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섭 칼럼] 아름다운 나라와 징벌적 언론중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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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9.06 10:13:15
  • 최종수정 2021.09.0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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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뿐 아니라 정의당 등 진보정당마저 반대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영원하다
언론, 국회,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할 때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언론의 자유라고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ēs)는 말했다. 필자는 21세기에 기원전 고대 철학자의 말을 다시금 상기해야하는 슬픈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그 현실의 핵심은 바로 이 나라에는 언론의 자유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자신들이 사는 나라가 가장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투표를 통해 정권을 선택한다. 이렇게 선택받은 정권이 언론의 자유에 조종(弔鐘)을 울리려고 한다. 허위ㆍ조작보도 이른바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최대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기인한다. 국가권력이 언론을 직접적으로 ‘중재’하고 탄압하는 법을 만든다는 건 자유민주적 원칙과도 모순된다. 지난 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징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야당과 국내외 언론단체들이 언론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자 여야가 협의체 숙의를 거쳐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원안에서 한발 물러서는 선택으로 법안을 강행처리할 명분을 쌓고 있다. 그러나 많은 언론단체들은 그 들러리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이미 누더기가 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원점에서 재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언론단체와 인권기구가 우리의 징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글은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의 허위ㆍ조작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하면서 발생한 논란을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 살펴본 소고(小考)이다.

유엔 의사ㆍ표현 특별보고관, 표현의 자유 제한 우려

징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뿐 아니라 정의당 등 진보정당마저 반대하는 입장이다. 각종 국내외 언론단체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반대했다. 그 중에서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홈페이지에도 공개된 이레네 칸(Irene Khan) 유엔 의사ㆍ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서한이 돋보였다. 칸 특별보고관은 징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 표현과 정보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은 명료하고 정확해야 하는데, 현 개정안은 당국에 과도한 재량을 부여해 독단적인 법 이행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둘째, 허위ㆍ조작보도에 대한 특칙 규정 표현이 매우 모호하다며, 이는 언론의 보도는 물론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 소수 의견 표명 등을 제한할 수 있다. 셋째, 최대 5배까지인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가 완전히 불균형적이라며, 언론의 자기검열과 공익적 토론의 억압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진정한 선진국은 권력자를 포함해 한 사람 또는 한 세력이 악용할 수 없도록 법과 제도를 정교하게 갖춘 나라다. 징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칸 특별보고관의 권고는 선진국에 막 진입한 한국이 언론의 자유에 대한 법과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요청하고 있다.

허위ㆍ조작보도 개념의 명확성 결여

‘허위ㆍ조작보도’란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를 말한다(제2조 제17호의3). 일반적으로 가짜뉴스(fake news)로도 불리는 허위ㆍ조작보도는 오보(misinfomation), 허위정보(false infomation), 왜곡정보(disinformation), 조작정보(manipulated information)까지 다양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허위ㆍ조작보도에 대해 객관적 주체가 없거나 명확한 기준이 정해지지 않을 경우 필연적으로 사법부의 자의적 판단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명확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징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허위ㆍ조작보도라는 불분명한 개념은 피해 구제보다는 비판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정치ㆍ경제 권력의 전략적 봉쇄소송(SLAPP)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무엇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허위ㆍ조작보도의 정의와 범위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하여 혼란을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내용 중에서 허위ㆍ조작보도 특칙(제30조의2) 제1항의 허위ㆍ조작보도에 대해 ‘해당 언론사에 매출액을 고려하여 최대 5배까지 배상책임을 부과할 수 있도록 설정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차등 벌금제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법체계와 조화되지 않고,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한변 성명서).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하여 명백한 허위ㆍ조작보도에 대하여만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며, 언론보도의 신뢰를 높이는 법으로서 국민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언론이 침해할 수 없도록 명확히 하는 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심의과정에서 소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외국 입법례가 없고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의견을 낼 정도였다. 보도에 따르면 진선희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도 언론중재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허위사실 등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한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되는 경우 헌법상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가 훼손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 등이 제기되고 있으므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미 허위ㆍ조작보도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법안이 존재한다. 명예훼손죄가 명시된 형법과 손해배상청구권이 명시된 민법이다. 그리고 선거의 허위사실 공표는 공직선거법, 불법 및 유해정보는 정보통신보호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허위ㆍ조작보도에 대한 규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은 사실상 이중 처벌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허위ㆍ조작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허위ㆍ조작보도에 대한 특칙 규정도 독소도항

언론중재법 개정안 내용 중에서 또 하나의 심각한 독소조항은 허위ㆍ조작보도의 특칙(제30조의2) 제2항의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규정이다. 개정안은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ㆍ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하는 경우 법원이 고의ㆍ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도록 했다. 대부분 언론법 전문가들은 고의ㆍ중과실로 추정하는 전제 조건 4가지 모두 보도 관련이기 때문에 언론사가 입증책임을 지는 구조가 수정안에서도 여전하다고 반박한다. 이는 언론사의 고의ㆍ중과실 추정 역시 손해를 주장하는 자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는 입증책임의 대원칙을 무시하는 조항이다. 정부 고위 관료나 정치인, 대기업 등 신문ㆍ방송의 비판 대상이 되는 권력기관은 언론 보도에 대해 자의적으로 ‘허위ㆍ조작보도’라고 주장하며 손쉽게 소송을 벌일 수 있게 되고, 언론인들은 상시로 소송당할 위기에 처해 아무 말도 못하게 되는 이른바 ‘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반발 여론이 거세자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임원 등은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수정했다. 그러나 정치인의 친인척이나 공직에서 사퇴하면 손해배상 청구권을 가질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 후 자신과 관련한 보도를 얼마든지 가짜뉴스로 몰아 언론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러한 예외 허용은 전직 고위공무원이나 공직에서 사퇴한 정치인이 나중에야 각종 의혹이 터졌을 때, 손해배상청구 가능성을 우려하여 제대로 된 보도가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징벌적 언론중재법이 강행처리 된다면 커다란 후폭풍 맞을 것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의견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수많은 국내외 언론단체들이 이번 징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듣도보도 못한 ‘언론재갈법’이라며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펼치며, “헌법소원 제기 등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를 총동원해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전략적 봉쇄소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세계 최대 언론단체인 세계신문협회(WAN-IFRA)와 국제기자연맹(IFJ)도 나서서 “최악의 권위주의 정권이 될 것” “과도한 규제”라며 폐지를 촉구했다. KBS노동조합이 이끄는 ‘언론독재법 철폐투쟁을 위한 범국민 공동투쟁위원회’는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강행처리 되는 순간, 투쟁방향을 집권여당에 대한 독재저항 투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음을 밝힌 바 있다(KBS노조 성명서). 많은 논란과 갈등이 해소되지 못한 상황에서 징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강행처리 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커다란 후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징벌적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는 주체들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이 필요하다. 우리 헌법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강하게 보장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요체로서 언론의 공론장 역할 때문이다. 영국의 미디어 사상가인 존 밀턴(J. Milton)은 “언론의 자유를 죽이는 것은 바로 진리를 죽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언론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크고, 허위ㆍ조작보도가 난무한다면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허위ㆍ조작보도의 폐해를 바로잡아 언론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높이고 시민들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구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언론, 국회,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할 때이다. 그러나 허위ㆍ조작보도에 대한 규제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위축시킬 수 있다면 법률적 규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번 징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하여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언론 피해자 구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영원하다. 언론의 자유가 우려되는 징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주체들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무엇인가?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전 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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