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같은 좌파 정권이라도 ‘결’과 ‘격’이 다르다. 
[조동근 칼럼] 같은 좌파 정권이라도 ‘결’과 ‘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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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하르츠 개혁', 문재인 정부의 퍼주기식 정책 아닌 노동시장 유연화에 방점
슈뢰더 총리 "어느 누구도 사회의 희생 위에서 일하지 않으며 쉬도록 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어느덧 '실업이 좋은 직업'...한국판 하르츠 개혁이 필요한 이유

 ‘초록(草綠)은 동색’이란 처지가 같으면 생각도 같아진다는 것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이런 저런 좌파는 종국에는 같은 좌파다. 하지만 초록은 엄밀한 의미에서 같은 색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좌파도 똑 같은 좌파가 아니다. ‘결’과 ‘격’이 다르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이끌어낸 슈뢰더 정권과 문재인 정권이 같은 좌파정권은 아니다. 우리나라로 좁히더라도 한·미 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이 같을 수는 없다. 체제와 정권의 성과(成果)는 결국은 ‘어떤 이념에 기초해 어떤 가치를 지향 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생각과 사고가 개인의 행동을 지배하고 성과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O 실업이 ‘안정적 일자리’인 역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실패했다고 단정해도 좋을 듯하다. 경제적 성과 부진은 작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정신의 붕괴’이다. 루이스가 설파한 ‘경제 하려는 의지’(the will to economize)의 실종이다.   

 최근 “1년 일하고 7개월 쉬는 것”이 유행이란다. 1년 일하고 해고됐다고 신고하면 6개월의 실업수당이 나온다. 한 달은 퇴직금으로 버틴다고 한다. 실업이 안정적인 일자리로 둔갑한 것이다. 젊은 세대가 주기적·반복적 실업수당 청구로 삶을 이어간다면 그에게 미래는 없다. 청년이 미래를 갖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한 불행은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정부는 2019. 10월 실업급여 기간을 연장하고 지급액을 인상했다. 종전에는 ‘3~8개월’ 지급하던 것을 ‘4~9개월’로 지급기간을 늘렸다. 지급액도 해고 전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올렸다. 2019년 10월이면 코로나 19가 창궐하기 전이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실업급여 조건을 완화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고용보험기금이 무사할 리 없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고용보험기금 순자산은 2017년 1조2300억원에서 2018년 -2조9200억원으로 ‘마이너스 전환’됐다. 이후로도 꾸준히 큰 폭으로 줄어 2019년 -8조1300억원, 2020년 -21조8600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 정부 출범 이후를 기준으로 23조1000억원의 감소폭을 보였다. 적립금을 탕진한 것이다. 혹자는 ‘코로나 19 창궐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가당치 않은 주장이다. 코로나 창궐 훨씬 이전인 2018년에 이미 순자산은 마이너스 2조9천억을 기록하고 있다. 

 2018년 이후 순자산이 급격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은, 주요 수익원인 고용주부담금과 피고용자 분담금으로 사업비를 충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망은 비관적이다. 유량으로서의 적자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실업급여는 지난 2월 1조149억원을 기록한 뒤 5개월째 1조원을 넘고 있다. 올 상반기 실업급여 지급액은 총 6조48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코로나 창궐이후 순자산감소는 그렇다 치자. 그러면 코로나 창궐 이전의 순자산 급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소주성 등 정책실패가 빚은 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누구도 이를 직시하지 않고 있다. 

O 좌파 사민당 슈뢰더 총리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슈뢰더 총리는 우파적 ‘하르츠 개혁’을 밀어붙이고 실각했다. 그는 정권을 잃었지만 독일 경제를 구했다. 앞뒤 맥락을 살피고자 한다. 

 

독일은 통일(1990)까지 견실한 성장을 이룩했다. 1986년을 기준년도로 1990년 명목달러 표시 국내총생산 배율을 보면, 독일은 1.3201배로 여타국보다 높다. 하지만 통일을 계기로 독일은 엄청난 통일비용을 지불하고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 통일 이후 ‘1991년~2002년’ 10년 간 독일은 저성장에 시달렸다. <표-1>에서 보는 봐와 같이, 1991년 대비 2002년 독일의 달러표시 명목 국내총생산 배율은 1.41배로 비교국가 중 제일 낮다. 같은 기간 동안 영국의 배율은 1.79이다. 프랑스도 1.62배이다. 

 독일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3년 최악의 상황에서 나온 것이 슈뢰더 종리의 ‘2010 아젠더’였다. 그는 “어느 누구도 사회의 희생 위에서 일하지 않으며 쉬도록 해선 안 된다”고 일갈했다. 이렇게 하르츠 개혁은 시작되었다. 하르츠 위원회 등장이 일등 공신일 수는 없다. 멍석을 깔아준 슈뢰더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하르츠 위원회(2003~2005)는 ‘재취업의 의지와 근로능력’에 맞춰 실업급여를 재편해 실업자 의 노동시장 유입을 유도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노동수요를 크게 제고했다.  

