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가 정의로운 세금이라면 선진국들은 왜 강화하지 않는가...현실과 다른 상속세
상속세는 곧 사망세...'부의 집중도' 완화 효과 아닌 '경제효율의 상실'이라는 부작용 낳아
60% 징벌적 상속세는 '국가 폭력'...모두가 가난이라는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게 될 것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은 평등지향 사회이다. 당연히 상속세는 강화되어 왔다. 상속세 강화에는 두 가지 정언적(定言的) 명분이 존재한다. 첫째 상속세 강화를 통해 ‘부의 세대 간 세습’을 막겠다는 것이다. 부모 잘 만난 이유만으로 앞서 가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둘째 상속은 땀 흘려 번 것이 아닌 단지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높은 세율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이 이를 흡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속세는 ‘출발선(出發線)상의 동등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정의로운 세금’으로 인식되었다.

미국에서 상속세의 정당성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 사람은 ‘철강 왕’ 카네기였다. 카네기는 ‘富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이라는 책에서 부(富)는 그것이 유래한 공동체로 되돌아가야 하며, 상속은 자식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부패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1971)으로 유명한 법철학자 존 롤스도, ‘축적된 부를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은 정의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워렌 버핏, 빌 게이츠 등 거부들은 ‘책임 있는 부를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Responsible Wealth)를 만들어서 “우리들에 세금을 매기라”(Tax Us)는 의견광고를 내기도 했다. 빌 게이츠는 ‘빌게이츠 재단’을 만들어 거금을 기부했다.

상속세 강화를 주장하는 좌파들에게 이들은 원군이 아닐 수 없다. 이 자리에서 상론할 겨를은 없지만 이들 자선재단은 ‘상속세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리고 워렌 버핏은 주식 투자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한편으론 사망과 관련된 ‘죽음의 사업’을 수행 했다. 상속세를 내지 못해 매물로 나온 가족 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정상화시킨 후 다시 매각한 것이다.

1. 상속세 존치는 일종의 성역

한국에서 상속과세의 존치는 일종의 ‘성역’이었다. ‘상속세를 완화하거나 합리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금기시 되어왔다. 정치인이 상속세를 입에 올리는 순간 ‘부자를 편드는’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주자들 간의 정책경쟁에서 최재형 후보가 ‘상속세 폐지’를 들고 나왔다. 폐지는 방향으로 내용적으로는 ‘합리화 방안’이다. 최재형 후보는 상속세 폐지 공약으로 캠프에서 내홍을 겪는다. 최재형 후보를 지지하던 유력인사는 이를 계기로 지지를 철회했다.

‘정치의 생산성’은 무엇인가? 그동안 ‘당연선(當然善)’으로 인지되어 온 것들이 ‘과연 여전히 타당하고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 아닌 가? 의문이 제기되지 않으면 현실은 그대로 ‘고착화’ 된다. 경직된 정책 사고에 환기(換氣)를 해주는 것이 정치인 것이다.

상속세가 부의 세습을 막아주는 정의로운 ‘로빈 후드’ 세(稅)라면 전 세계 모든 선진국은 상속세를 강화해야 맞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상속세 부담을 낮추거나 폐지하고 있다. 2018년 현재 OECD 35개 회원국 중 ‘13개국’은 상속세가 없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각각 1972, 1977년, 1992년에 상속과세를 폐지하고 ‘상속된 재산의 가치증식분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자본이득과세’로 상속세를 대체 과세하고 있다.

상속세를 부과하더라도 대부분 국가들은 세율을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주요국의 상속세율은 일본(55%), 미국(40%), 독일(30%), 네덜란드(20%), 덴마크(15%), 이탈리아(4%)이며 OECD 평균은 27.1%이다. 한국은 특히 기업 상속에 가장 가혹하다. 최대주주 할증 과세적용 시 ‘60%’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들은 최고소득세율보다 상속세율을 낮게 책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상속세와 소득세를 같은 율로 부과하고 있다. 최고소득세율 보다 더 높은 상속세율을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2. 우리나라 상속과세, ‘동등한 출발’에 얼마나 기여했나?

우리나라 상속과세는 사회구성원의 ‘동등한 출발’에 얼마나 기여했나? <그림-1>은 2015년을 기준으로 OECD 국가별 전체 세수 대비 상속 및 증여세 비중을 표시한 것이다. 한국(1.3%)은 벨기에(1.6%) 이어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비중은 OECD 평균 0.34%의 약 4배이다. 이 정도면 ‘동등한 출발’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의한 수준인 가.

<그림-1> OECD 국가별 전체세수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

<표-1>은 ‘증여를 배제하고’ 2017년 이후 상속세 결정현황을 표시한 것이다. <표-1>에서 보듯이 총 국세 대비 상속세수의 비중은 1.0% 미만이다. 2020년에야 1.48%를 차지하고 있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별세에 따른 상속세가 잡혀서 일 것으로 추측된다. 국세 대비 1.0% 안팎의 상속세가 ‘동등한 출발을 위한 지렛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속세액을 국세가 아닌 GDP에 대비 시키면 그 비율은 더욱 작아진다. 상속세 강화라는 유량(flow)의 변화로 저량(stock) 변수인 ‘부의 집중’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낮출 수는 없을 것이다.

