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약해진 병사들, 해이한 군 기강, 경계태세 이완...6.25 전야 한국군을 빼닮은 우리 군
청해부대 문무대왕함의 코로나19 집단감염...'친북, 친중, 탈미, 반일' 문정부의 대외기조에서 비롯된 '한국군 붕괴'의 편린
정부가 북한과 화해협력 추진하더라도 군대는 철저하게 안보논리에 의거해 운영해야...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인민군이 남침하면 곧바로 반격하여 평양에서 점심을 그리고 신의주에서 저녁을 먹을 것이다.” 6·25 직전 신성모 국방장관의 호언장담이었다. 허풍의 대가는 참담했다. 나흘 만에 서울을 내주었고 한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렸다. 각종 내외부 요인들로 만신창이가 된 오늘날 우리 군의 모습이 6·25 전야의 한국군을 빼닮았다. 병사들의 유약화, 군기강 해이, 군무 이탈, 성추행 사건, 경계태세 이완 등이 내부로부터 한국군을 붕괴시키고 있어도 국방부는 군의 정예화와 과학화가 진행 중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정부는 평화의 시대가 개막될 것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로마의 베케티우스 장군이 했던 이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진리로 남아 있다. 한국식으로 말한다면 망전필위(妄戰必危), 즉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가 된다. 하지만 군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전문가들의 눈에는 한국군이 이 진리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표류하고 있다. 그런 중에 청해부대원들의 코로나 집단감염 소식이 또다시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다. 이것이 총체적 군대 붕괴 현상의 한 편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군을 아끼는 사람들을 더욱 애타게 만든다.

청해부대 집단 감염, 이게 말이 되나?

아프리카 해역에 파견된 해군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의 승조원 301명의 80%와 함장과 부함장을 포함한 장교단 30명의 대부분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함정의 정상 운항을 포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함내에서는 피가래를 뱉으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승무원들이 속출했고 “지옥이 따로 없다,”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 등의 볼멘 소리들이 터져나왔다. 결국 승조원 전원이 함을 포기하고 7월 21일 공군의 공중급유기편으로 급거 귀국했다. 국방부·합참의 방역 무지와 해당 부대의 초기 늑장대응과 무사안일이 합작한 참담한 결과였다. 아덴만 해역에 대기하던 35진 충무공이순신함이 문무대왕함의 임무를 승계했기 때문에 임무에 공백이 생기지는 않지만, 해외파병 부대가 임무 중에 집단감염으로 인하여 조기에 복귀한 것은 창군이래 처음 겪는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또 한번 법석을 떨어야 했다. 서욱 국방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고, 해외 파병 장병들의 방역대책을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부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고 실토했고, 해외파병 장병, 해외공관 주재원 등 백신 접종의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들의 안전대책에 만전을 가하라“고 지시했다. 야당 소속 국회 국방위원들은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의 경질과 국회차원의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무슨 일이 터지고 나면 항상 뒤따르는 대국민 사과, 재발방지 약속, 조사 등에 매우 둔감해져 있다. 그런 약속이나 조사가 실제로 재발을 방지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재발 방지를 지시하는 것에도 감명받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식의 ‘유체이탈 화법’에 분노한다. 더 큰 문제는 이번에 터진 군부대 집단감염 사태가 ‘한국군 붕괴’라는 더 큰 문제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너나 돌격 앞으로 하세요”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빈발하는 성추행과 경계망이 뚫리는 사건들을 보면서 한국군이 붕괴되고 있다고 지적해왔지만, 이런 현상들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들은 군 외부에서 비롯된다. 큰 그림에서 보면 한국군의 붕괴는 ‘친북·친중·탈미·반일’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대외기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며, ‘국방개혁 2.0,’ 한미 연합연습 축소, 9·19 남북군사분야합의, 군 고위직의 정치군인화 등은 정부의 이 기조에서 잉태된 것들이다. ‘국방개혁 2.0’만 해도 그렇다. 국방부는 이 계획에 의거하여 병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고 총병력도 50만으로 감축하고 있으며, 동원예비군도 줄이고 있다. 북한이 128만 명의 정규군과 700만 명의 예비군 그리고 80개가 넘는 지상군 사단에 핵무기까지 가지고 있는 중에 40개도 되지 않는 육군 사단을 더 줄인다면서 최전방 사단과 정예 예비사단을 해체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국방개혁 2.0’이 한국군의 ‘약소화(弱小化)’를 지향할 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나 중국으로부터의 미래 위협에 대처하는 청사진 같은 것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고 개탄한다.

한·미 연합연습도 중단·축소되었다. 키리졸브(Key Resolve), 독수리(Foal-Eagle),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연례 훈련들은 폐지·축소·해체되었고 한미 공군과 해병대가 실시해온 실기동 훈련들도 같은 신세를 면치 못했다. 대규모 연합 상륙훈련인 쌍용 훈련, 연합 공군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과 비질런트에이스(Vigilant Ace) 훈련 등이 줄줄이 폐지되거나 축소되었다. 연합연습의 폐지와 축소는 필연적으로 군의 전투태세를 이완시시키고 전쟁억제력을 약화시키며 미국 내에서 한미동맹 무용론을 확산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런데도 입으로는 ‘항재전장(恒在戰場)’을 외치는 것인가?

