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미국 식품의약국 자문단이 65세 이상에 대해서만 백신 부스터샷을 접종할 것을 권고했다. [사진=연합뉴스 TV 캡처]
지난 17일 미국 식품의약국 자문단이 65세 이상에 대해서만 백신 부스터샷을 접종할 것을 권고했다. [사진=연합뉴스 TV 캡처]

미 식품의약국(FDA) 자문위가 17일(현지시간) 16세 이상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 계획에 압도적인 반대 의견을 내놨다.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추가 접종 승인을 부결한 것이다. 지난달에 이미 부스터샷 접종을 예고한 바이든 정부가 어떤 최종 결론에 도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FDA 자문위의 의견은 어느 정도 예측된 면이 있다. 17일 회의에 앞서 FDA는 15일 ‘현재 미 당국이 허가한 화이자 모더나 얀센 백신은 부스터샷 없이도 코로나19 중증 질환과 사망에 대해 충분한 보호 효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순 미 보건부가 모든 미국인에게 이르면 9월 20일부터 부스터샷을 접종하겠다고 밝힌 것에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FDA 자문위 17일 ‘부스터샷 승인’ 반대 결정...“효력 입증할 데이터 부족”

17일 자문위의 회의에서는 FDA의 이런 입장이 더욱 강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FDA 백신·생물학적제재 자문위(VRBOAC)는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한 화상 회의에서 16세 이상 화이자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 승인에 관해 찬성 2표 대 반대 16표로, 반대 표결했다. 패널들은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패널들은 2차 투표에서는 ‘65세 이상 노년층과 중증 코로나19 위험군을 상대로 한 부스터 샷의 경우 위험성보다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패널 18명 전원이 같은 의견을 내놨다.

부스터샷에 찬성하는 측은 대부분의 백신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백신도 6개월 내 추가적인 접종이 감염 확산 억제에 중요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반대하는 측은 이스라엘과 영국의 연구 결과로는 중증 위험성이 뚜렷한 경우가 아니라면 세 번째 접종으로 얻을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데이터가 모자란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추가 접종 승인이 부결된 것이다.

이날 토론에는 FDA와 미 국립보건원(NIH) 소속 전문가들, 그리고 부스터샷을 먼저 도입한 이스라엘 당국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자문위의 결정은 권고안에 해당되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FDA는 통상 자문위 권고를 수용해왔다.

20일부터 부스터샷 시행하려던 바이든 행정부 계획 차질?...파우치 소장, “부스터샷 이로워”

이에 따라 오는 20일 주간부터 일반인을 상대로 광범위한 추가 접종을 시작하겠다던 미국 정부의 계획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내에서 부스터샷을 강력히 지지하는 진영에 전염병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과 비베크 머시 공중보건서비스단장, 조 바이든 대통령 등이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영국 등에서 이뤄진 부스터샷 접종 결과에 대한 연구를 논거로 삼고 있다.

이스라엘 연구진이 의학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실은 보고서에 따르면, 부스터샷을 맞은 60세 이상 인구의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약 11배, 중증에 걸릴 위험은 약 20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우치 소장은 또 자신이 속한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과학자들이 별도로 수행한 연구도 근거로 들고 있다고 CNN 방송은 전했다.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과학자들은 올해 2월 전 세계의 전염병 학자와 바이러스 학자 등을 모아 'SAVE'란 팀을 만들고 코로나19 변이를 추적해왔다.

또 3월 말쯤에는 부스터샷을 맞은 사람들에게서 위험한 변이에도 저항하는 면역 항체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초기 데이터를 검토했다. 파우치 소장은 ‘카이저헬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부스터샷이 이로울 것이라는 데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FDA와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부스터샷을 맞혀야 한다는 충분한 데이터가 없다'고 한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면서도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한다면 실수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사임 의사 밝힌 FDA 관리 2명, “미접종자에게 백신 사용하는 게 더 많은 생명 살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는 물론 FDA 내부에서조차 부스터샷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일반인 전체에 부스터샷을 맞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달에 부스터샷 접종 계획을 발표한 뒤 사임 의사를 밝힌 FDA 관리 2명은 최근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의학 학술지 '랜싯'에 부스터샷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백신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들이 부스터샷이 필요한지를 결정할 회의를 앞두고 학술지를 통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FDA로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 2명의 관리들은 “현재 백신 공급분을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게 이미 백신을 맞은 사람들에게 부스터샷으로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화이자(왼쪽)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화이자(왼쪽)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가난한 나라들에 백신이 공급되도록 연말까지 부스터샷 접종을 유예하라고 전 세계에 촉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지난 13일 WHO와 FDA 소속 과학자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전 세계 백신 미접종 인구에 대한 백신 분배가 시급하다”며 당장은 광범위한 부스터샷이 필요없다고 밝혔다.

FDA에 부스터샷 신청한 화이자와 모더나는 ‘부스터샷 효력’ 강조

반면 FDA에 부스터샷 승인을 신청한 화이자와 모더나 측은 자사 백신의 예방 효과가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진다는 이유로 부스터샷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화이자는 지난 15일 “우리 백신의 예방 효과는 접종 후 2개월마다 약 6%씩 떨어진다. 시간이 많이 지날수록 돌파감염 사례가 더 많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모더나 역시 지난해 12월∼올해 3월 자사 백신을 접종한 1만1431명 중 88명이 코로나19에 걸렸는데, 이보다 이른 지난해 7∼10월 접종한 1만4746명 중에서는 162명이 감염됐다며 부스터샷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화이자는 접종 완료 5개월여 뒤 부스터샷을 맞은 60세 이상의 시험 참가자들이 그러지 않은 이들에 비해 코로나19 감염률이 11분의 1이었고 중증 질환 발생 비율도 낮았다는 이스라엘의 사례도 FDA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DA 자문위는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FDA는 이르면 다음주 초쯤 부스터샷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CNN은 "이번 회의와 투표는 (승인) 과정의 시작일 뿐"이라며 “일반인을 상대로 부스터샷을 접종할지 말지, 그리고 한다면 언제가 될지는 이제 FDA에 달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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