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 그 표현의 모순성

2016년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전국에 촛불시위가 한참일 때 ‘제왕적 대통령’ 문제가 한참 논의되었다. 2017년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되어 개헌논의가 활발할 때도 제왕적 대통령 문제의 해소를 위해 권력구조의 개헌이 가장 큰 관심사였고, 그로 인해 ‘분권과 협치’가 제10차 개헌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헌법개정은 좌절되면서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여당이 국회의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했고, 대통령의 정책결정을 여당은 무조건 지지하면서 국회에 의한 정부의 견제가 무력화되었다.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의 압도적 다수를 대통령이 지명하면서 사법부의 종속화가 뚜렷해졌고, 결국 삼권분립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그 결과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제왕이 있을 수 있는가?

사회 각 분야에서 ‘왕’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우들은 드물지 않다. 미국에서는 강철왕 카네기를 이야기하고 대한민국에서는 가왕 조용필을 말한다. 드마라에서는 제빵왕 김타구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이 왕으로 지칭되는 이유는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는 평가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왕이 될 수 없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왕처럼 군림하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부인하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민주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선출된다. 반면에 왕은 군주국가의 주권자이며, 세습적으로 그 지위를 유지한다. 또한, 민주국가에서 삼권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통령과는 달리 군주국가의 왕은 국가권력 전체를 장악한 통치권자이다. 오늘날에도 영국, 스페인, 덴마크, 태국 등 왕이 존재하는 나라들은 있지만, 이런 나라는 군주국가가 아니며, 왕은 통치권자가 아니라 단지 형식적⋅의전적 권한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는 표현이 탄생한 것은 대통령의 권한이 과도하게 비대화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의회나 사법부에 미친 미국 대통령의 권한과 영향력에 비해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과 영향력이 훨씬 막강하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모순적 표현이 현실이 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마련된 개표상황실로 들어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7.5.9(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마련된 개표상황실로 들어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7.5.9(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이 가능한 이유

도대체 어떻게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이 가능한가? 차라리 민주화 이전이라면 모를까, 민주화 이후에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것인가?

현재 대통령의 권한 및 영향력이 유신 시절이나 5공 당시에 비해 더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퇴행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30년이 넘도록 대통령의 권한과 영향력이 삼권분립을 무력화할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정체임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정체로 인해 제왕적 대통령이 가능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케 한다. 민주적 정치과정(갈등 속의 타협과 조정)의 부재, 대통령의 권위를 앞세운 일방적인 강행처리 등 권위주의적 정권의 특징이 민주화 이후에도 상당 부분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러한 권위주의적 정치문화를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선거 중심의 정권투쟁, 대통령(후보)를 앞세운 국민 지지 획득 전략, 그리고 민주적 정치문화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부족 때문이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있다. 오른쪽부터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문재인 대통령, 김명수 대법원장. 2018.9.13(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있다. 오른쪽부터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문재인 대통령, 김명수 대법원장. 2018.9.13(사진=연합뉴스)

둘째, 제도적으로 대통령의 헌법상 지위 및 권한이 우월성을 갖는다. 삼권분립은 입법-집행-사법의 삼권이 대등성을 전제로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현행헌법상 대통령은 집행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국가원수이기도 하다. 집행부 수반으로서는 입법부 및 사법부와 대등한 위치에 있지만, 국가원수로서는 입법부와 사법부에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물론 영국의 여왕처럼 국가원수로서의 권한이 형식적⋅의전적 권한에 한정될 경우에는 집행부의 수반이며 동시에 국가원수라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갖는 권한 대법원장 및 대법관 임명권,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임명권 등 강력한 실질적 권한을 다수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권력의 균형이 깨뜨려진 것이다.

셋째, 제왕적 대통령을 용인하는 국민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물론 모든 국민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될 때 ‘마마’라고 울부짖던 어떤 할머니처럼 적지 않은 국민들이 대통령을 왕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이 가능해진 것이다.

민주정치는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의 견해 차이를 대화와 토론을 통해 조정하여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팬덤정치의 등장은 합리적 대화와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과거 태극기 집회에 휘둘리던 자유한국당처럼 강성 친문세력에 휘둘리는 더불어민주당은 여야의 관계를 정치적 대립이 아닌 종교투쟁처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6일 저녁 수원역 앞 로데오 거리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2012.12.6(사진=연합뉴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6일 저녁 수원역 앞 로데오 거리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2012.12.6(사진=연합뉴스)

제왕적 대통령을 극복하기 위한 조건

제왕적 대통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케 하는 요인들을 해소시켜야 한다. 권위주의적 정치문화를 극복해야 하며, 대통령의 헌법상 지위와 권한의 우월성을 –헌법개정을 통해- 종식시키고 삼권의 대등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민주의식과 주권의식도 제고되어야 한다.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의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내민주주의의 실질화, 분권의 실질화, 협치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당내민주주의의 실질화는 공천의 합리화를 통해 여당이 대통령에게 종속되지 않도록 할 것이며,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여당이 비판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또한 승자독식의 정치구조를 변경하여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여당과 야당이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협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민주정치가 선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승자독식의 구조 하에서는 협치가 불가능하다. 모든 권력을 가진 자와 아무 권력이 없는 자 사이에는 협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헌법상 지위 및 권한의 우월성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을 통해 사법부에 대한 임명권의 배제 또흔 형식화,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을 통한 대통령-총리의 권한 분장, 감사원의 독립기관화와 대통령의 임명권 배제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임명권은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제왕적 대통령의 극복을 위해 대통령의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또한,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빠른 시간 내에 해소되기 어렵다면,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도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감사원은 독립기관화 하되, 공수처의 경우처럼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고 있어서는 그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국민들의 민주의식과 주권의식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주권자로서의 자각, 시민의식의 성숙 및 이를 위한 민주시민교육의 강화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나라가 모두 진정한 민주국가는 아니며, 진정한 민주국가는 국민이 진정한 주권자로서의 자각을 갖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주권자라는 자각, 주권자로서의 권한과 책임에 대한 인식,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릴 용기를 가져야 한다.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월 민주혁명, 2016년 촛불시위 등을 경험하면서 시민의식은 성숙했지만, 국민들이 포퓰리즘의 늪에 빠지지 않고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민주시민교육의 강화가 필요한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2020.11.2(사진=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2020.11.2(사진=연합뉴스)

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발전을 위하여!

21세기의 특징으로 다양한 것들이 거론된다. 저출산⋅고령화의 시대 및 그 결과로서 20:80의 사회, 정보통신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따른 정보화사회,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글로벌 무한경쟁의 시대 등... 이에 더하여 최근에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대비가 강조되기도 한다.

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헌법질서, 이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 영국과 패전국 독일의 운명이 엇갈렸던 것은 왜일까? 자본이나 기술, 노동력과 정보력 등 모든 면에서 영국에 뒤쳐졌던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당시 독일의 한정된 자원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의 개발에 있었다. 반면에 산업혁명 이후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하던 영국은 낡은 국가 시스템을 고집하다가 낙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개발독재의 사례는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는 맞지 않는다. 1960~70년대에는 한정된 인적⋅물적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청와대 정부가 필요했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인적⋅물적 자원을 갖고 있는 2021년 대한민국에서는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그 정당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그런데 스스로 민주정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왜 권위주의 정부의 일사불란한 업무처리를 바람직한 것으로 주장하며, 민주적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과정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가? 정말로 갈등의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제왕적 대통령의 그늘 아래에 안주하는 것인가?

이런 상황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의 극복이 필수조건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사진=연합뉴스)
청와대.(사진=연합뉴스)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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