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왼쪽부터), 장민희, 강채영이 대진표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5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왼쪽부터), 장민희, 강채영이 대진표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0 도쿄올림픽에서 혼성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남녀 단체전을 포함해 3개의 금메달을 따낸 한국 양궁이 30일, 31일 이틀에 걸쳐 남녀 개인전 금메달에 도전한다. 개인전 금메달을 석권할 경우 이번 올림픽의 양궁에 걸린 5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하게 된다.

워싱턴포스트, “한국은 매혹적이고 무자비한 양궁의 나라”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을 ‘매혹적이고 무자비한 양궁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경기 내내 웃는 얼굴로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제압했다며, 한국 대표팀의 여유로움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대표팀은 경쟁 중 어떤 팀보다 자주 미소를 지어 적과 관객을 헛갈리게 한 뒤 웃고, 파괴하고, 웃고, 파괴한다”라며 “마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만난 듯한” 여유로움을 보였다고 평했다.

실제로 이런 찬사는 과찬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한국 양궁은 1988년 올림픽에 참가한 이래로 금메달을 한번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햇수로는 33년째이며, 올림픽으로 따지면 9연패인 셈이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한국 양궁은 왜 강할까?’라는 이슈가 제기된 바 있지만, 체계적인 해석은 없었다.

지난 26일 도쿄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 우승한 김제덕(왼쪽부터), 김우진, 오진혁이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6일 도쿄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 우승한 김제덕(왼쪽부터), 김우진, 오진혁이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옛 문헌이 우리 민족의 조상을 동이(東夷)족이라고 칭할 정도로 활을 잘 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거나, 세계에서 가장 능숙한 젓가락질 능력에서 알 수 있듯이 손으로 하는 운동에 탁월하다는 식의 구수한 이야기들이 회자됐을 뿐이다.

‘실력주의’, ‘무파벌’, ‘두터운 선수층’, ‘과학적 훈련’ 등이 비결로 꼽혀...대한양궁협회 회장인 정의선 현대차 회장의 역할 커

이 질문에 대해 이번에는 좀더 과학적이고 심층적인 해석이 제기돼 주목된다.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권영철 대기자와 KBS 다큐 ‘활’을 제작한 정범수 피디의 ‘역사적 관점’에 주목하게 된다. 권영철 대기자는 5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의 효율성 ▶선수 선발의 공정성 ▶두터운 선수층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정부와 지자체, 기업의 후원을 꼽았다.

권 대기자는 “첫째 이유는, 양궁 국가대표를 오로지 현재의 실력만으로 뽑는다”는 점을 들었다. 한때 전년도 국가대표가 1차전, 2차전을 건너뛰고 3차전부터 참가하던 방식에서 탈피, 2019년부터는 1차 대표선발전때 기존 국가대표 선수들을 모두 참가하도록 바꾼 것이다. 전년도 메달리스트로서 누릴 수 있던 특혜를 모두 폐지하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하게 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둘째로는 선수 선발에 학연이나 파벌, 원로 추천, 이런 요소들이 전혀 없다는 점을 꼽았다. 과거 몇몇 효자 종목 중에서 특정 선수 밀어주기, 파벌, 학연, 지연 등으로 시끄러웠던 종목이 있었다. 결국 지금은 존재감이 사라진 그런 종목과는 달리, 양궁은 선수 선발에서 철저하게 ‘실력’만으로 승부를 가린 것이다.

셋째는 선수층이 두텁다는 장점을 들 수 있다. 선수 개인 간의 실력 차이도 크지 않다 보니, “올림픽 본선에서 메달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힘들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이다. 이번에 최고령 궁사로 참가한 오진혁 선수는 2012년 런던올림픽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2016년 리우올림픽 선발전에서는 탈락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40살의 나이로 16살의 김제덕과 한 팀으로 출전한 것이다.

29일 오후 오진혁(40·현대제철)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도전이 일찍 끝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남자 단체전에서 김우진(청주시청), 김제덕(경북일고)과 금메달을 합작한 오진혁은 개인전에서 2관왕에 도전했으나 불발됐다.

29일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2회전(32강)에서 오진혁이 아타누 다스(인도)에게 패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9일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2회전(32강)에서 오진혁이 아타누 다스(인도)에게 패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넷째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꼽을 수 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 참가한 남자 대표팀이 결승전에서 미국에 진 이유가 ‘경기장 환경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체계적인 훈련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어디에서나 1등을 할 줄 알았는데, 경기장 환경에 따라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다.

이번 올림픽 참가를 앞두고 양궁 대표팀은 진천선수촌에 올림픽이 열리는 일본 유메노시마 양궁장과 똑같은 경기장 시설을 마련하고 연습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경기장과 똑같은 환경에 미리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바닷가에 위치한 유메노시마 양궁장 적응을 위해서 신안군 자은도를 찾아서 훈련을 했을 정도였다.

여자 양궁 단체 결승전 찾은 정의선
여자 양궁 단체 결승전 찾은 정의선 회장. [사진=연합뉴스]

 

마지막으로는 양궁이 비인기 종목인 탓에 정부, 지자체, 기업의 후원을 빼놓을 수 없다. 실업팀 대다수가 지방자치단체들이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선수들이 공주시청, 청주시청, 서울시청, 전북도청 이런 소속이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그룹이 꾸준한 지원을 해준 덕도 크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1985년에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이래, 정의선 회장 역시 2005년부터 16년째 계속 대표팀을 후원하고 있다. 이런 점도 양궁이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역사적 관점도 대두...“무과 시험 합격 포인트는 궁술”, “중국은 창, 일본은 칼, 우리는 활”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권 기자의 원인 분석 외에, KBS 시사직격의 정범수 피디가 제기하는 ‘역사적 관점’도 관심을 모은다. 정 피디는 한국 양궁이 리우올림픽에서 8연패를 달성하자, “한국 양궁이 왜 강한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다큐멘터리 ‘활’을 제작했다. 정 피디는 “단순히 공정하게 선발했다, 열심히 훈련했다, 이런 상식적인 답변만으로는 한국 양궁의 우수성을 분석하기가 어렵다”며 “다른 나라 선수들도 열심히 노력한다”고 지적했다.

뭔가 특별한 답을 찾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정 피디가 찾은 답은 ‘역사적 관점’이었다. 정 피디는 “불과 120년 전만 해도 과거 시험의 무과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활을 잘 쏠 줄 알아야 했다”는 점을 들었다. 무과 시험에서 사용된 무겁고 큰 활을 쏘기 위해서 특별한 기술을 익혀야 했고, 그래서 기술이 발달했다는 설명이다.

또 전쟁 상황에서는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의 특성상 ‘산성에서 수성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었으며, 활은 적을 멀리 쫓아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다는 것이 정 피디의 주장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창, 일본에서는 칼, 우리나라는 활이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는 점도 강조했다. 따라서 당시의 최신식 무기인 활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익힌 기술과 감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주몽의 후예’ 혹은 ‘피 속에 전해져 내려오는 DNA설’로 여겨질 수 있는 주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한 무과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익힌 기술이 지금껏 전해져 내려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주장으로는 무과에 응시하지 않았던 여성이 양궁을 잘하는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는 반박도 제기된다.

하지만 중국의 창, 일본의 칼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활을 중요한 무기로 다루며 기술을 익혔다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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