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과 '통일'은 엄연하게 다른 문제...대북정책은 상생정책이나 통일전략은 자유민주주의 통일
'통일'의 측면에서 북한체제는 소멸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흡수돼야 하는 대상
북한정권 지원하는 남북협력은 분단 고착, 심지어 주체통일에 기여
통일부의 한미연합훈련 반대는 국가안보역량 약화, 한미동맹 이완,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초석을 훼손하는 것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최근에도 정가에서 통일부와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과거에도 이런 주장들이 간간히 흘러나왔지만, 그때마다 잔잔한 파장이 일어나다가 이내 잠잠해지곤 했다. 여가부 폐지와 관련된 주장들은 다양하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온상이 되어 혈세를 쓰면서 남성혐오적이고 역차별적인 제도들을 만들어낸다는 주장, 여성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므로 여성 문제를 다루는 정부 부처를 별도로 두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주장, 전통적 가족관계를 붕괴시키는 동성애나 기존의 성(性)개념을 파괴하는 다성(多性)론의 부상을 억제하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주장 등이다.

통일부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주장들이 있다. 당당한 입장에서 북한을 선도하기는커녕 맹목적으로 북한에 굴종하는 통일부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는 것이 대표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통일부는 폐지되기보다는 ‘남북협력부’로 개칭되어야 한다. 분단국 대한민국은 서로 상충적인 ‘상생과 통일’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쫒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으며, 때문에 상생을 위해 남북간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정부 부처도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제대로 된 상생정책도 통일전략도 없다는 점이며, 그렇게 된 데에는 ‘통일부’라는 모순스러운 명칭이 한 역할을 해왔다.

'상생'과 '통일'은 상충되는 두 명제

예나 지금이나 통일부의 주된 업무는 남북협력이다. 통일부는 남북회담의 주무 부처였고, 남북 간 교류협력 업무를 관장하는 창구였다. 특히, ‘진보 정부’ 동안 통일부는 남북 정부 간 화해와 협력을 주도하는 핵심 부처로서 맹활약을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통일부는 ‘햇볕정책’의 창구였고 노무현 정부에선 ‘평화번영정책’의 주무 부처였다.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를 내걸고 평양 정권과의 대화에 명운을 걸고 있는 문재인 정부 들어 통일부의 역할을 더욱 커졌다. 문제는 이런 업무들을 추진하는 부처를 ‘통일부’로 칭하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북한과 화해협력하는 것이 통일의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총리실 산하 통일연구원이 수행하는 연구 중 상당 부분은 ‘통일’의 이름으로 남북 교류협력‘을 다루는 것이며,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도 ‘통일‘의 이름으로 공무원들에게 남북 교류협력 현황과 중요성을 가르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연구자나 공무원이 ‘상생’을 ‘통일’로 오해하게 됨은 당연한 이치다. 그 후유증은 엄청나다.

상생과 통일은 엄연하게 다른 문제다. 대한민국은 대북정책을 펼치면서 동시에 통일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분단국인데, 대북정책은 곧 상생(相生)정책이다. 즉, 대북정책이란 북한을 주권국으로 그리고 협력과 공생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펼치는 정책으로서 궁극적 목적은 남북이 무력충돌을 피하고 상생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의 모든 정부들은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이에 비해, 통일전략이란 헌법 제4조가 규정한 ‘자유민주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구하기 위해 구사하는 대북 전략이다. 즉, 헌법은 통일을 위해 전쟁을 해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반드시 자유민주주의 통일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통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 지역은 대한민국의 일부이어야 하며 북한 체제는 언젠가 소멸되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흡수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은 주체통일을 추구한다.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 ‘전국적 범위에서의 사회주의 혁명 완성’을 명시하고 있으며, 북한식 주체통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해야 할 남반부’이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언젠가 소멸되어 북한체제로 흡수되어야 할 대상이다. 요컨대, 상생은 남과 북이 협력하여 공유하는 것이지만, 통일은 남과 북이 제로섬 관계에서 상대방 체제를 죽이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문제다.

비굴한 대북협력은 주체통일에 기여

북한과 교류하고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상생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통일과는 거의 무관하다. 남북협력이 곧 자유민주주의 통일로 가는 길이 되기 위해서는 대북지원이나 경제협력이 북한 주민을 일깨워 남북 체제 간 우열을 고민하게 만들어야 하고, 북한 주민이 바깥 세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에게 탈북을 최종 결심했던 순간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아들이 평양에서는 왜 인터넷이 되지 않느냐고 했을 때”라고 답했었다. 그런 남북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북 주민 간 직접 접촉이 이루어져야 하고, 북한 주민이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어야 하며, 남북협력을 통해 바깥 소식들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남북협력을 극도로 경계한다.

‘자본주의 오염’을 우려하여 북한 주민의 민생에 직접 기여하는 주민 간 접촉을 극력 꺼리는 북한 정권이 정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남북협력은 일시적으로나마 북한의 도발을 자제시키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자유민주주의 통일’보다는 분단의 고착에 기여한다. 다시 말해, 북한 정권이 방법과 시기를 결정하고 분배권을 행사하는 남북협력은 북한 정권의 권위를 고양시키며 평양 정권과 체제에 대한 주민의 충성심을 강화하는 선전 수단이 된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시에도 평양의 매체들은 “남쪽의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와서 김정일 장군님을 알현하였다”라고 보도했었다. 특히 한국 정부가 평양 정권의 ‘갑(甲)질’을 수용하면서 ‘을’의 입장을 자처하는 비굴한 남북협력은 상생을 넘어 주체통일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를 허약하게 만들면서 북한 정권과 권위와 체제의 정통성을 한껏 강화시켜주는 것을 굳이 ‘통일’이라고 우긴다면 자유민주 통일이 아닌 주체통일을 의미하는 것이 되고 만다. 결국, 과거 한국의 통일부는 ‘통일’이라는 이름을 걸고 상생 업무를 해온 것이며, 최근의 통일부는 ‘통일’의 이름을 걸고 주체통일에 유리한 언행들을 해온 셈이다.

