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정부가 우리나라에 45만회분에 달하는 모더나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루마니아 정부가 우리나라에 45만회분에 달하는 모더나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우리 정부가 루마니아 정부로부터 모더나 백신 45만회분을 공여받기로 했다. 지난 6월 미국으로부터 얀센 백신 100만회분을 받은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이스라엘로부터 화이자 백신 78만 2000회분을 제공받은 바 있다. 전 세계에 K방역을 자랑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자화자찬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21일 루마니아 국영 통신사 아제르프레스에 따르면, 루마니아 정부는 지난 19일(현지시간) 한국에 유통기한이 임박한 모더나 백신 45만회분을 기부하는 안을 승인했다. 이 기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현지언론은 설명했다.

‘G8’ 자처하던 한국, 동유럽의 작은 국가에게도 도움받아야

‘G8’의 반열에 올랐다고 자랑해온 한국이 경제적으로 낙후됐다고 생각해온 동유럽의 작은 국가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다수 국민들은 “자존심이 상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루마니아는 이달 초 튀니지, 이집트, 알바니아, 베트남 등에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130만회분을 기부했다. 지난달에는 몰도바, 조지아 등에 AZ·화이자 백신을 10만회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마니아가 우리나라에 모더나 백신을 제공하는 배경은 여전히 의문투성이이다. 유럽연합에 속하지만 서유럽 국가에 비해 경제 및 보건환경적으로 뒤처지는 루마니아의 코로나 상황은 다른 나라를 챙겨줄 정도로 좋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의 코로나 19 누적 확진자는 현재까지 108만 9817명, 사망자 3만 4388명에 달한다. 2차 접종 완료자 비중도 8월 19일 기준, 전체 인구 대비 26.1%로 유럽내에서 높은 편이 아니다. 루마니아가 확보해 둔 코로나19 백신이 있다면, 자국민 접종부터 먼저 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정부가 루마니아의 모더나 기부와 관련해 명확하게 밝혀야 할 내용은 3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① 단순 기부인지, 백신 스와프인지?...정부는 ‘기부’가 아니라 ‘스와프’라고 주장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제공받은 얀센 백신은 우방국 차원의 단순 기부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하며 얀센 백신을 지원했다. 지난달 이스라엘로부터 화이자 백신 78만 2000회분을 받은 것은 동일 물량을 9~11월에 반환키로 한 백신 스와프(교환) 방식이다.

정부가 이스라엘과 백신 교환(스와프) 협약을 맺고 확보한 화이자사의 백신 70만회(35만명)분이 지난달 7일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정부가 이스라엘과 백신 교환(스와프) 협약을 맺고 확보한 화이자사의 백신 70만회(35만명)분이 지난달 7일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루마니아의 국영 통신사는 ‘인도적 차원’이라고 배경을 설명하고 있지만, 단순한 기부인지 백신 스와프인지 자세한 설명이 없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방호복 지원에 대한 보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3월 루마니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수송기를 통해 한국산 방호복을 긴급 수송한 바 있다.

정부는 ‘기부’가 아니라 ‘스와프’라는 입장이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미국의 얀센 백신 공여, 이스라엘과 백신 교환 등 주요국들과 백신 협력을 추진해온 바 있다"며 "루마니아도 협력 논의 대상국 중 하나로서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도 21일 밤 늦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 기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보도되고 있는 루마니아 정부의 백신 무상 공여는 사실이 아니며 우리나라와 루마니아 간 백신 스와프(교환) 차원에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② 유통기한은 얼마나 남은 제품인지?

지난달 이스라엘의 화이자 백신 스와프 당시 이스라엘은 유통 기한이 3~4주 정도 남은 백신을 제공했다. 그 정도의 기간 안에 78만회분을 바로 접종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화이자 백신을 제공한다는 배경까지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루마니아가 제공하는 모더나 백신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국민들은 불안한 상황이다. 더구나 루마니아가 유럽연합에 소속된 국가이지만 의료체계나 보건복지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불안감이 가중되는 실정이다.

따라서 관련 기사 댓글에서는 “루마니아가 제공한다는 모더나 백신이 제대로 관리되어 있었는지 걱정이다”, “믿고 맞아도 되는지 모르겠다”라는 우려가 많다.

향후 정부 방역 당국이 분명히 밝혀, 국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워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③ 기부 형식 이면에 다른 조건이 있는지?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홍준표 의원은 루마니아의 모더나 백신 기부에 대해 "그렇게 동냥 받듯 백신을 구하지 말고 진작 좀 백신 선진국과 교섭해서 구하지 그랬느냐"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홍 의원은 21일 페이스북에 "K방역이라고 애꿎은 국민들만 옥죄고 세계를 향해서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화자찬 떠들더니 백신 거지가 됐느냐"며 일침을 가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페이스북에서 루마니아로부터 모더나 백신을 기부받는 부분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사진=홍준표 의원 페이스북 캡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페이스북에서 루마니아로부터 모더나 백신을 기부받는 부분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사진=홍준표 의원 페이스북 캡처]

모더나 백신 수급 차질이 심각한 상황에서 ‘동냥 받듯’ 모더나를 받아온 배경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겉으로는 기부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면에 다른 조건이 없는지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이제껏 모더나사와의 계약 내용에 대해서 함구하며 밝힐 수 없다고 주장해온 정부가 루마이나와는 ‘어떤 조건’으로 모더나를 받아오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일각에서는 루마니아의 국내 사정상 모더나보다 아스트라제네카를 선호하기 때문에, 남는 모더나 백신을 우리나라에 제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루마니아가 EU에 속해 있어 영국산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수급이 원활하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모더나를 제공받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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