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전투다. 오직 승자만이 살아남는 생사기로의 다툼이다. 막강한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놓고 벌이는 정글 링의 약육강식 싸움은 오로지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다 보니 일패도지의 고배를 피하려는 여야 후보들의 출사표에는 결기가 배인 각오가 단단히 터져 나온다. 정치인은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고난(선거 패배)을 감수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때문에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이를 오히려 반전의 기회로 삼은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든든한 전범(典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여의도 정치 지도자들은 선거의 주요 국면마다 이순신 장군을 현실 정치로 불러들였고, 그 현상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순신 신드롬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다만 평소에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가 막상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이순신 장군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얄팍한 술수가 꼴불견일 따름이다.    

 지난해 ‘검언유착 사건’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이에 갈등이 극에 달하자 윤 총장을 향한 야권의 마음은 더욱 각별해졌다. 급기야 윤 총장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빗대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당시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진짜 충신은 윤 총장밖에 없다”며 “간신들이 충신을 내치는 건 이순신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말했다. ‘윤 총장 때리기’에 주력하는 여권 인사들을 간신이라 하고, 윤 총장은 간신들의 모함에도 백의종군했던 충무공에 비유한 것이다.

 얼마전 윤석열 캠프의 한 참모가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을 추진하는 쪽으로 해석된다”는 발언을 하자, 윤 전 총장은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을 인용해 본인의 의중을 전했다. 즉 “경거망동하지 말고,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과 첫 해전인 옥포해전을 앞두고 휘하 장졸들에게 엄하게 신칙한 말이다. 

 문재인 캠프 출신 신평 변호사는 윤석열 전 총장을 만난 뒤 “통합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말한 ‘재조산하(再造山河)’의 정신에 입각하여 ‘국가대개조(國家大改造)’의 마음가짐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재조산하’는, 2017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써먹었다. 즉 ‘나라를 다시 만들다’라는 뜻에서 “지금 우리가 절박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대개조에 나서야 할 때임”을 선포했는데 전 정권의 적폐 청산을 말하는 것이다.     

 여권 대선주자로 뛰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번 광복절에 전남 여수의 이순신공원을 방문했다. 이 지사는 여수에 있는 이순신공원 내 항일독립운동기념탑에서 항일운동 역사를 기렸다. 이렇듯 반일에 방점을 찍었지만, 극일(克日)을 이룬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는 찾아가지 않았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임명받아 근무한 곳으로 진남관(국보 제304호), 거북선 선소, 어머니의 효심을 담은 비석 등 수많은 유적이 차고 넘치는 곳이다.   

 윤석열 전 총장이 충무공 이순신급(級)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과 추미애 등 여권 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야권 대권 후보로 만들어놓았다. 6월 중순 경 최 전 원장이 야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면서 월성원전 1호기 감사를 놓고 문재인 정부를 향해 날을 세운 것은 그의 ‘정치적 야욕’에 따른 행동이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최 전 원장이 존경하는 역사인물 중에 이순신 장군이 들어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철저한 대비(유비무환 정신)와 자기 관리 덕분에 해전에서 승리했다는 점, 공과 사의 구분이 엄격한 점,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사사로운 정에 끌리지 않은 점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연일 이순신을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선조 같은 행동을 한다”며 비판을 했다. 홍 전 대표는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언론도 없던 시절 조선의 백성들은 한양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의 경복궁부터 불 지르고 항일 의병운동에 나섰다”며 “왜 반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나 알고 나서자, 왜 미·일이 한국과 틀어졌는지 그 책임이나 묻고 반일 운동에 나서자”라며 일본의 대한국 경제보복의 원인이 문재인 정권에 있다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 대권주자 중 한 명인 심동보 해군 예비역 제독(준장)은 존경하는 인물로는 군인으로는 이순신 제독, 정치인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을 꼽았다. 그는 포술장 시절 남해에 온 북한 무장간첩선을 76mm 첫발로 격침시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는데 “이순신 정신을 생각하며 실전적 포술능력 향상을 위한 훈련을 거듭했던 결과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야권 대선주자에서 출마를 포기한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은 경남지사 시절부터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찾기 등 이순신 장군에 흠뻑 빠진 사람이다. 최근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무호남, 무국가(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라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언을 인용해 ‘무부산, 무대선’이라고 했다. 즉 누구라도 부산을 잡지 못으면 내년 대선에서 못 이긴다는 얘기다. 이순신 장군 서간첩에 있는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 명언을 빗대 호남사람들은 여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호남’은 이 나라의 ‘개혁 진보 세력’의 요람이라고 자처한다. 

 그래서인가,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최근 전남 영암군 군서면 이순신 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어록비 현장을 찾아갔다. 이 서간첩은 호남의 정체성과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으로 이순신 장군이 영암군 연주 현씨인 현덕승과 현건에게 쓴 친필 편지가 200년간 보존돼 오다가, 이순신 장군의 8대손인 영암군수 이능권에 의해 확인되어 현충사로 옮겨져 현재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해 4월 1일 전남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광장에서 ‘희망과 통합의 천리길 국토대종주’를 시작해서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안 대표는 국토대종주를 마친 소감을 “국토대종주의 처음과 끝을 오로지 국민을 위해 싸운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기리며 마무리 짓고 싶었다. 국민들께서는 기성정치에서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면 이곳 광장으로 모이셨지만 우리 정치는 바뀌는 시늉만 하고 권력자만 바뀐 뒤 다시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추미애 전 장관과 윤석열 전 총장의 대립이 극대화됐을 때,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를 지낸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추 전 장관은 2020년 이순신 장관”이라고 주장해  탄식과 실소를 자아냈다. 

 이순신 장군의 소환은 비단 대선후보들만이 아니다. 최근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대표단은 올림픽선수촌 바깥에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것은 이순신 장군이 수군 재건을 위해서 동분서주할 때 선조가 수군 폐지를 명하자, 급히 올린 장계의 내용이다.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올림픽 경기가 ‘평화적인 전투’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응원 문구가 내걸리는 것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래 한동안 잠잠했던 이순신 다시 보기는 이명박 정부 들어 본격 재점화됐다. 천안함 사태가 터졌을 때 이 전 대통령은 현충사를 방문해 ‘사즉생(死則生)’의 결기를 다지며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했다. ‘사즉생(死則生)’은 필사즉생(必死則生), “필히 죽고자 하면 살 수 있을 것이다”라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로 명량해전에서 13대 133 중과부적 상황을 맞은 이순신 장군이 전투 하루 전에 장졸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한 말이다.

김동철(이순신 인성리더십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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