9·19 군사합의가 우리 군을 북한의 기습공격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2018년 당시 국방부는 남북이 공정하게 서해상의 평화수역을 설정했다고 했지만, 북방한계선(NLL)을 기존으로 보면 평화수역은 남쪽으로 35Km나 더 길게 내려와 있다. 황해도에 배치된 북한의 장사정포·대함(對艦) 미사일 등 핵심 전력은 영향을 받지 않고 북방한계선 인근 섬들에 배치된 한국 해군과 해병대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한미 연합 공군은 손발이 묶였다. 즉, 북방한계선 일대 군사력 균형이 일방적으로 한국에게 불리해진 것이며, 이 해역이 수도권의 측방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휴전선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에 대해서도 국방부는 ‘등거리·등면적’이므로 공정하다고 둘러댔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말이 안 되는 대목들이 많다. 대북 정보에는 신호정보(통신 감청), 인간정보(간첩, 동조자 등을 통해 획득하는 정보), 공개정보(언론보도 등을 통해 획득되는 정보), 영상정보(항공촬영으로 얻는 정보) 등이 있는데, 9·19 군사합의는 남북이 대등한 신호정보와 북한이 월등하게 우세한 인간정보와 공개정보에는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한미군이 우위를 가진 영상정보를 크게 제약한다. 한국군의 금강과 새매 그리고 미군의 RC-7B 등 전술정찰기들의 정찰범위가 축소되어 북한군 도발징후 파악, 표적 정보 획득, 타격 능력 등에 제약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북한이 공자(攻者)이고 한국이 방자(防者)라는 사실을 대입해보면 9·19 군사합의로 누가 이득을 본 것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웃하여 살고 있는 강도와 시민이 만나 공히 CCTV를 달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 과연 공정한 딜이었을까? CCTV는 강도에게는 필요없는 장비다.

이런 외부 여건 하에서 군에서 ‘주적(主敵)’ 표현이 사라지고 안보교육이 자취를 감췄다. 외부 인권단체들이 군 인권을 개선한다며 군대를 들쑤시는 통에 강훈이 사라졌고, 이제는 군에서의 동성애를 금지하는 군형법 제92조 6항을 폐지하라고 외치고 있다. 계급 간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강훈을 시킨다는 이유로 지휘관을 해임하라는 민원을 제기하는 부하들도 있고 병사들이 상관을 폭행했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 잊을 만하면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고 뻑하면 경계태세에 구멍이 뚫린다. 보신주의와 진급 지상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안보의 간성’이라는 사명감은 온데간데 없는 ‘평범한 월급쟁이’로 변해버린 간부들도 적지 않다. 어깨에 많은 별들을 달고 다니면서도 정치권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는 고위직들도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상관이 ‘돌격 앞으로’를 명령하면 부하들은 ‘너나 돌격 앞으로 하세요’ 할 것"이라며 한국군을 비꼰다. 이것이 전쟁에 대비하는 군대인가? 이런 군대를 만들어 놓고도 입으로는 망전필위(妄戰必危)를 외치나?

한국군,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나?

청해부대의 코로나 집단감염에 대해 서욱 장관은 7월 21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며 청해부대 장병과 국민께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당연히, 안이한 방역으로 국제적 망신을 초래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럼에도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는 한국군이 무너지고 유약화되고 있는 과정에서 발생한 또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서욱 장관은 취임 후 10개월동안 북한군 귀순자 경계 실패(2021년 2월17일), 부실급식(4월28일), 공군 성추행 피해 여성 부사관 사망(6월9일, 6월 10일, 7월10일)을 포함하여 여섯 차례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청해부대 사건은 새털처럼 많은 군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는 더 큰 그림에서 ‘한국군 붕괴’ 현상의 전체를 보면서 재건책을 강구해야 한다. 군기강 해이, 성추행 등 눈에 쉽게 보이는 현상들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런 현상을 초래하는 근본을 따져야 한다. 더 큰 그림에서 한미동맹을 걱정하고 연합훈련 재개를 모색해야 한다. 아니,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눈을 더 크게 뜨고 국고 고갈, 경제 파탄, 안보국방 역량 약화, 동맹 약화 등 대한민국 전체의 국가역량이 망실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군 재건은 그 중 하나의 시급한 과제일 뿐이다. 정부가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추진하더라도 군대는 철저하게 안보논리에 의거하여 운영되어야 한다. 남북 화해 노력과 확고한 안보는 함께 굴러가야 하는 두 개의 수레바퀴이기 때문이다. 국방예산을 늘려서 군의 과학화·정예화를 이루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식의 정치군인들의 허풍은 듣고 싶지도 않다. 1975년 베트남을 잊었는가? 그 어떤 첨단장비도 영혼이 빠져나간 군대에서는 고철 덩어리일 뿐이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건양대 교수·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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