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을에 들어서는 이 시점에 국민들의 관심사는 온통 내년 대선 여·야 간판선수가 누가 될 것인가에 쏠려있다. 여당의 경우 충남 경선에서 압승한 이재명 후보가 기선을 제압한 듯하고 큰 이변이 없는 한 지금 분위기가 이어질 듯 싶다. 여배우 스캔들, 형수 욕설, 음주운전, 여러 차례 전과 등 아무리 좋게 보아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보기 힘든 인물이 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더구나 자신들은 깨끗하고 나라를 개혁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정당 후보가 보통 사람보다도 못한 삶의 역정을 살아왔다는 것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다.

한편 야당은 도대체 이 정당이 집권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젖 먹던 힘까지 또 모래알 한 톨이라고 쓸어 모아 선거에 임해도 이기기 힘들어 보이는 정당이 싸움도 시작되기 전에 자기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정권교체의 불씨를 만들었던 인물들을 당 안으로 끌어들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두가 나서 돌을 던지더니, 급기야 ‘여론조사 역선택 방지 규정’을 놓고 벼랑 끝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물론 박혀 있던 돌 입장에서 굴러온 돌이 절대 곱게 보일 리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큰 싸움을 앞두고 자중지란은 문재인 정권의 무능을 넘은 실정과 폭정 그리고 위선에 지친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을 급냉각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여·야 풍경들은 겉으로는 전혀 다른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본질은 같다. 두 현상 모두 각 당의 후보 선출에 여론조사라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여론조사가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국민들의 생각을 파악알 수 있는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렇지만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데 여론조사 결과를 직접 이용하는 것은 한마디로 잘못된 일이다.

무엇보다 정당정치의 기본 원리와 근본적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이 가진 다양한 이념이나 이익을 모아 대변하는 정당정치를 근간으로 한다. 같은 이념과 목표를 지닌 사람들의 결사체로서 정당제도는 다원주의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정당 대표나 후보자는 정당 구성원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당원이나 지지자들이 아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로 대표를 선출하는 것은 정당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실제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여론조사를 통해 정당 대표를 선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선출하는 이유는 선거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순전히 정략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정당을 지지하는 것과 무관하게 누구를 선호하는가” 혹은 “누가 나가면 이길 것 같은가”처럼 오직 이길 수 있는 인물을 뽑기 위한 것이다.

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 정몽준 대통령후보.(사진=연합뉴스)
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 정몽준 대통령후보.(사진=연합뉴스)

정략적 목적에서 처음 여론조사가 이용된 것은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다. 배경·이념 무엇 하나 동질성을 찾기 힘든 두 후보가 오직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를 이길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가를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단일화에 성공하였고 결국 대권을 장악하게 된다. 심지어 여론조사의 오차범위라는 것조차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단순 지지률만 가지고 단일화한 어떻게 보면 무식하면 용감한(?) 방법을 쓴 것이다. 이때부터 한국 정치가 여론조사라는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당을 만들고 부수고 합치는 일을 밥 먹듯 해왔던 후진적 한국정치문화가 여론조사라는 이용해 먹기 좋은 도구를 찾아낸 것이다.

특히 정권교체 분위기가 팽배했던 2008년 대선 당시 대중인기도가 높았던 야당 대표가 여론조사 결과를 경선에 반영한 이후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결국 여론조사결과를 후보 선출에 이용하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패권정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그러면 후보 경선에 여론조사 결과는 반영함으로써 어떤 문제점이 발생할까? 여론조사는 특정 인물이나 대상· 사건들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어떤 정도인가에 대한 개략적 지표지 절대 가치를 지닌 수학적 지표가 아니다. 추출된 표본에서 도출된 결과는 필연적으로 실제 값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결과는 개연성으로 추론된 값이고 통계적으로 이 차이가 의미있는가를 판단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를 수학적 의미로 환산하는 것은 여론조사와 통계를 크게 오·남용하는 것이다.

이같은 여론조사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현재 국민의 힘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 갈등이다. 정당 지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후보 선택에 반영하게 될 경우, 상대 정당 지지자들이 약한 후보를 선택하게 된다는 논리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여론조사 응답자들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응답(socially desirable response)’을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주위 사람들 혹은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거나 위신이 높아질 수 있는 답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 약속 비전 발표회에서 대선 예비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열, 최재형, 박찬주, 안상수, 장성민, 원희룡, 하태경, 황교안, 박진, 장기표, 유승민, 홍준표 예비후보. 2021.8.25(사진=연합뉴스)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 약속 비전 발표회에서 대선 예비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열, 최재형, 박찬주, 안상수, 장성민, 원희룡, 하태경, 황교안, 박진, 장기표, 유승민, 홍준표 예비후보. 2021.8.25(사진=연합뉴스)

여기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은 주관적 판단에 기초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민주당 지지자나 적극 지지하는 민주당 후보가 있다면 국민의 힘 후보 중에 쉽게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응답인 셈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당선되는 것이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선택 가능성은 그 정도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역선택 효과가 표본을 선택하는 표집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국민의힘 주 지지층은 60대 이상 고연령층이고 반대로 20~30대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크게 낮다. 이 때문에 국민의 힘 여론조사에서 20~30대는 할당된 표본을 채우기 쉽지 않고 심지어 결국 채우지 못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실제 지난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는 조사 시간을 연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적극적인 역선택 응답자들은 표본으로 선정되었을 경우 아주 적극적으로 응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20~30대의 응답률이 의외로 높게 나타난다면 역선택 현상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지만 이조차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법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역선택을 막기 위한 조항을 삽입한다는 것도 크게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특정 정당 지지도를 묻고 상대 정당 지지자의 응답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적극적 여당 지지자들이 의도적으로 지지정당을 위장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머리가 깨진 이상한 사람’들이 맘먹고 조직적으로 역선택 행위를 조장한다면 막을 도리도 없다. 여론조사는 사람들의 태도나 의견을 판단하는 참고지표일 뿐이다. 여론조사마다 수치가 다르고 심지어 극단적으로 차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런 조사결과를 객관적 수량적 지표로 오·남용하고 있는 각 당의 후보 선출방식이다. 여론조사가 정확한 사실적 수치라면 굳이 대통령선거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여론조사로 뽑으면 된다. 엄밀히 여론조사 결과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를 정량화된 제품으로 만들어 팔아 이익을 창출하는 ‘의식상품’일 뿐이다. 어쩌면 이 역시 상업화된 정치의 한 단면인지도 모르겠다.

투표권 행사 (PG).(사진=연합뉴스)
투표권 행사 (PG).(사진=연합뉴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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