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객원 칼럼니스트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오세훈 신임시장의 추가경정예산 심의를 포함한 첫 정례회를 지난 2일 마무리했다. 특히 6월 29일부터 사흘 동안은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한 서울시의회의 시정 질문이 진행됐다. 그중 오세훈 시장과 민주당 소속 서울시의원 간에 ‘무상급식에 대한 시장의 철학’을 주제로 한 논쟁이 있었다. 잠깐 소개하겠다. “무상급식을 먹고 자란 20대가 시장님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아이러니한 선거였다.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오 시장은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20대가 공정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또 선별복지가 수혜대상자에게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의원의 주장에 대해 “낙인효과가 당시의 무상급식 추진의 가장 큰 논거였는데, 그때도 지금도 우리나라의 기술적인 수준으로는 수혜대상 아이들을 낙인찍지 않으면서도 그 아이들을 위한 무상급식이 가능했다. '복지'에 대한 문제는 그 수혜가 부자들에게도 돌아가는 무차별 복지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앞으로도 비슷한 종류의 복지가 도입될 때마다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다.” 기본소득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전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은 보수와 좌파 모두에게 매력적인 대안이다. 우선 좌파들은 기본소득이 기초수급대상자들에 대한 ‘낙인효과’를 없애며,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우파는 효율성 차원에서 생각한다. 특히 선진국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의 목적은 첫째, 기존의 복잡다단한 복지제도를 ‘기본소득’ 하나로 대체. 둘째, 그렇게 함으로써 중복수혜 방지 및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저소득층의 생활형 범죄 예방을 꾀함. 셋째, 복지전달체계 간소화를 통한 기존의 방만한 복지 관료체계 개혁이다. 오히려 ‘완전한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만 있다면 재정적으로 기존 복지제도보다 더 우수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세제개혁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세금 제도 개혁도 따라오는 효과다. 

관점이야 어떻든 간에 이렇게 훌륭한 제도가 왜 아직 전 세계적으로 전면도입되고 있지 않은 걸까? 기본소득이 ‘근로유인’을 자극할지, 그 반대일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작은 주, 핀란드, 인도의 한 지역 등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실험을 진행한 적 있으나 근로유인에 대한 효과를 판단할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기본소득이 한국 좌파들이 청년수당을 도입하며 붙인 논거와는 반대로 취업유인 효과가 없다면 국가 차원의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본소득 도입의 핵심은 ‘근로유인을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특히 한국은 ‘실질적 의미의’ 복지예산이 비대한 국가 중 하나다. 우선 최저임금제 시행으로 인한 보조금 지급이 복지예산에 포함되지 않고, 각 광역·지방자치단체의 복지예산 역시 정부의 총 복지예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에 존재하는 복지 전달체계로서의 관료 수도 나날이 늘어간다. 한편 기초생활보장제도 중 자활급여는 자활급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근로의욕을 퇴색시키는데, 소득이 발생해 자활급여를 받는 만큼 생계급여가 줄어든다. 대상자로서는 일하지 않고 생계급여를 받는 것이 힘들게 육체노동을 하여 자활급여를 받는 것보다 더 이득이다. 또한, 7개 기초생활보장제도 자체가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설계됐기에 1·2인 가구가 확산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을 먼저 내지른 쪽은 얼마 전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우선, 한국의 좌파들은 늘 사회적경제, 기본소득 등 외국에서 논의된 개념들을 수입해온다면서 이름만 따오는 수준으로 기이하게 들여온다. 일례로 사회적기업은 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필두로 한 한국 좌파들에 의해 정부 보조금 사업으로 변질했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안을 살펴보자. 이 지사의 안은 공정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의로울까?

우선, 이 정권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집착’은 이 지사에게도 이어진다.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제공해 지역 소상공인의 매출을 늘리고 유통 대기업에 집중된 매출을 골목상권으로 환류시킨단다. 재난지원금의 일시적 소비 진작 효과는 확인됐으나 그것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생필품이나 사치재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핵심 요인인 기업의 투자 및 혁신과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평등을 명분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하면서 특정 단위에서만 사용 가능한 지역화폐로 제공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주거비용 역시 같은 광역단위에서조차 각 구가 다르다. 하물며 국가 단위다. A시에 살고 있는 A¹ 지역화폐의 가치와 B시에 살고 있는 B¹의 그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의롭지도 못하다.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이 기존의 복지제도를 대체한다.’라는 명제에 대해 ‘그건 우파들의 버전’이라며 명확히 선을 긋는다. 그렇다 보니 기존의 복지제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개혁 논의도, 비합리적인 세제개혁 논의도 원천 차단된다. 오히려 기존의 복지에 더한 +@이고, 기존 세제에 더해 신설 세목을 추가하고, 기업에 감면해주는 세금을 없앤단다. 기본소득제 입안 원칙들을 무시하는 사이비 기본소득이다. 

이재명표 기본소득에 대한 대안으로 오세훈 시장과 유승민 전 대표가 주장하는 안심소득제나 공정소득제는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고안한 음소득세(Negative Incom Tax)가 그 원형이다. 사회보장제와 소득세를 하나로 통합한 이 안은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며, 제도가 단순하고 투명하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았다. 

이 안심소득제의 제1목적은 ‘빈곤 구제’이다. 따라서 노인수당, 청년수당 같이 특정 계층을 겨냥한 각종 무차별수당들을 대체한다. 또한 기존의 복지제도가 유발했던 복지병, 즉 ‘근로의욕 저하’를 방지해야 한다. 노동경제학자 박기성 교수가 제안하는 구체적인 안은 다음과 같다. 1) 기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주거·자활급여와 국세청의 근로·자녀장학금을 안심소득으로 대체한다. 2) 안심소득제는 국가가 소득이 전혀 없는 가구에는 일정액을 지급하고, 근로나 사업 소득이 있는 가구에는 그 소득에 반비례해 추가로 지원하도록 설계한다. 즉, 특정 구간까지는 돈을 벌수록 내 총소득이 늘어낙 된다. 기존 기초수급자 대상 복지제도 중 교육·의료·해산·장제를 제외한 각종 수당들을 안심소득이 대체하기에 기존 정부 예산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소득세제와 결합했기에 별도로 새로운 제도를 고안해야 하는 비용도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안심소득제를 시행하면 아마 전세계에서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내년도 본예산 편성 내용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서울시의 복지·행정 전문가들이 서울의 특성에 맞게 설계 중에 있다고 한다. 4차산업혁명이 성큼 다가온 2021년 현재, 거듭된 기술혁신으로 인해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해가고 있다. 직업수명 역시 짧아지고 있다. 기본소득이 어느 국가에서도 완전하게 도입된 적 없기에 그것을 포풀리즘으로 치부하고 ‘된다’, ‘안 된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재정적으로 탄탄하며 완벽한 복지제도를 자랑하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시사점이 크다. 기본소득제의 이름만 따온 수준의 부도덕한 이재명표 기본소득 논쟁이 아닌, 국가개혁의 관점에서 보수진영에서 보다 활발한 논의가 일어나길 바라본다.

여 명 (서울시의원·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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