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적 손해배상으로서의 징벌적 손해배상

법적으로 손해의 배상과 손실의 보상은 엄밀하게 구분된다. 손해의 배상은 불법적인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에 대해 전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고, 손실의 보상은 불법적이지 않은 경우에 발생한 피해에 대해 일부를 보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계약의 불이행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전액 배상이 인정되는 반면에, 태풍으로 인해 발생한 농어민의 피해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그 일부를 보상할 수 있다.

이러한 손해배상의 원칙은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의 발생을 원인으로 하며, 발생한 피해의 전액 배상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인과관계의 인정 및 입증의 문제로 인하여 실제 발생한 피해 전부를 배상받지 못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예컨대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려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지만, 화재의 피해자가 인화물질을 부주의하게 쌓아 두고 있어서 피해가 더욱 커졌다면 그 부분이 고려되어 손해배상액이 경감될 수 있다. 또한, 화재의 피해액 산정에서도 화재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입증된 범위 내에서만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 결과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손해에 대해 전액을 배상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느끼지만, 인과관계 및 피해액의 입증이 어려워서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인정되는 예외적 조치의 하나가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그러므로 징벌적 손해배상의 유용성은 실제 발생한 피해액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액수의 손해배상을 인정함으로써 불법행위의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두텁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을 일반적으로 인정할 경우의 문제도 적지 않다.

예컨대 악의적인 가해자가 아닌 가벼운 과실로 인해 피해를 야기한 경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것이 옳은가?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경우에는 계약의 성실한 이행보다는 오히려 계약의 불이행으로 인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받는 편이 유리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계약 불이행을 유도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도 결코 만만치 않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11일 오후 국회 열린민주당 대표실에서 최강욱 대표를 예방,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5.11(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11일 오후 국회 열린민주당 대표실에서 최강욱 대표를 예방,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5.11(사진=연합뉴스)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한 경우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영국의 판례에서 시작되었고,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들은 -마치 미국에서 널리 이용되는 유죄협상제도(Plea Bargaining)가 다른 나라에서는 보편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이를 보편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법적 정의는 불법에 상응하는 정도의 형벌 또는 배상을 요구한다. 작은 불법에 대해 과중한 형벌, 지나친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불합리하고, 정의에 반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이 널리 인정될 경우에는 이를 악용하고자 하는 도덕적 해이의 위험성이 커진다. 일부러 피해의 발생을 유도한 이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엄청난 액수의 배상을 청구하려는 사례들은 실제로 미국에서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셋째, 과도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영세 상인들을 몰락시키며, 기업의 발목을 잡고, 심각한 경우에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물론 소비자의 희생 하에 기업들을 성장시키는 것은 옳지 않지만, 거꾸로 기업의 희생을 전제로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도 올바른 방향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피해액의 정확한 입증이 어려워서 제대로 손해배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 공익적 필요성은 크지만, 도덕적 해이의 위험성은 매우 작은 경우 등이 그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조건을 갖추었을 때 예외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는 경우가 몇몇 법률들에서 규정되고 있다.

「제조물 책임법」 제3조 제2항은 “제1항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도 그 결함에 대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결과로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은 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자에게 발생한 손해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진다”고 규정하였다.

「특허법」 제128조 제8항은 “법원은 타인의 특허권 또는 전용실시권을 침해한 행위가 고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 제2항부터 제7항까지의 규정에 따라 손해로 인정된 금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39조 제3항은 “개인정보처리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개인정보가 분실⋅도난⋅또는 훼손된 경우로서 정보주체에게 손해가 발생한 때에는 법원은 그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 다만, 개인정보처리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음을 증명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였다.

이상의 경우는 고의 또는 중과실을 요건으로 하며, 피해액의 정확한 입증이 어려운 경우에 해당한다.

「공익신고자보호법」 제29조의2 제1항은 “공익신고등을 이유로 불이익조치를 하여 공익신고자등에게 손해를 입힌 자는 공익신고자등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3배 이하의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진다. 다만, 불이익조치를 한 자가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을 입증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환경보건법」 제19조 제2항은 “제1항의 피해가 사업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하여 발생한 경우에는 고의 또는 손해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 손해발생을 줄이기 위하여 노력한 정도, 환경유해인자의 유해성 등을 고려하여 그 피해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위의 두 가지 경우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악용될 소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있는 경우이다.

그런데 최근 징벌적 손해배상을 더욱 확대하려는 논의가 많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갖는 장점만을 보고, 그 문제점을 간과할 경우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송영길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21.6.17(사진=연합뉴스)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송영길 대표와 김용민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2021.6.17(사진=연합뉴스)

언론중재법 개정에 의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은 왜 문제되는가?

최근 징벌적 손해배상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이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허위⋅조작정보의 폐해를 막기 위해 3~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지만, 문제의 본질은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부과가 합리적 기준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불합리한 기준에 의해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인지에 있다. 이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개정안의 문구를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김용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의2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30조의2(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

① 언론등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른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을 받은 자는 기준손해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의 배상을 언론사등에 청구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른 기준손해액은 구체적인 금액으로 산정할 수 있는 경우 그 금액으로 하고, 구체적인 금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5천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금액 중 보도에 이르게 된 경위, 피해 정도 등을 종합하여 정한다.

③ 제1항의 경우 정무직공무원 및 그 후보자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기업 및 그 주요주주, 임직원에 대한 허위⋅조작보도에 대하여는 그 피해자를 해(害)할 목적이 있는 경우에 한정하여 적용한다.

이러한 개정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미국과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보도에 대해서만 특별히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특별한 제한이 되며, 결국 언론에 대한 억압이 되는 것 아닌가?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조건, 즉 피해액의 정확한 입증이 어렵거나 도덕적 해이의 위험성이 배제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큰 것은 아닌가?

셋째, 징벌적 손해배상의 인정을 위해서는 미국 판례에서는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요구하는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를 요구하지 않고 있는 것이 합리적인가? 개정안에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적 악의란 사실상 고의 내지 미필적 고의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정무직 공무원 및 대기업 임직원 등뿐만 아니라 모든 경우에 피해자를 해()할 목적이 인정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결이 없는 상태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것은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중재법의 본질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 및 운용에 관한 현행법의 체계에도 맞지 않는다. 사안 자체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해야 하는 경우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무직 공무원 및 대기업 임직원 등과 그밖의 피해자들에 대해 적용의 기준을 나누는 것도 합리적 근거를 가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수를 생각하면, 그리고 과거 야당 패싱으로 강행되었던 여러 입법들의 선례를 보면,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법의 논리를 무시하고 정치적 힘에 의해 일방적으로 도입된 법제도가 결국 오래 가지 못했던 경험은 과거 제5공화국 당시의 국보위 입법 등 우리 역사 속에서도 적지 않다. 이러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왼쪽)가 11일 오후 국회 열린민주당 대표실을 방문해 최강욱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2021.5.11(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왼쪽)가 11일 오후 국회 열린민주당 대표실을 방문해 최강욱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2021.5.11(사진=연합뉴스)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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