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모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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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금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모두 철수하기로 결정했고, 이슬람 무장조직인 탈레반이 친미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함락하고 정권을 이미 접수했다. 이러한 미국의 결정에 대해 미국의 동맹국들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다른 게 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세계의 인권단체들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을 포함한 국민들을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탈레반에게 넘겨주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정부는 이러한 철수결정이 미국의 국가이익에 따른 것이라고 변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8월 14일 "미국은 "아프간 정부군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면 미군이 1년 더, 또는 5년 더 주둔해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기도 전인 지난해 2월 아프간 철군에 대한 언론의 질문을 받고, “우리 군대를 동원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내부 문제 하나하나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우리 능력 밖이다. 미국에 필수적인 자기 이익(vital self-interest)이 걸려 있는가, 아니면 우리 동맹 중 한 나라의 자기 이익이 걸려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금번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하는 초강대국이나, 자선사업을 하는 국가는 아니다. 미국은 국가이익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여타 국가들에 대해 세력균형을 구사하고 필요하면 무력을 사용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맹국을 선택하고 지원하나, 동맹국이 자생할 능력과 미국의 외교목표를 감당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동맹을 포기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아시아에서 취한 행태를 살펴보자.

첫째, 1940년대 미국과 일본 간의 태평양전쟁 시와 그 이후에 미국이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에 보여준 태도이다. 1941년 12월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한 직후,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했고 중국도 이에 합류했다. 미국은 중국전구(戰區)를 설립했고, 중국전구사령관에 국민당의 장제스가 취임했다. 일본의 패권주의에 맞서 중국이 미국의 동맹국이 된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협력에서 같은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주로 상대했다. 하지만 미국은 마오쩌둥의 공산당에게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태평양전쟁 기간 공산당 근거지 옌안에도 미군과 미국기자들이 관찰조(觀察組) 명의로 진을 쳤다. 미군 관찰조의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공산당 군대는 사기가 왕성하다. 국민당 정부를 거치지 않고 이들에게 직접 물자를 지원하면 일본을 빨리 패망 시킬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국민당으로 하여금 공산당에 양보라도 하여 항일전쟁에 전념토록 강요했다. 1941년 초 공산당이 주축인 항일 게릴라 부대를 국민당이 공격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내전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지원하는 무기를 반공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장제스에게 전달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미국은 동맹국 자격으로 국·공 양당의 조정에 나섰다. 1945년 12월, 미국은 대통령 특사를 중국에 파견했고 결국 조정은 실패했다. 물론 미국은 공산당 정권이 설립되는 1949년 10월까지 국민당 정부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공산당이 대륙을 석권하는 동안 미국은 국민당이 정권을 장악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미국은 국민당의 무능과 부패를 목도하고 국민당의 자생능력에 더 이상 기대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1949년 공산당 정권이 수립됨에 따라 미국은 국내에서 “누가 중국을 잃어버렸는가?”라는 논쟁이 일어나는 등 충격을 받았으나,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 정권과의 정치적 타협을 잠시 모색하기도 했다.

