

최초의 대화이기도 한 '7.4남북공동성명'이 49년 전 있었지만 여전히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책임은, 일명 '대남자주화사업'을 강조하고 있는 북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지난 1월 당대회를 통해 조선노동당 규약 전문의 일부 용어가 교체된 현상을 두고 국내 언론이 '남한 혁명통일론이 사실상 폐기됐다'는 해석을 내놓으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는 모양새다.

이에 펜앤드마이크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그 실체와 진위를 추적해봤다.

7·4 남북공동성명 전문. 2021.06.15(출처=국가기록원,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7·4 남북공동성명 전문. 2021.06.15(출처=국가기록원,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1. 최초의 남북공동성명 속 조국통일 3대원칙···모두 북한에 기만당했다

우선, '7·4 남북공동성명'은 지난 1972년 7월4일 서울과 北 평양에서 동시 발표된다. 통일부는 이 성명을 '남북 간 최초 공식 합의문서'로 봤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이 北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장 김영주·제2부수상 박성철 간 막후 교섭에 의한 것이었는데, 핵심은 '민족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원칙'이다.

첫 번째, '민족자주'란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라는 것이며 두 번째, '평화통일'이란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라는 것이다. 세 번째 '민족대단결'이란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최초의 남북공동성명은 북한에 의해 1년만에 일방적으로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북한은 '민족자주' 원칙을 '외세배격'으로 보고 주한미군의 한반도 철수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주장한 북한은 이를 '평화통일' 원칙이라며 '대남자주화'를 강요했다. '민족대단결' 역시 연북(聯北)·용공(容共)정부 수립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의 완전 철폐를 위한 대남사업의 용어전술로 악용됐다.

결국 핵심은 북한이 지난 71년간 추진해온 '대남사업'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북한의 대남사업의 여건은 어떠할까.

북한의 '6·25 미제 반대 투쟁의 날' 평양시군중대회(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북한의 '6·25 미제 반대 투쟁의 날' 평양시군중대회(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2. 北 조선노동당 규약 수정 두고 잘못된 해석 보도 일파만파···北 은닉·기만 고려 안해

이는 北 조선노동당 규약의 변화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지난 70년간 철저한 은닉·기만전술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수정된 노동당 규약 일부는 대외적 목적에 기인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지난 1월, 북한은 제8차 당대회를 통해 ▲ "전국적 범위에서의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과업 수행" ▲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 실현한다"는 문구를 ▲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 실현" ▲ "최종목적은 인민의 리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로 수정한다.

그런데, 지난달 1일 놀랍게도 국내 한 언론이 이같은 변화에 대해 "북한이 대남정책의 무게중심을 '공존'으로 두고 있는 추세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같은 해석이 진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

기자는 지난 2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26년간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했던 유성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만나 직접 그의 풀이를 들었다. 과거 20여 년간 국정원 재직 시절 유 前 원장은, 남북회담의 선임급 실무요원으로서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다음은 그와의 이야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27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했던 군사분계선 인근 '소떼길'에서 1953년생 소나무를 심었다.2018.04.27(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27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했던 군사분계선 인근 '소떼길'에서 1953년생 소나무를 심었다.2018.04.27(사진=연합뉴스)

#3. 남북회담 실무봤던 정보기관 고위 간부 "北이 공존을?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

-국내 모 언론이 지난달 1일 북한이 당 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NLPDR)' 문구를 삭제했기 때문에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했다는 해석을 내놨는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 적절치 않았습니다. 이번에 새로 개정된 '사회의 자주적'이라는 표현은, 주한미군철수를 통한 '민족해방'을 뜻합니다. '민주주의적 발전'이란, 결국 국가보안법 철폐와 공산주의의 합법화를 통한 '인민정권의 출범'을 의미합니다. 결국 기본 입장과 다르지 않다는 거죠. 게다가 '최종목적'에 대해 '온 사회의 공산주의사회 건설'임을 다시 명기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전(全)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 목표를 보다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게...걱정입니다.

-원장님, '공산주의'라는 표현은 북한이 지난 2009년 4월 제12기 최고인민회의에 이어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의에서 없애지 않았습니까?
▲ 북한은 그때 2009년 최고인민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을 수정하면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했었습니다. 그런데 10여 년만에 다시 명기했어요. 이는 2가지 측면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선 대내적 측면에서 북한 체제의 존립 기반인 '전(全)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이라는 목표를 부각해 北 김정은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거죠. 게다가 이번에 총 비서가 됐지 않습니까? 두번째는 대남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친북(親北)적인 분위기로 급변하고 있다는 정세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원장님 말씀으로는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위험하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이게 실현 가능할수도 있다는 것인가요?
▲ 조 기자님, 지난달 중순에 6.15남북공동선언 21주년일이었잖습니까? 그 공동선언 내용을 자세히 보시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근간으로 하는 고려민주공화국창립방안이 바로 북한의 통일 방안이죠. 그런데, 그러기 위한 '선결조건'이 바로 ① 주한미군 철수 ② 한미연합훈련 중단 ③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한, 사실상 우리 정부의 무장해제론이죠. 기자님이 말씀하셨던 7.4남북공동성명의 조국통일 3대원칙이 북한에서 어떻게 읽혔을지...

