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애플 등 앱마켓 사업자가 특정 결제 수단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구글 갑질 방지법'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구글과 애플 등 앱마켓 사업자가 특정 결제 수단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구글 갑질 방지법'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인앱결제(IAP·In-App Payment)’를 법으로 제재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일명 ‘구글 갑질 방지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구글‧애플과 같은 플랫폼 기업이 자사의 앱마켓에서 자사의 결제수단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만든 법안이다.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가진 독과점 플랫폼 기업에 대해 세계 최초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유럽에서도 구글이나 애플의 독과점 횡포를 막기 위해 유사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구글과 애플의 글로벌 인앱결제 수수료는 연간 38조원에 달해

하지만 이들 기업은 그동안 막강한 현금 동원력과 소송으로 각국 정부의 견제를 무력화시켜왔다. 내야 하는 벌금보다 벌어들이는 수수료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회가 최초로 ‘제대로 된 제재 법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으로 글로벌 기업의 독과점과 세계 각국의 제재가 정면 충돌할 때마다, 이 법안은 최초의 기준으로 소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앱결제’는 구글·애플이 자체 개발한 내부 결제시스템으로 유료 앱·콘텐츠를 결제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동안 앱 개발사가 제공하는 디지털 콘텐츠와 관련해, 구글은 게임에 대해서만 인앱결제를 강제해왔다. 반면 애플은 게임뿐만 아니라 웹툰, 음악, 영상에 대해서도 모두 인앱결제를 강제하고, 기업 매출액에 따라 수수료 15~30%를 부과해왔다. 인앱결제를 통해 구글과 애플이 전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수수료는 매년 38조에 이르는 것으로 관측된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는 게임을 결제하기 위해서는 ‘인앱결제’를 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강제적인 결제방식은 금지된다. [사진=구글 플레이스토어 캡처]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는 게임을 결제하기 위해서는 ‘인앱결제’를 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강제적인 결제방식은 금지된다. [사진=구글 플레이스토어 캡처]

이번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게임사들은 구글과 애플에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고 자사 결제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웹툰을 비롯한 콘텐츠와 관련해 애플에 막대한 수수료를 내던 네이버는 대표적 수혜 기업이 될 전망이다.

9월 중 국무회의 의결 거쳐 개정안 시행...소비자 결제금액 낮아지는 효과 생겨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제금액이 낮아지는 혜택이 기대된다. 현재 인앱결제를 강제하는 애플 앱스토어에선 네이버 웹툰을 볼 수 있는 쿠키 10개를 구입하기 위해 1200원을 내야 하지만, 인앱결제를 하지 않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선 1000원을 내면 된다. 애플 앱스토어에서도 네이버 웹툰의 자체 결제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앱스토어 내 결제 금액이 그만큼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앱결제를 강제하는 애플 앱스토어에선 네이버 웹툰을 볼 수 있는 쿠키 10개를 구입하려면  1200원을 내야 한다. 인앱결제를 하지 않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선 1000원만 내면 된다. [사진=애플 앱스토어 캡처]
인앱결제를 강제하는 애플 앱스토어에선 네이버 웹툰을 볼 수 있는 쿠키 10개를 구입하려면 1200원을 내야 한다. 인앱결제를 하지 않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선 1000원만 내면 된다. [사진=애플 앱스토어 캡처]

구글, 애플 등의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지난해 7월부터 추진되다가 1년 만에 통과됐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면서 앱마켓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자, 앱 개발자와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정부로 이송돼 15일 이내에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뒤 시행될 예정이다. 이르면 9월 중 관련 법이 적용될 전망이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해당 법 50조 1항에 새로 추가된 3개 조항이다. 앱 마켓사업자가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특정한 결제방식을 강제하는 행위(9호) ▲ 모바일 콘텐츠 등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 하거나(11호) ▲ 모바일 콘텐츠 등을 부당하게 삭제하는 행위(12호)를 금지하는 규정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인앱결제 확대하려던 구글, 1조원 규모 추가수익 물거품 될 듯

현재 국내 앱마켓은 구글 플레이스토어가 1위를 차지하고 있고, SK텔레콤 자회사 원스토어가 2위, 애플이 3위다. 이 중 3위인 애플은 전 세계 정책상 2011년부터 모든 앱에 대해 인앱결제를 강제하고 있다. 구글은 게임에만 적용하던 인앱결제를 웹툰이나 음악, 영상을 비롯한 모든 디지털 콘텐츠로 올해 10월부터 적용할 예정이었다. 이럴 경우 구글이 우리나라에 벌어갈 수수료만 1조원이 증가할 것으로 관측됐다.