둘째,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태도이다. 프랑스가 자신의 식민지인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1954년에 패배한 이후, 그 해에 개최된 제네바 국제회의에서 베트남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분단되었다. 이후 미국은 공산주의인 북베트남의 공세를 막기 위해 자본주의인 남베트남을 지원했다. 이는 북베트남이 승리할 경우 동남아국가들이 공산화될 수 있다는 도미노이론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은 북베트남의 군사적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1960년대 초부터 베트남에 적극적인 군사적 개입을 하여, 1967년에는 남베트남 주둔 미군병력이 38만 9천 명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베트남의 내전을 끝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1973년 파리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미군을 철수하였고, 1975년 북베트남은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으로 통일하였다. 이 역시 미국은 남베트남이 무능과 부패로 인해 자생할 능력이 없었고 미국의 외교목표를 감당할 수 없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금번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바라보면서,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처해야 하는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미국에게 있어 한국의 중요성은 아프가니스탄과는 비교할 수는 없다. 한국은 미국이 원하는 동맹의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스칼라피노 교수는 한국에 대해 ‘미국이 동맹을 선택하는 4가지 기준’에 대해 과거에 언급한 적이 있다. 첫째, 이념적 상응성(相應性)이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앞세우는 나라로 남아 있어야 미국은 한국을 동맹으로 받아줄 수 있다. 둘째, 전략적 중요성이다. 미국은 일본과 힘을 합쳐 중국의 진출을 막아내려 하고 있다. 한국이 여기에 동참하면 미국에 큰 힘을 보태게 된다. 셋째, 경제적 중요성이다. 한국은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의 중견 선진국이다. 한국과의 경제협력은 미국에도 이익이 된다. 넷째, 자생(自生) 능력이다. 미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자생할 수 없는 나라라면 미국은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미관계를 돌아보고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역행하고 있는지를 숙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역사적으로 한미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초기의 한미관계는 그렇게 좋지는 않게 시작했다. 1890년대 이래 일본, 중국, 러시아가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보일 때,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병합을 용인했다. 이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의 세력균형을 위해 일본을 선택한 결과이다. 조선이 ‘불량한 국가’로서 일본이 조선을 병합해야만 동북아가 안정될 것이라는 일본의 논리를 미국이 받아들인 측면도 있다. 당시 조선은 미국이 공평무사한 국가라고 간주하여 열강의 침탈을 막아줄 것을 기대하였으나, 이 기대는 허망한 것이었다. 조선이 자생능력이 없었고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을 감당할 의지와 능력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직후에도 미국은 한반도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미군은 1949년 6월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한국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소련의 스탈린이 김일성의 전쟁계획을 승인했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생했다. 한반도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미국은 막상 남침이 시작되자 소련이 냉전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미국은 한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했고, 전쟁 직후인 1954년 한국과 동맹을 체결했다.

한편, 한국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1965년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미국에게 더욱 필요한 동맹국이 되었다. 하지만 1975년 남베트남이 패망하여, 잠시나마 북한의 김일성은 한국에 대한 무력통일 가능성에 고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베트남의 사이공 함락 직전인 1975년 4월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은 “우리가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고 얻을 건 조국통일”이라며 마오쩌둥의 반응을 살폈다고 한다. 그러자 마오는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에는 미중 간의 화해가 이루어져 중국도 미국에 도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미국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함에 따라, 미중 간 신냉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금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중요한 이유가 중국과의 대결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미국이 냉전 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전략적으로 중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전략적으로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중 간 신냉전에서 우리의 바람직한 선택은 무엇인가? 한국은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유리하다. 우리가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할 안보적, 경제적 국가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이 평화적인 강대국이 되도록 유도하는 데에 한국과 미국의 공동이익이 있다.

미국은 중국, 베트남, 아프가니스탄의 경우에서 보듯이 국가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동맹국이 미국의 이념과 상응하는지, 자생할 능력이 있는지, 미국의 외교목표를 감당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중시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은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해 한국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국가이익도 한미동맹의 강화에 있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에 전략적으로 필요한 국가가 돼야한다. 그래야 미국도 한국을 돕는다. 그러려면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앞세우는 나라로 남아 있어야 하며, 자강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고, 미국이 중국이 평화적인 국가가 되도록 견제하는 데 한국이 동참해야 한다. 끝으로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결국 우리가 강할 때만이 우리를 지킬 수 있고 동맹도 있다는 점을 자각하여, 능력 있는 지도자와 지각 있는 국민들이 단합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여 위기를 극복하기를 바란다. 건국 70여 년을 맞는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다. 한국 국민은 세계 최빈국이던 나라를 세계가 감탄하는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이뤄낸 국민은 한국 국민 외에는 없다.

연상모 객원 칼럼니스트(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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