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섭 칼럼] 국민참여 공영방송 거버넌스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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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7.05 10:23:54
  • 최종수정 2021.07.0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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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 명분, 어설픈 개정안

개혁과 개방의 시대를 맞이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국민참여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이사화 사장의 추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표방하는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정을 위한 입법 논의가 활발하다. 국민추천을 통한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정 논의는 계속돼 왔다. 그런데 최근 여러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100명의 국민추천위원회가 공영방송의 이사와 사장을 뽑겠다는 법안은 문제가 있다. 국민참여를 확대한다는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어떤 ‘국민’을 대표하는 어떤 ‘국민위원’을 추천할 것인가라는 방법은 쉽게 합의되기 어려운 과제이다. 그렇다면 이사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국민위원 선임을 둘러싼 논란으로 바뀌는 것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참여로 정치적 독립을 확보하려는 제도는 자칫 공영방송을 더 확장된 정치투쟁의 장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국민추천으로 공영방송 거버넌스에 정치권력을 배제하거나 차단하겠다는 개정 법안은 실증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현 단계 국민의 대의를 반영하여 이사와 사장을 추천한다는 어설픈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정안은 위험하다.

공영방송의 핵심과제, 정치적 독립

지금까지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선은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거나 차단하는 정치적 독립이 핵심이었다. 이른바 정치병행성(political parallelism) 또는 정치적 후견주의(political clientalism)를 극복하는 일이다. 정치권력과 시장권력 등 제 권력에 의해 독립성이 훼손될 경우 공영방송 본래의 설립목적인 민주적인 국민의 방송으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거버넌스는 그 구성과정에서 정치적 독립을 훼손하는 명실상부하지 않은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혁은 사장 선출제도의 개선과 사장을 선출하는데 관여하는 방송통신위원회와 이사회 제도에 집중해 왔다.

공영방송 거버넌스에서 더 큰 문제는 권력을 잡은 정부 여당이 공영방송의 권력을 지배하는 승자독식형 구조이다. 그래서 정치권력의 변동에 따라 공영방송 거버넌스는 정치적 공정성ㆍ독립성 논란으로 흔들려 왔다.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정에서 핵심적인 과제는 집권여당이 이사회 구성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지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혁은 정치권력의 승자독식형의 후견주의적 정치시스템 개혁과 연결되어 있다. 사실 공영방송은 정치권력과 시장권력 등 제 권력으로부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면서 비판하는 상호작용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공영방송 거버넌스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서는 다양한 보완장치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규범형성 축적, 공영방송 거버넌스 정립해법 제공

정치적 독립을 넘어 공영방송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공영방송의 규범적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은 그 출발부터 규범적 목표에 대한 정체성 및 정당성 위기를 겪어왔다. 더구나 멀티미디어 플랫폼시대가 전개되면서 공영방송은 그 위상과 존립 근거가 약화되었고, 심해지는 경쟁환경에서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이런 혼동을 겪을 때 통찰을 얻는 방법은 공영방송의 규범적 목표를 되새겨 보는 것이다. 필자는 다양한 공영방송의 규범적 목표로 윤석민(2020) 교수가 제시한 ①민주주의에 기여, ②양질의 방송 서비스에 공감한다.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선에 앞서 각 행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공영방송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도록 규범의 지배체체(regime)를 정립하는 것이다.

공정성은 공영방송의 존재이유와 직결되어 있다. 공정성 문제는 공영방송의 존재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따라서 방송 공정성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장하면서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다하기 위한 상설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KBS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사회와 집행부의 합의체 기구 ‘KBS공정성ㆍ독립성특별위원회’를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6월 30일 KBS이사회에서 수신료 조정안을 의결하면서 시청자위원회 산하에 ‘KBS공정성ㆍ독립성강화특별위원회’를 두고, 특별위원 임명시 이사 3/4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필자는 이 제도가 흡족하지 않지만 KBS의 방송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한 최소한의 장치가 제도적으로 확보되었다는 면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현장의 경험과 지혜가 무형의 지식과 노하우로 축적되는 규범형성 방식은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정립하는 해법을 제공할 것이다.

100명의 국민추천위원회: 더 큰 정치투쟁의 장 우려

현재까지 발의된 <방송법> 개정 법안을 살펴보면 정필모 의원의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하여 100명의 위원으로 이사ㆍ사장후보추천국민위원회 구성하는 법안(2020-11-13), 허은아 의원의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하여 100명의 위원으로 사장후보추천국민위원회 구성하는 법안(2021-01-28), 정청래 의원의 국민 대표성을 고려하여 100명 이내 홀수 위원으로 사장추천위원회 구성하는 법안(2020-06-29) 등이 대표 발의되었다.

우선 100명의 이사ㆍ사장후보추천국민위원회는 결국 방송통신위원회의 여야 안배구조가 재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이 위원회는 외형적으로는 정치적 독립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거나 차단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또 정필모 의원 법안처럼 사장후보추천국민위원 선정을 이사회가 추진하면 이사 구성에서의 여·야 안배 비율이 거의 그대로 반영될 수 있어, 국민추천이지만 사실상 이사회의 정파적 구성과 같이 추천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국민추천 방식은 공정한 구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천영식 언론인은 “국민추천 방식은 본질을 흐리는 음모적 방식이다”라고 주장했다. 즉,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세력이 발호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고, 국민이라는 기치를 내세우지만 자기편을 골라내기 위한 음모가 횡횡할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위원을 추천하는 단체의 싸움이 확대될 수 있다. 결국 국민참여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정 법안은 그 목적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공영방송을 더 큰 정치투쟁의 장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현 단계 국민추천 개정 법안은 위험

100명의 국민추천위원회를 도입하는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정 법안은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쳐 신뢰와 정당성이 확보된 다음 입법여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공영방송 거버넌스는 미디어 영역을 넘어 정치ㆍ사회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연결되어 있다. 바람직한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정을 위해서는 2022년 새 대통령 임기 초반에 미디어법 개정을 위한 범사회적 합의기구를 설치하여 충분한 논의와 검증을 거쳐 입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공영방송 거버넌스는 다양한 주체들이 권한과 책임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운영원리에 의해 최적화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국민참여를 명분으로 내세워 특성세력의 음모를 관철시키려고 한다는 의구심을 받고 있는 현 단계의 어설픈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정 법안은 공영방송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축적된 공영방송의 소중한 자산마저 붕괴시킬 위험성이 있다.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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