 하르츠 개혁의 성과는 <표-1>에 잘 나타나 있다. 하르츠 개혁이 시작되기 직전년도인 2002년을 기준년도로 2011년까지의 경제성과를 보뎐 독일아 단연 압도적이다. 같은 기간 동안 독일의 배율은 1.41배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1.29, 1.34배에 지나지 않는다. 

 개혁은 구조조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고통을 수반한다. 인기와는 거리가 멀다. 하르츠 개혁이 얼추 완성된 후 2005년 9월에 치른 총선에서 그는 실각한다. 집권한 ‘기독교민주당’의 메르켈은 ‘아젠다 2010’의 기조를 유지했다. 하르츠 개혁으로 독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남유럽재정위기라는 외풍에 흔들리지 않았다. 독일은 ‘유럽의 병자’에서 난공불락의 유럽의 맹주로 자리 잡았다. 좌파의 우파적 개혁이 독일을 구한 것이다. 

O 문재인과 마크롱의 비교 

 사회과학에서 실험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관찰에 의존한다. 초기조건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초기 조건을 찾아 양자를 비교하면 ‘실험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625동란으로 한국이 남북으로 갈라셨다. 같은 민족, 같은 초기 조건이었지만 남북의 경제력 차이는 극적으로 벌어졌다. 체제 차이로 밖에 남북한의 격차를 설명할 수 없다.

 문재인과 마크롱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정부를 꾸렸다. 문재인 정부는 2017. 5. 10일에 마크롱 정부는 5월 14일에 출범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경제성과를 비교할 겨를은 없다. 하지만 마크롱이 들어선 후 프랑스는 실업률이 크게 떨러졌다. 우파 개혁이 나은 성과이다. 마크롱은 정부를 꾸리고 나서 ‘산별 단위 노동조합 권한 축소, 기업차원의 재량권 확대, 사원대표 조직의 통합에 의한 노사교섭의 효율화, 노동비용(해고배상금)의 예측가능성 제고’ 방향으로 노동법을 개정했다. 그리고 실업급여 수급조건 강화 및 고소득층 실업급여 감액 등을 시행했다. 

 정치 지도자의 경제 철학은 그 자체가 경쟁력이다. 잘 알려진 마크롱의 에피소드다. 조경사로 일하다 실직한 25살의 청년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도 답이 없다”며 구직의 어려움을 마크롱에게 호소 했다. (2018.9.15.) 마크롱은 일할 의지나 의욕만 있다면 어디든 일자리가 있다며 ‘구직 방향을 바꾸기’를 조언했다. 곧 비난이 쏟아졌다. 실직한 청년의 곤란함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력서를 낸다고 없는 조경 일감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의 나이면 사회수요가 많은 쪽으로 전직(轉職)을 고려해 봄직도 하다. 일자리는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기에 자신이 책임지고 찾는 것이 맞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다면 무슨 말을 했을 가. 아마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국가가 눈물을 닦이 드리겠다“고 했을 것이다. ’국가가 최대의 고용주‘여야 한다는 그의 지론은 공공부문의 심각한 비대를 낳았다.  

 문정부 출범 전인 2016년을 기준으로 2020년 까지 ’공공부문과 500대 기업의 인건비‘를 비교하면, 민간부문 인건비는 같은 기간 동안 75.3조원에서 85.9조원으로 10.6조원 증가했다. 증가율은 14.1%이다. 반면 같은 기간 공공부문 인건비는 71.4조원에서 89.5조원으로 18.1조원 증가했다. 증가율은 25.4%이다.(2021. 7. 28 중앙일보)

 절대금액으로 공공부문 인건비가 500대 기업의 인건비를 추월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공부문과 부가가치를 창출해 스스로 굴러가는 민간부문의 비중이 바뀐 것이 문재인 정부의 최고의 실정(失政)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같은 사실에 배태된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이를 자신의 치적으로 오인하고 있다.

O 한국판 하르츠 개혁이 필요한 이유 

 한국 경제의 활력 제고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기득권 세력에 막혀 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알고 있다.  

 문정부 들어 전국 제1 노조가 민노총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문정권 출범의 1등 공신으로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귀족 노조의 기득권 추구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 일 뿐이다. 결국은 돌고 돌아 자신들의 존립기반을 와해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고용경직성을 해소하지 못하면 ‘국가적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일자리 참사의 고리를 끊으려면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 노사관계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고용주와 피고용인 모두에게 윈윈(win-win)이 된다. 

 우리 사회는 어느덧 ‘실업이 좋은 직업’이 되고 말았다. 실업이 은신처가 될수록,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착각할수록 ‘국민은 국가에 의존’하게 된다. 그 길이 하이에크가 설파한 ‘노예의 길’인 것이다. 문명사적 흐름으로 볼 때, 국가간섭주의와 유사전제주의에의 경도는 국가 쇠락을 자초하는 것이다. ’한국판‘ 하르츠 개혁을 문재인 정부에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이다. 사고가 닫힌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자유와 시장의 복원‘을 위한 지난한 싸움이 요구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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