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인기 있는 공약, 인기 없는 공약
[남정욱 칼럼] 인기 있는 공약, 인기 없는 공약
  •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프로필사진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21.07.23 09:52:57
  • 최종수정 2021.07.23 17:13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유럽인들의 대화는 대부분 문화와 예술로 채워진다. 정치와 종교를 이야기하면 반칙으로 눈총을 맞는다. 유럽인들이 고상해서가 아니다. 정치를 놓고 종교를 놓고 대립하는 세력끼리 하도 죽여서 그렇다. 구교가 신교를 잡아 죽이고 왕당파와 의회파가 살상의 향연을 펼쳤다. 그 피비린내의 잔향이 남아 정치, 종교를 가급적이면 입에 올리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종교를 놓고 전쟁을 벌인 적도 없고 왕당파와 의회파가 대립하는 시민혁명의 기억도 없다. 잔잔하게 왕조가 망했고 미국에서 돌아온 노老정객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바람에 단계를 훌쩍 건너뛰어 얼결에 민주공화국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에 지름길은 있어도 비약은 없다. 겪을 것은 다 겪어야 하고 거칠 일을 다 거쳐야 한다. 귀족과 부르주아지가 혈투를 벌인 그 단계를 대한민국은 좌우의 대결로 대체하여 통과 중이다. 해서 한국인들이 정치에 미쳐있는 것은 병리적인 현상이 아니다. 다만 지각으로 밟는 과정이라 생산적이지 못하고 국가 발전의 동력이 휘발되는 폐해가 있기는 하다. 대선을 8개월 앞두고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고 국민의 병이 도졌다. 수순에 따라 현재는 후보들의 과거를 캐고 전력前歷을 검사하는 중이다. 피붙이에게 쌍욕을 한 후보도 있고 탄핵과 관련해서 찝찝한 전력이 있는 후보도 있고 미담이 쏟아져 나오는 후보도 있다. 지금은 뭐 대단한 것처럼 난리들을 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하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정치인이 ‘무엇을 했나’를 보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보고 표를 던지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오래된 전통이며 후보들이 던지는 공약의 섹시함과 안 섹시함도 이 지점에서 갈린다. 매달 얼마씩 돈을 나눠주겠다는 소리를 들으면 머릿속 전구에 불이 ‘확’ 들어온다. 탈脫원전이니 공정이니 정의니 이런 소리에는 바로 불이 나간다(그게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이래서 정치에서의 인민 영합주의는 피하기 힘든 마수다. 인류는 내내 곤궁했고 부지런하기보다는 게을렀으며 노동에서 보람을 찾기보다는 누군가 내 노동을 대신해주길 바랐으니까. 당장은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후보도 결국에는 얼마나 어떻게 줄 것인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결국 다들 국민들에게 뭔가를 해주겠다는 공약으로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생존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기도 하다. 인민 영합주의에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으며 한 번 들어간 그 늪에서 살아서 돌아 나온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자유의 방향

대선 후보들마다 정책을 조금씩 흘리는 중이다. 대부분 경제와 관련된 것이다. 실업 해소, 일자리 창출 뭐 그런 것들을 자기가, 정부가 해주겠다는 것이다. 위험한 발상이다. 오른쪽으로 가든 왼쪽으로 가든 결말은 전체주의고 최악은 독재다. 정부가 만들 수 있는 일자리는 공무원 숫자 늘이는 거 말고는 없다는 거, 현 정부가 다시 확인시켜준 만고불변의 진리 아니던가. 일자리는 돈을 버는 사람들이 알아서 만든다. 돈 벌고 싶은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낸다. 그러니까 그걸 공약으로 내세우면 안 된다. 정부가 할 일은 선수로 뛸 게 아니라 심판이 돼서 돈 벌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돈 벌 자유라고 하니까 좀 싸 보인다. 그러나 돈 벌 자유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유일하게 갈망해 온 자유다. 그 자유만큼은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에도 시대, 가톨릭을 탄압하며 막부는 그리스도의 성상을 밟고 지나가는 것으로 신자와 비신자를 가렸다. 많은 일본인들이 성상을 밟는 대신 순교를 택했다. 그러나 정작 기독교인들이었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망설이지 않고 성상을 밟았다. “그리스도도 좋지만 교역은 더 좋다.” 이게 그들의 대답이었다. 특수하고 예외적이지 않다. 대단히 보편적이다. 해서 돈 벌 자유를 허許하는 것, 그게 정치가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선善이자 최상의 덕목이다. 현 정권이 잘 못하는 가장 대표적인 항목이기도 하다. 정말 이 정권은 돈을 못 벌게 한다. 최저 인건비를 책정해 고용주도 고용인도 돈을 못 벌게 한다. 한 주 동안 일정 시간 이상 일을 못하게 해서 고용주도 고용인도 돈에서 멀어지게 한다. 최근에는 방역 핑계로 짜증나게 돈을 못 벌게 한다. 식당 테이블에 앉은 두 명은 바이러스가 피해가고 세 명은 감염시킨단다. 버스에 전철에 몰려 타는 것은 바이러스가 용서해주고 택시에 세 명 타면 응징한단다. 정권이 아니라 바이러스에게 묻고 싶다. 너네 진짜로 그러니? 너네 정말로 6시에 기상해서 그때부터 활동하니?

