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희 칼럼] 낮술 권하는 사회─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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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9.08 09:31:34
  • 최종수정 2021.09.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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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사태가 우리에게도 닥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적대 세력에게 숙청되어 목숨을 잃기 전에 굶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혹은 절망과 우울감의 공격에 목숨을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거세게 몰려든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나마 나이키 신발 없이 청소년기를 보낸 나나 내 윗세대는 혹독한 세상을 다시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근’ 거래해서 번 5천 원으로 ‘별다방’에 가서 ‘아아’를 사 마셔야 하는 젊은 세대는 어찌 살게 될 것인가?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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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6‧25전쟁을 겪은 분들한테는 이까짓 거 별 거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전후(戰後)에 태어나 60년 동안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온 내게는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느닷없는 전염병이 창궐하더니 그게 2년째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메르스니 사스니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염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제는 그깟 외국 여행 못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 천재(天災)인지 인재(人災)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 병이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드는 엄청난 재앙임은 확실하다.

이 재앙의 직격탄은 경제 활동 인구의 25%가 넘는 자영업자들에게 떨어졌다. 그 폭탄이 치명적임을 알리는 증거는 건물마다 나붙은 ‘임대’ 표지판이다. 외국 관광객이 끊기며 거의 밥줄도 함께 끊겨버린 명동은 물론이고 그 비싼 임대료에도 번쩍번쩍 잘 나가던 강남, 이태원, 종로도 거의 한 집 건너 한 집이 빈 걸로 보인다. 사람들이 연일 북적이던 홍대 앞, 인사동에 갔을 때 어쩌다 사람 많은 걸 보면 반갑기까지 하다.

오랜만에 가거나 처음 가는 업소에 방문하려면 가기 전 전화를 걸어본다. 느닷없이 영업을 중단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 식당에 사람이 많으면 짜증나기보다는 그나마 돌아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엄혹한 시절을 내 생애에 겪게 될 것이라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얼마 전 강남의 어느 유명 참치 전문점에는 점심 시간 후부터 저녁 시간 전까지 실시했던 휴게 시간에도 영업을 계속한다는 안내판이 붙었다. 이제 가게 임차료와 종업원 인건비를 벌려면 그 시간까지 손님을 받아야 한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낮술을 즐기라는 권유문도 써놓았다. 저녁에는 두 명 이상 식사하기 어려우니 낮에 모여 술 마시고 여섯 시 이전에 헤어지라는 얘기로도 들린다. 어쨌든 바야흐로 ‘낮술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사업을 빨리 접고 가게를 빨리 빼버린 사람은 그래도 능력 있는 사람이다. 한 달 내내 힘들게 장사해서 번 돈을 임차료로 다 보내야 하거나 직원 인건비로 다 써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언젠가는 전처럼 되겠지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혹은 다른 대책이 없어서 근근이 버티는 자영업자도 수두룩할 것이다. 그들은 대체 뭘 먹고 무슨 돈으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있는 걸까? 이 시기를 견디고 난 후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평생을 벌어도 갚을 수 없는 빚더미에 앉아 있음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정부지원금을 25만 원 주느냐 20만 원 주느냐로 정치인들이 피 터지게 싸움을 벌인 끝에 25만 원씩 주기로 했단다. 25만 원, 그걸 받아 누구 코에 붙일 것인가? 마치 25만 원에 해당하는 지폐를 부채처럼 펼쳐 국민의 눈앞에 흔들며 조롱하는 것 같다.

“니들 이런 돈 만져봤어? 약 오르지롱?”

받는 사람은 받는 사람대로, 못 받는 사람은 못 받는 사람대로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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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전철이나 버스에서는 이 기와작들처럼 서로 부대끼며 다닥다닥 붙어 다니지만 집에서는 친구나 친척끼리도 못 모인다.

먹고 사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민심까지 흉흉해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로 포장된 사적 모임 인원수 제한이 몇 달째 계속되면서이다. 그 집 일을 하며 그 집주인에게서 월급을 받아가던,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가사도우미가 손님이 여럿 왔다고 신고했다고 한다. 음식을 배달해준 사람이 주문한 음식량이 제한 인원이 먹을 양을 넘어섰다며 신고했다고 한다. 물론 법을 어기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자유민주국가의 일상 모습이라 할 수 있는가?