잘못 사용되고 있는 ‘통일’이라는 표현이 초래한 부작용들은 이미 만연해 있다. 많은 국민들은 상생과 통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남북협력=통일’이라는 등식을 믿는다. 북한에 굴종하면서 퍼주기를 주장하는 친북 좌파들이 스스로를 ‘통일일꾼’으로 칭하기 때문에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은 한국정부 전복을 기도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을 때 “통일역군인 나를 가두려고 한다”고 항의했고, 재미 친북 활동가 신은미 씨도 자신의 활동을 ‘통일콘서트’라고 불렀으며, 통진당이 해산 명령을 받았을 때 당시 이정희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의 뿌리를 잘라내려 한다”고 항변했었다. 이 논리의 연장선에서 한국의 좌파들은 평양 정부가 싫어하는 조치들을 주장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무분별한 퍼주기에 반대하고 원칙있는 대북교류를 주장하거나 확고한 안보국방 태세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향해 “남북 간 교류협력에 반대하는 반통일 인사’라는 논리를 들이댔다. 적지 않은 젊은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주체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통일역군’이 되고 정상적이고 당당한 남북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이 ‘반통일 세력’이 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통일부가 한미 연합훈련에 반대할 수 있나?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는 한미 연합훈련을 반대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2021년도 상반기 동맹훈련을 앞둔 2월 통일부는 “한미 연합훈련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북갈등을 점화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훈련의 연기를 주장했었고, 8월 연합연습을 앞둔 지난 8월 초에도 비슷한 논리로 연기를 주장했다. 그때마다 한미 연합훈련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뒤를 이었다. 2월에는 41개 여성단체와 여권의 의원들이 훈련에 반대하는 집단성명을 냈었고, 8월에도 74명의 여권 의원들이 연합연습 연기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냈다. 하지만, 통일부와 좌파들이 한 목소리로 한미 연합훈련에 반대함으로써 국민은 한미동맹과 연합훈련이 마치 통일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통일을 위해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연합훈련 중단 등이 필요한 것으로 아는 젊은이들도 많이 생겨 났다.

하지만 현실 국제정치에서는 안보역량이 약한 나라가 더 큰 안보역량을 가진 나라를 흡수하여 평화적으로 통일한 사례는 없다. 바꾸어 말해, 북한이 한국보다 더 막강한 안보역량을 가진 상태에서 순순히 자신들의 체제와 권력을 포기하고 한국 체제로 걸어들어올 가능성은 전무하며, 북한만이 핵무기를 가진 비대칭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때문에 한국이 우세한 안보역량과 확고한 안보태세를 갖추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북한의 불평을 초래하여 남북관계가 불편해지고 남북협력이 저해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에게 군사도발을 통해 얻을 것이 없음을 확인시킴으로써 오히려 안정적인 남북협력 시대를 열어가는 기본조건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을 위한 초석이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동맹의 안보역량을 확인·점검하고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제하는 연합연습은 그 자체로 안정적인 남북상생과 자유민주 통일을 위한 초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가 연합연습에 반대하는 것은, 그것도 북한이 불변의 적화통일 목표 하에서 나날이 핵무력을 증강하면서 우리의 연합훈련을 시비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통일부’ 간판을 단 정부 부처가 한미 연합훈련에 반대한다면, 이는 결국 통일부가 스스로 국가안보역량을 약화시키면서 한미동맹을 이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초석을 훼손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통일부가 이런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북협력부’로 개칭하는 것이 시급하다.

함부로 ‘통일’을 말할수록 상생도 통일은 멀어진다

한국 정부는 평화적 상생을 위해 북한과 교류협력도 해야 하고 동시에 북한과의 체제경쟁 승리를 통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 상충되는 두 명제를 동시에 안고 가는 데에는 당연히 애로가 수반된다. 공개적으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앞세우는 것은 북한 체제의 소멸을 전제하는 것이 되어 북한이 반발하여 남북관계가 불편해지고 상생이 어려워진다. 박근혜 정부가 통일대박론을 앞세우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안했을떼 북한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고 반박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때문에 상생을 위한 정책은 공개적으로 펼칠 수 있지만, 통일은 ‘전략’ 차원에서 깊숙한 것에서 다루어야 한다. 상생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통일’이라고 하면 국민은 분단 고착화에 기여하는 것들을 통일사업으로 오해하며, 좌파들은 주체통일을 도우면서 스스로를 ‘통일역군’을 자칭하여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과거 서독은 동독 업무를 관장하는 부처를 ‘내독부’라고 불렀고, 공개적으로 ‘통일’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요컨대, 상생도 우리의 대북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남북 간 교류협력을 추구하는 부처는 필요하지만 명칭은 ‘남북협력부’가 되어야 한다. ‘남북협력부’ 간판 아래 북한에 대해 전향적인 생각을 가진 인사들이 상생에 앞장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남북협력부가 ‘통일역군’으로 위장하여 주체통일을 비호하는 종북좌파들의 온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군과 안보기관들이 안보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것을 훼방하지 말아야 한다. 남북화해와 굳건한 안보는 함께 굴러가야 하는 두 개의 수레바퀴이기 때문이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건양대 교수·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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