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26일 정부가 발표한 2021년 세제개편안은 한 마디로 내년 대선에만 올인한 나머지 한국조세제도가 안고 있는 제반 문제들을 외면한 졸속 개편안으로 보인다. 해마다 정부는 다음 년도 예산안과 더불어 예산 추진에 필요한 재원조달방안이 담긴 세제개편안안을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한다. 2022년에도 정부는 이미 600조 원에 이르는 방대한 슈퍼예산을 예고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가 요구한 2022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 총지출 규모가 2021년도 본예산(558조원) 대비 6.3% 증가한 593조 2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힌바 있다. 예산 요구 증가폭은 2018년 6.0%, 2019년 6.8%, 2020년 6.2%, 2021년 6.0%에 이어 5년 연속 6%대를 지속할 전망이다.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하면 600조 원을 넘을 전망이다.

주요 분야 중에서는 보건·복지·고용 예산이 9.6% 증액한 219조원을 요구했다. 맞춤형 소득·주거·돌봄 안전망 및 고용안전망 강화 등 K자형 양극화 해소를 중심으로 증액을 요청했으며, 코로나19 백신 구입과 접종 시행을 위한 소요도 예산 요구에 반영됐다. 기재부는 각 부처 요구안을 토대로 2022년 예산안을 편성·확정해 9월 3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보건·복지·고용 예산 219조 원 중 절반 정도가 현금살포여서 내년 대선을 겨낭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나온 세제개편안도 내년 대선에만 올인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의 6조 원을 필두로 지난 4년 내내 국민세부담을 증가시켜 왔다. 그런데 내년에는 5년 만에 처음으로 세부담이 경감되는 방향으로 세제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내년에는 전국민에 6조 원에 달하는 세금경감혜택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대선을 포석에 둔 개편안이다.

정부가 매년 불요불급한 비과세 감면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선언해왔으나 올해 세법개정안에서는 일몰 예정이었던 86개 항목 중 단 9개만 종료했다.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취약계층 지원을 이유로 대대적으로 감면을 연장했다. 기업이 청년 고용을 늘릴 경우 1인당 최대 1,3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고용증대 세액공제 적용기한은 오는 2024년 말까지 3년 더 연장한다. 고용증대 세액공제는 직전 과세 연도 대비 상시근로자 수가 증가한 기업에 대해 고용 증가분 1인당 일정 금액의 세금을 3년간(대기업은 2년간) 깎아주는 제도다. 연간 1조 2,800억 원이 지원된다. 또 중소기업 취업자에 대한 소득세 감면 혜택도 2년 연장하기로 했다. 청년·노인·장애인·경력단절여성의 최초 취업 이후 3년간(청년은 5년간) 근로소득세의 70%(청년은 90%)를 감면해주는 제도로 연간 지원 규모는 7,800억 원이다. 이 외에도 창업 중소기업 세액 감면 대상을 연 4,800만 원 이하에서 8,000만 원으로 확대하고 적용 기한도 3년 연장했다. 연 3,700억 원을 지원한다. 국세 감면액은 2019년 49조 6,000억 원에서 2020년 53조 9,000억 원, 올해 56조 8,000억 원으로 급상승하고 있다. 일몰 연장에 따른 조세 감면규모는 총 6조 원에 달한다. 

세금경감혜택 외에도 일하는 저소득층을 지원한다는 목적의 근로장려금(EITC)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근로장려금은 문재인 정부 들어 크게 늘려왔음에도 또다시 소득 상한 금액을 인상해 대상자를 30만 가구 확대했다. 지난 2019년부터 지급 대상과 최대 지급액을 크게 확대하면서 지급액은 2018년(2017년 귀속분) 1조 3,381억 원에서 2020년(2019년 귀속분) 4조 4,683억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상자도 179만 가구에서 432만 가구로 껑충 뛰었다. 2020년부터는 최소 지급액도 3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높였다. EITC는 정부의 조세 지출 항목 중 압도적으로 1위다.

올 상반기까지는 자산 시장 호황으로 일시적인 세수 풍년이 있었다고 하나 올해 코로나19로 추경을 포함한 정부 지출이 604조 9,000억 원으로 600조 원을 넘긴 상황에서 세수까지 줄어들면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다. 내년 본 예산 규모도 60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결국 빚을 내 재원을 마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전략기술 개발과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감세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급격하게 불어나는 재정지출을 감당하기 위한 세수 확보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재정건전성 악화를 막으려면 지출을 줄이거나 비과세·감면 제도를 적극적으로 정비해야 하는데 그런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고 이건희 회장의 막대한 상속세와 고가미술품 기증과 관련해 주목을 받았던 기재부가 당초 세법 개정안 초안에 포함했던 미술품의 상속세 물납제는 당정 협의 후 최종안에서 빠졌다. 증여·상속세를 현금이 아닌 미술품이나 문화재 등으로 대신 내는 물납제도에 대해 ‘부자를 위한 특혜’라는 비판이 여당 내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반도체, 배터리, 백신 등 3대 국가 전략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에 1조 1600억원의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반도체·배터리·백신 분야 34개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 비용 세액 공제가 올 하반기부터 3년 반 동안 확대된다. 대기업의 경우 연구·개발비의 30~40%, 시설 투자액의 6%를 공제받는다. 연구개발비 공제율은 10%포인트, 시설투자비 공제율은 3%포인트 상향한 것이다. 중소기업은 해당 분야 연구개발비의 최대 50%까지 공제된다. 이로 인해 대기업에 8830억원의 혜택이 돌아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기업감세라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치열해 지고 있는 기술패권전쟁과 경쟁국인 미국 대만 등의 높은 투자세액공제를 고려하면 여전히 이 정도로 글로벌 기술전쟁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하기 힘든 실정이다.

국가전략기술 세제 지원과 별도로 내년부터 2024년까지 탄소 중립, 바이오 분야 대기업의 연구개발비도 20% 세액공제해 주기로 했다. 정부는 또 국내로 돌아오는 유턴 기업의 소득·법인세 감면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해외 사업장을 양도하거나 폐쇄·축소한 뒤 1년 안에 국내 사업장을 새로 짓거나 증설해야 세제 혜택을 주던 것을 2년 내 완료하면 주는 것으로 문턱을 낮췄다. 그러나 이 역시 미국 일본 등의 파격적인 리쇼어링 대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어서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미국은 연간 800여 기업, 일본도 연간 600여 기업이 리쇼어링해서 국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지만 한국은 20여개 내외 기업이 리쇼어링하고 있는 수준이고 그마나 절반은 국내의 늘어나는 규제와 악화되고 있는 노동여건에 후회를 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밖에도 높은 실업 속에서도 성장동력을 약화시키며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법인세와 상속세도 손을 대지 않고 ‘이생집망’의 절망과 전월세 난민을 양산시키고 있는 종부세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세도 언급도 없다. 내년 대선을 의식해 실효성도 적은 민생 지원만 나열하고 결국 감면 정비는 손도 못 대고 중요한 과제는 고스란히 다음 정부로 넘기고 있다. 결국 내년 예산안에 반영되어 있는 100조 원 내외의 현금살포와 더불어 총 6조 원에 달하는 조세감면과 막대한 전국민 재난지원금 자영업자 현금지원 등이 대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이번 세제개편안은 성장동력확충 부동산시장정상화 재정안정화 등 국가적인 중요 어젠다는 외면한 채 오직 내년 대선에만 올인하고 있는 최악의 개편안으로 평가받아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오정근(자유시장연구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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