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정원장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된 ‘고발사주 의혹’이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 박지원 국정원장의 대선개입 의혹으로 반전되고 말았다.

고발사주 의혹사건의 제보자인 조성은씨가 이번 사건이 표면화 되기 전에 박지원 국정원장을 만난 사실이 드러난데다 조씨가 박 원장과 이 문제를 상의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대선을 불과 6개월도 안남긴 시점에서 이번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이는 한국정치 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비화될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국정원의 정치중립을 강조해왔다.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을 최순실씨 문제와 더불어 박근혜 정권의 ‘양대 국정농단’으로 규정, 촛불시위와 탄핵을 통한 집권경로로 삼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벌어진 이른바 ‘적폐수사’에서도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이 핵심 수사대상에 올라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장들이 구속된 바 있다.

그렇기에 이번 박지원 국정원장 대선개입 의혹은 문재인 정권의 도덕성과 정통성을 일거에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이 아닐 수 밖에 없다.

당장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본인이 지난달 27일 국정원의 불법사찰 종식을 선언하겠다며 과거 정부의 사찰 행위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다.

박 원장은 당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저와 국정원 전 직원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엄중한 명령을 받들어 과거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국회를 통과한 국정원 불법사찰 재발방지 결의안을 이행하는 차원의 행사였다.

박 원장은 “과거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은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는 물론 국정원 지휘체계에 따라 조직적으로 실행됐다”면서 “정·관계 학계 인사와 관련 단체, 그 가족과 단체 회원까지 사찰하고 탄압했다”고 했다.

박 원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원에 대한) 정권의 부당한 지시는 없었고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불법사찰은 없다고 단연코 말씀드린다”고 주장했다. 내년 3월 대선을 의식한 듯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저와 국정원 전 직원은 철저한 정치 거리두기를 실천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현 시점에서 주목되는 것은 박지원 원장과 청와대의 침묵이다. 의혹이 표면화된지 사흘째 접어드는 13일 오후까지 양측 모두 제대로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인터뷰를 통해 "헛다리를 짚었다"고 빠져나가는 말 이외에 진실을 알수 있는 해명은 없었다.언론에 의해 ‘정치9단’이라는 별명이 붙은 박지원 원장의 평소 스타일대로 라면, 진작에 모두가 이해할수 있는 해명이 나왔어야 했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언론에 의해 ‘정치9단’이라는 별명이 붙은 박지원 국정원장을 발탁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김대중 정권 때 대북밀사 역할을 수행한 바 있지만 그때는 김정일 위원장 시절이고 그 시절 대북인맥은 사라진지 오래다. 특히 박지원 원장이 대불밀사를 할 때 북측의 파트너들은 장성택 인맥 위주여서 김정은 정권 들어 모두 숙청된 상황이다.

결국 이제와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박지원 원장 발탁에는 대북 차원의 역할 보다 ‘정치9단’의 역할을 더 기대했던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청와대가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사실을 발표하면서 정치중립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많은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보면서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국회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는 말년이 없다”고 한 말을 생각할 것이다.

이제 청와대와 박지원 원장의 해명과 조치만이 남았다. “별것 아니다”고 하면 누가 믿을 것이며 박 원장을 경질할 경우 이 정권은 최고 정보기관장에 의한 대선개입이라는 중대한 멍에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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