특히 게임에서 구글 스토어의 비중은 우리나라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에서는 갑인 구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이번에 통과된 ‘인앱결제 강제금지법’이 일명 ‘구글 갑질 방지법’으로도 불리는 이유이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웹툰이나 음악, 영상에도 인앱결제를 강제하려던 구글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그동안 인앱결제를 강제해왔던 애플 역시 구글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인앱결제를 강제하지 못하게 된다. 토종 앱마켓인 원스토어가 이 틈을 노려서 성장 가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재 구글과 애플 스토어에 앱 개발사가 내야 하는 수수료는 30%이다. 단 연매출 100만달러 이하 중소사업자의 경우 15%로 제한돼 있다. 토종 앱마켓 사업자인 원스토어는 인앱결제(수수료 20%)와 앱 개발사 자체 결제(수수료 5%)를 병행하면서 양사와 차별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관련 업계는 환영일색, 구글도 ‘법안 준수’ 입장 밝혀

관련 업계에서는 법안 통과를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당장 10월부터 구글 스토어에서 적용될 예정이었던 수수료 부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와 간편결제 서비스 사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제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금지법안의 국회 통과로 결제 관련 기업들에게도 공정한 시장 진입 기회가 제공될 것이다”며 "결제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수수료도 낮아져 게임사 등 앱 기업의 수익성 개선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금지법안이 통과된 이후, 구글은 법안을 준수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구글은 개정안이 가결된 직후 입장문에서 “개발자가 앱을 개발할 때 개발비가 소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글도 운영체제와 앱마켓을 구축, 유지하는 데 비용이 발생된다”며 “구글은 고품질의 운영체제와 앱 마켓을 지원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면서 해당 법률을 준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향후 수 주일 내로 관련 내용을 공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플은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법안이 통과되기 직전 인앱결제 대신 외부결제를 ‘이메일’로 홍보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2011년부터 인앱결제 사용방침을 고수해온 애플의 전략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인앱결제’ 회피하다 애플에게 ‘갑질’ 당한 에픽게임즈 대표, “나는 한국인” 선언

애플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애플을 상대로 반독점 위반 소송을 제기한 개발자들과 이러한 내용에 대해 합의했다. 애플과 개발자들이 합의한 내용 중 핵심은 ‘인앱결제가 아닌 외부의 다른 방식으로 결제하면 혜택이 있다는 사실을 개발사가 고객에게 이메일로 알릴 수 있다’는 점이다.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대표는 ‘구글 갑질 방지법’이 통과된 이후, “나는 한국인이다(I am a Koream)”라고 밝혀 화제다. [사진=팀 스위니 대표 트윗 캡처]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대표는 ‘구글 갑질 방지법’이 통과된 이후, “나는 한국인이다(I am a Koream)”라고 밝혀 화제다. [사진=팀 스위니 대표 트윗 캡처]

그간 애플은 개발사에 인앱결제 방식을 강요해 비판을 받아왔다. 또 개발자들이 외부결제 옵션을 알리는 것도 막았다. ‘에픽게임즈’사(社)는 자사 게임인 ‘포트나이트’ 내에서 앱스토어가 아닌 다른 웹사이트에서 결제하면 수수료를 적게 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홍보했다가, 앱스토어에서 퇴출당한 바 있다. 애플의 갑질에 호되게 당한 것이다.

이번 법안이 통과된 이후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나는 한국인이다(I am a Koream)”라고 밝혀 화제다. 이 내용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3년 베를린 장벽에서 발언한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Ich bin ein Berliner)’를 소환한 것이다. 에픽게임즈는 인기게임 ‘포트나이트’와 게임엔진 ‘언리얼엔진’을 개발한 세계적인 게임 개발사이다. 팀 스위니 대표는 포브스 기준 개인자산이 74억달러(약 8조 5000억원)에 달하는 게임업계 거물이다.

구글과 애플도 결국 이 법안을 따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 기업에게 국내 시장은 5% 남짓한 작은 규모이지만, 이번 법안 통과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팀 스위니 대표와 같은 지지 발언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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