경제 정책보다 정치 개혁

대한민국에서 이 돈 벌 자유, 즉 경제를 망치고 있는 게 정치다. 대선 후보들이 경제 정책이 아니라 정치 개혁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정치 개혁의 첫 번째가 규제 욕구를 단념하는 것이다. 정치는 규제로 경제를 망친다. 우리나라는 푸드 트럭이 없거나 거의 없다. 어떤 차로, 어떤 구역에서, 어떤 조리 환경(가령 조리용 작업장의 높이는 1.5미터 따위)에서 음식을 만들어 팔아야 하는지 까다롭게 정해 놔서 그렇다. 아시다시피 법法에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가 있다. 어감 상 네거티브가 안 좋게 들리지만 이게 훨씬 윗길이다. 푸드 트럭 관련해서는 딱 하나의 네거티브 조항만 있으면 된다. ‘푸드 트럭으로 장사하는 사람은 음식물에 청산가리를 넣어서는 안 된다’ 이거면 끝이다. 나머지 자질구레한 것은 저절로 정리된다. 학교 앞에서 불량 식품 팔면 학부모들이 알아서 쫒아낸다. 이상한 음식 파는 업자는 소비자가 칼같이 징벌한다(인터넷 시대라서 딴 데서 재범할 엄두도 못 낸다). 정치를 어떻게 바꾸어 경제에 간섭을 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보장할 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들에게 최대한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겠다, 이런 공약이 나와야 한다는 말씀이다. 여기에 욕심을 조금 더 보태자면 세금이다. 원래 인간이란 게 일정한 수입과 견딜 수 있는 수준의 세금이면 별 불만이 없는 존재다. 이 정부는 돈도 못 벌게 하면서 세금은 더 걷는 만행으로 앞, 뒤, 옆통수를 동시에 가격 중이다. 해서 이 부분에 약속을 하나만 추가하면 좋겠다. 무작정 세금을 낮추겠다고 하면 예전 증세와 복지 논쟁이 재발한다. 같은 말이지만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세금을 줄이고” 뭐 이 정도 수사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 정부가 방만을 넘어 방종에 가까운 지출과 사업을 멋대로 벌이는 것에 기겁하지 않은 국민은 없으니까. 섞자면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세금을 줄이고 국민들에게 최대한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겠습니다.”가 되겠다. 이 공약의 약점은 구체적인 이익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뭘 주겠다는 선물 보따리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공약은 인기가 없다. 그러나 인기 있는 공약을 고르는 것으로 국민들이 돌아서는 순간 진정한 번영과 자유는 등을 돌린다. 너네는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구나, 하며. 번영과 자유의 보복은 냉정하다. 빈곤과 전제주의를 던져주는 것으로 인기 있는 공약을 선택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여러분, 안 무서워?

정치 개혁은 원칙 충실

정치 개혁의 두 번째는 다행히 전 감사원장이 말씀해주셔서 길게 안 써도 될 것 같다. 그것은 정치의 정상화다. 내 식으로 요약하자면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국가는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공화주의는 원칙이다. 민주주의는 그 방법이다. 삼권 분립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얘기다. 행정이 입법을 압박하고 사법을 좌지우지 하는 사회는 정치적으로 미개한 사회다. 이백년 전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울 때도 그랬다. 그때는 입법부가 폭력의 주역이었다. 난생 처음 권력을 쥐자 생각나는 대로, 이익 가는 대로 법을 만들었고 숱하게 판결에 개입했다. 나라를 세우기도 전에 나라가 망하겠다고 생각한 선각자들이 그 사태를 바로잡았고 그 해결책인 삼권분립은 미국이라는 새로운 제국을 떠받치는 주춧돌이 됐다. 얼마 전 법원을 행정부로 이해하는 여당 국회의원이 있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담이었다. 행정이 입법과 짝짜꿍인 나라다 보니 나머지 하나인 사법도 행정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해외 토픽감이다. 대통령제도 그렇다. 감사원장 말마따나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왕 노릇 하는 게 문제다. 입법이, 사법이 대통령을 견제하는 정치를 만들면 된다. 경제공약이 아니라 정치 개혁이 먼저다. 정치가 정상이면 경제는 알아서 제 갈 길을 간다. 알아서 살이 찐다. 인기 없는 공약이지만 원칙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후보를 주목하고 선택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 사족 하나. 이때 삼권이 서로 싸우면? 건국의 아버지들은 사법에 힘을 몰아줬다. 개중, 상대적으로 인민 영합주의에 덜 휘둘리는 것이 사법이기 때문이다. 연방 판사들에 대한 종신 임기제도는 미국이라는 신생국에 법치의 실현을 가져온 원동력이었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