법 적용에 일관성도 없다. 만원 전철이나 버스에서는 서로 부대끼며 다닥다닥 붙어 다니지만 집에서는 친구나 친척끼리 모여 식사 한 끼 못한다. 혹시 세 명이라도 모여야 하면 007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작전’이 필요하다. 한 명씩, 혹은 두 명씩 집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도 마찬가지로 분산 퇴거해야 한다. 그래도 불안하다. 곳곳에 CCTV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 맘만 먹으면 들어가는 사람, 나오는 사람 다 체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동안 동네 사람들에게, 경비아저씨에게 인심 잃지 않고 살았으니 신고당하지는 않으리라는 쪼잔한 안도까지 하게 된다. 그래도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선심 쓰듯이 제한 인원을 쬐끔 늘려줬다. 이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식당에서는 제한 인원만큼 나눠서 들어가고 식당 안에서는 서로 모른 척한다. 여섯 시가 넘어서 세 식구 자장면이라도 주문할라치면 우리가 동일 주민등록상의 가족임을 배달원에게 강조한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선량하게 살아온 국민이 잠재적 범법자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인원수 제한 때문에 정신적 피로감에 빠지는 걸 넘어 아예 인생 살면서 사적 모임 자체가 필요한 것인가 회의까지 하게 된다. 회의 정도가 아니다. 사람들을 안 만나고 사는 삶에 서서히 적응되는 기분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범법자가 되기 싫으면 사적 사회 활동을 아예 포기해야 하는 건가? 인원 제한과 코로나 확산이 별다른 관련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코로나19의 위력은 감기 정도밖에 안 된다는데 통제의 위력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백신 접종도 스트레스 중 하나이다. 쉴 틈이 없고 컨디션이 안 좋아 백신 접종을 놓친 60대 프리랜서. 솔직히 백신 부작용도 겁이 났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백신 접종 여부가 ‘신분’이 되어 접종 안 한 사람이 차별당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뒤늦게 질병관리본부에 전화해보니 거의 국가 사업 ‘거부자’ 취급을 한다.

“전 국민 다 맞은 후에나 맞을 수 있을 거예요.”

위기감이 더 깊어진다. 백신을 못 맞아 병에 걸릴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백신을 “안 맞은 사람은 강사나 프로젝트 수행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을까 겁난다.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온종일 잔여 백신을 뒤져도 늘 뒤처져 놓치고 만다.

‘이렇게 기를 쓰고 애써서 백신 접종을 했는데 혹시 치명적 부작용이 생기면 어쩌지? 그 부작용을 맞이하려 애쓴 게 된다면 얼마나 후회하게 될까?’

접종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에도 이런 웃기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속도 빠른 걸로 휴대폰을 바꿔야 하나?’

급기야 이런 고민까지 하고 있을 무렵 60대 이후에게 접종 기회를 다시 준다는 보도가 나왔다. 거의 ‘감읍’할 지경이다. 그런데 백신을 일 년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는 말이 들린다. 일 년에 한 번씩 이 난리를 어떻게 겪어야 하나. 말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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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적대 세력에게 숙청되어 목숨을 잃기 전에 굶어 죽거나 절망과 우울감의 공격에 목숨을 내어주게 될지도 모른다.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사태가 우리에게도 닥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적대 세력에게 숙청되어 목숨을 잃기 전에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절망과 우울감의 공격에 목숨을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거세게 몰려든다. 내일 당장 코로나19가 사라진다 해도 그 때문에 무너지고 부서진 것들이 하루아침에 정상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어둡고 암울한 터널 속에서 몇 년은 더 견디고 버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나마 나이키 신발 없이 청소년기를 보낸 나나 내 윗세대는 혹독한 세상을 다시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근’ 거래해서 번 돈 5천 원으로 ‘별다방’에 가서 ‘아아’를 사 마셔야 하는 젊은 세대는 어찌 살게 될 것인가?

그래도 이제껏은 나름 잘 견뎌온 듯하다. 말 잘 듣는 국민이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료도, 고용보험료도 잘 쌓아놓았다. 나라에 여윳돈이 있어 그나마 재난 지원금도 내준다. 그러나 그렇게 빼먹은 곶감이 얼마나 갈 것인가? 굶주림에 씨감자까지 털어먹듯이 머지않아 착실히 쌓아둔 4대 보험 기금에까지 손을 댈지도 모른다.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특별히 상황이 나아질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집값이 조금 오른 수도권 도시 아파트를 팔아 아직은 덜 오른 시골로 가야 하나? 농사? 60 평생 대도시에서만 살았으니 당연히 농사 못 짓는다. 중학생 때 시골 할머니 댁에서 동네 사람이 피 뽑는다는 말을 듣고 ‘이런 벽촌에 웬 헌혈차가 왔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나이 들어 그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지금도 나는 밤이 열려야 밤나무인 줄 알고 감이 열려야 감나무인 줄 안다. 지금도 질척이는 흙이 싫고 지렁이가 징그럽다.

하지만 작은 텃밭을 일궈 감자라도 몇 알 캐서 푸성귀와 함께 먹고 살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이대로 가면 도시 빈민으로 전락해 그나마도 연명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내 이야기가 좀 황당하고 과장이 심하다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꽤 심각한 위기감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곱씹어 보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나마 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는 나는 다행이라 스스로 위로한다. 아마도 수많은 자영업자가, 혹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에서 햇볕을 쬐지 못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이나마 대책도 없이, 말도 못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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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길 위에서, 수많은 자영업자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대책도 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나라님’이 역병을 핑계로 손 놓고 국민의 고통을 장기간 외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드 코로나’를 선언해도 망가진 국민의 삶을 복구할 계획은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 ‘나 아니면 안 된다’라고 외치며 버티고 있는 대선 후보들 가운데, 삶이 송두리째 부서져버린 국민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총체적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후보가 있는가? 그런 후보가 있다면 ‘어느 당 소속’이든 가리지 않고 지지할 용의가 있다. 물론 ‘어느 당 소속’ 후보도 그에 관심을 둘 것 같지 않아서 던지는 말이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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