-듣고도 믿기가 어려운데요, 원장님. 혹시 北 김정은이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류의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까?
▲ 지난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미국은 대조선적대정책을 철회해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군대와 전쟁장비들을 철수시키며, 남북이 련방제 방식의 통일을 실현하는 데에 공동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남조선 당국이 제도통일을 고집하면서 끝끝내 전쟁의 길을 택한다면 우리는 정의의 통일대전으로 반통일세력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북한의 기존 입장이 반복된 셈이죠.

'북한 주체철학 - 철학사전(북한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지음)'에 명시된 '공산주의' 용어 설명. 2021.07.03(출처 및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북한 주체철학 - 철학사전(북한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지음)'에 명시된 '공산주의' 용어 설명. 2021.07.03(출처 및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4. '공산주의 =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 실현되는 사회'···'공존' 여지 없다

지난 2일 기자가 만난 유성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언급했다. 여기서 그가 언급한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북한 통제기구의 정수(精髓)인 조선노동당 규약에 거론됐다는 점에서 북한이 말하는 '공산주의'의 의미를 파악해 봤다.

기자는 최근 北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가 편찬한 '북한 주체철학 - 철학사전(1985년)'을 통해 북한에서 말하는 '공산주의'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주체사상의 요구에 맞게 사람과 사회가 개조됨으로써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를 '공산주의적인 원칙'이라고 제시하는데, 이같은 관계가 전면적으로 실현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결국 '수령1인체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언론이 북한의 노동당 규약 전문 수정을 두고 '남북공존'이라고 전망한 것에 대해 유 前 원장은 "그렇지 않다"라고 밝혔다. 그가 이같이 밝힌 근거는 바로 1975년 출판됐던 '북한 사회과학출판사 력사편집부'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리론'이라는 전략문을 통해 확인됐다.

문제의 해당 글에서는 "남조선 당국자들이 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을 성실히 지키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 5대방침대로 북과 남의 긴장상태 해소문제부터 풀고 ①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키며 ② 남북 간의 전면적인 합작과 교류를 실현하며 ③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며 대민족회의에 참가해 통일문제를 의사와 요구에 맞게 해결할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며 ④ 남북련방제를 실시하고 남북총선거를 준비해 북남이 대외관계분야에서 공동으로 나간다면 ⑤ 능히 민족적 존엄을 지키고 민족 내부문제를 우리 인민 자신의 힘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 할 수 있다"라고 밝힌다. 이를 통해 "조국통일 5대 방침을 실행해나갈 수 있다"라며 '평화통일'이라고 결론 짓는다.

1975년 북한 사회과학출판사 력사편집부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리론'의 한 대목.2021.07.03(출처 및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1975년 북한 사회과학출판사 력사편집부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리론'의 한 대목.2021.07.03(출처 및 사진편집=조주형 기자)

#5. 현 집권세력, 북한이 왜곡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에 어떻게 반응했나

이번 4일부로 7.4남북공동성명 49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당초 합을 맞췄던 ▲ 민족자주 ▲ 평화통일 ▲ 민족대단결이라는 3대 원칙은, 지난 1991년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라는 의제를 북한이 내걸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도마위에 올랐다.

그후에도 '평화'라는 표어 하나만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론과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주장까지 국내 정치권 안팎에서 지난 30년 동안 계속 거론돼 왔다. 심지어 이를 기어코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현 집권여당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7년 대통령선거에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을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쉬움으로 남는다"라고 말했다. 그외에도 이규민 의원 등을 비롯해 윤미향·안민석 의원 등 범여권 35명은 지난 2월 "北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 강력 반발한다"라며 한미연합훈련을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까지의 취재를 종합하면, 북한은 '대남적화사업'의 의도를 굽히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현 집권당 세력이 부화뇌동(附和雷同)하고 있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언급한 "남조선 당국자들이 인민들의 압력에 의해 수세에 빠졌다"라는 대목이 이번 7.4 남북공동성명 49주년에 맞물리는 모양새다. 이를 보고 있는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15일 서울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1주년 기념식에서 김부겸 국무총리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박용진 의원,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등 대권주자 및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1.6.15(사진=연합뉴스)
15일 서울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1주년 기념식에서 김부겸 국무총리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박용진 의원,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등 대권주자 및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1.6.15(사진=연합뉴스)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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