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민 객원기자
정지민 객원기자

그간 일어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새해는 또 떠올랐다. 그 점을 감안해서라도 자유주의 우파에게 주어진 과제들과 결속 가능성을 대충이라도 그려보려 했지만, 맥이 빠진 덕담 아닌 덕담으로 새해를 출발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 바닥이라는 것을 직시하는 것이다. 단순히 소위 자유주의 진영이 제도권 정치라는 맥락에서 갈 길이 막막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자랑스럽다고 할 만한 성과들을 가능하게 해준 원동력을 이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재건과 성장을 이끈 소수의 인물들은 어딜 가나 극소수의 비율로 존재하는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들을 어떤 지표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곳곳에서 민족의 우수성, 근면성, 성실성 등이 강조되었다. 그러한 믿음은 어떤 분야에서 진전이 있을 때마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민족과 국가를 나누는 얇지만 뚜렷한 선은 종종 이런 방식으로 극복된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매우 불쾌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믿음은 그 자체로는 허상이다. 어쩌면 단순하게 한번쯤은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염원과 열등감에서 출발한 자긍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투지가 강하다느니, 우수하다느니, 지능지수가 높다느니, 무심코 내뱉고 또 들어왔던 표현들이 정말 철저하게 현실에 근거한 것일까. 정말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표현들은 대한민국을 현재의 위기 속에서 사수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달콤하고 익숙한 것이 아니다. 온갖 인신공격적인 루머를 생성하며 스스로 부패한 권력을 견제하는 건강한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들어온 것이다. 후자의 경우, 그런 자긍심이 지금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우리 민족은 실제로 뛰어나다, 그렇지 않느냐는 반발심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지난 한 해를 곰곰이 돌이켜보길 권한다. 조금 더 시간이 있다면 광우병 파동, 그 전의 미군 장갑차 시위, 월드컵 당시의 군중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그도 아니면, 우리와 한 민족인 북한의 주민들은 왜 그렇게 살아왔는가 생각해보기 바란다. 냉정하게 보아 시민의식, 윤리의식, 지능, 판단력, 분별력 등에 있어 이 민족이 특히 뛰어날 이유는 사실상 없다. 혹여나 타 민족보다 아웃풋(output)이 높은 분야가 있다면,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인풋(input)이 있었던 결과라고 보면 거의 정확하다.

필자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이어, 탄핵 시도와 그에 대한 저항, 그리고 미군 장갑차 사고 후의 반미 시위를 생활 속에서 목격했다. 그 안에 들어가 보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는 필자가 사회,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보수 정당 지지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온 이력이 결정하는 것이다.

어느 학자에 의해 대중의 잉여 에너지라고 불린 바 있는 광장의 열기는 사실 반미 시위에서건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건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었다. ‘우리’에 대한 막연한 높은 이상에 미달될 때마다 느껴온 각자의 괴리감, ‘우리’가 아닌 순간마다 각자 남들과 비교해온 좌절감, ‘우리’ 속에서 욕설과 고성을 지를 때 느껴지는 해방감, 흩어지고 나서도 ‘우리’의 네트워크에 상황 사진을 공유하며 느끼는 유대감 등등, ‘우리’일 때만 표출이 가능한 복합적인 그 에너지는 평소에는 발산될 수가 없었기에 정말로 잉여적인 것이었다. 평소 ‘우리’가 아닐 때에는 불안감 또는 그 이상이 있다는 전제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불을 당길만한 적당한 연료만 주어지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이 잉여 에너지는 오래 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이것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연료가 대부분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교육시키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끔 해주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연료가 유일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은 잉여 에너지를 평소에는 그저 품고 있는 상태의 장작과도 같다. 불이 당겨졌을 때의 그 열기에 기죽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이들은 장작의 성격을 직시해야 한다. 장작들은 특정 세력들이 특정한 의도로 만들어내고 부풀리는 이야기들을 소비하고, 그것을 시민의식에 기초한 지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지력으로 알아내고 판단한 내용이라고 믿고 분노하며, 자신과 같은 행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그 확신은 더욱 굳어진다. 따라서 가령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을 질타해봤자 소용이 없다. 그들은 그것이 편파성에서 자유로운, 정말 선과 악의 싸움이자 바람직한 교육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언론 매체들은 거짓으로 점철된 연료를 폭로하기는커녕 직접 생성을 해내고, 심지어는 허구의 윤곽이 드러나더라도 전혀 반성이라곤 없다. 반면, 그나마 사실들을 나열해보고 그것으로 진실을 구성해보려는 목소리들은 대부분 연료와 그 제공자들만을 탓하곤 한다. 지금까지는 장작에 대한 비판이 터부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장작의 현실을 직시하고 거기에 맞게 대처해야 할 때다.

거짓으로 이루어진 연료를 단순히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한정적이다. 그들은 마치 한 번도 부화뇌동한 적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익명성 속으로 숨어 들어가기 때문이다. 장작더미와도 같은 그들을 책임 있는 개인들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보다 복잡한 작업이다. 우선적으로는 ‘우리’속으로 도피하려는 대중의 성향을 직접적으로 비판해야 하는데,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우수한 민족의 신화를 철저히 버리는 것이 매우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정지민 객원기자(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왜곡을 폭로한 번역작가)

 jj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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