<표-1> 상속세 결정현황 (단위 명, 조원, %)

‘상속세의 교정효과 미미하다’는 <표-1>의 해석은 상속세 찬성론자의 반론(反論)을 부를 수 있다. 쉽게 떠 올릴 수 있는 반론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부의 집중’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완화될 수 있도록 상속과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로 <표-1>이 해석될 수 있다.

그 같은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점을 간과하고 있다. 먼저 ‘기회의 평등을 저해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출발선 상에서의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타고난 ‘능력의 차이’이다. 그러나 생득(生得)적 자질과 능력은 ‘유전적 상속’으로 기본적으로 과세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인적자본 축적도 그 출발은 ‘유전적 상속’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과세가 여의치 못하다. 그렇다면 인적자본을 결정하는 유전적 상속 이외의 ‘환경적 요인’에 대한 과세는 가능한가? 이 역시 불가능하다. 예컨대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부모로부터 자녀가 받은 좋은 자극과 동기유발은 과세할 수 없는 일종의 ‘귀속소득’인 것이다. 결국 인적자본의 세대 간 이전에 대한 과세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상속세로 경제적 기회균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정책적 기대를 낮춰야 한다. 상속세 중과는 형평성을 개선시키지도 못하고 경제효율의 상실만을 가져올 위험성이 크다.

상속과세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사망을 과세 사건으로 하는 ‘사망세’(death tax)이다. 생존이 끝날 때 남긴 재산에 과세하는 세금이기 때문에, 상속세는 도덕적 관점에서 혐오적인 세금이 아닐 수 없다. 사망세의 관점에서 볼 때, 상속세는 낭비하고 소비를 즐긴 나머지 무일푼으로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면세하고 반면 낭비하지 않고 근검절약하여 부를 축적한 사람에게 과세하는 것이다. 사망세로서의 상속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상속세의 납세순응비용(compliance cost)은 매우 높다, 결국 상속세는 변호사와 회계사만 살찌게 만든다. 상속과세의 납세순응비용은 사회후생을 저하시키는 ‘초과부담’(excess burden)으로 기능한다.

3. 상속세가 겨냥하는 큰 물고기는 경영권 승계

우리나라에서 반(反)기업정서의 실체는 ‘반(反)기업인’ 정서이다. 예컨대 삼성과 현대자동차 그룹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룹 총수는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배주주에 대한 부정적 심리는, “누가 경영하더라도 ‘민주적’으로만 경영하면 지금의 지배주주 일가(一家)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억측을 낳기도 한다. ‘민주적 경영’은 노조기반의 정치논리이다.

과연 그런가? 미국 제조업의 아이콘인 GE는 좌파들이 꿈에 그리던 기업이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는 전형적인 모범 기업이다. 한국처럼 적은 지분으로 경영전권을 휘두르고 일감을 몰아주는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웰치와 이멜트에게는 21년과 17년이란 시간이 주어졌다. 따라서 미국식 단기성과주의 단점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런 GE가 몰락한 것이다. 1907년 ‘다우존스’에 입성한 GE는 2018년 6월 111년 만에 경영성과 부진으로 다우존스에서 퇴출됐다.

GE의 방향성 없는 인수·합병(M&A)은 ‘업의 본질’을 망각시키게 했다, 이멜트 회장은 웰치를 벤치마킹해 끊임없이 기업을 인수하고 매각해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하지만 기업을 사고파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삼성그룹 고(故) 이병철 회장의 지론은 ‘업의 본질’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일본 JAL은 지배주주를 내쫓고 국민기업으로 만들면서 골병이 들었다. 주인부재를 틈타 공무원 등이 대거 낙하산으로 내려갔고 드디어 2010에 파산했다. 일본정부가 공적자금을 넣어 회생시켰다. 이러한 반대 사례들을 종합적으로 보면, 주인부재의 전문경영으로 책임경영을 실행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4. 경영권 승계는 사적자치(私的自治) 영역

소유경영에서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제기되는 단골 메뉴는 ‘자질론’이다. 한마디로 경영능력이 ‘유전’되느냐이다.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 없는 피붙이에 대한 ‘맹목적 승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자식에게 물려줄 것인가를, 그리고 자식이 과연 물려받은 것을 잘 지켜낼 것인가를” 그 누구도 물려주는 당사자만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는 하이에크(Hayek)가 설파한, 당사자가 가장 정통할 수밖에 없는 ‘특정상황 하의 현장지식’인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느냐 아니면 기업의 승계프로그램에 의해 자식세대를 최고경영자로 기르느냐는 기업의 선택에 맡길 일이다. 60%의 약탈적 상속세로 ‘후자의 길’이 막혀서는 안 된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망하게 하는 것”도 선택지로 존중되어야 한다. 경영권 승계는 ‘사적자치’(私的自治) 영역으로 제 3자가 관여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동일선 상의 출발’이라는 명분에 포획된 상속세의 미몽(迷夢)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속세를 100% 부과하지 않는 한 동일한 출발선 상에 서게 할 수 없다. 상속세율 인하를 재벌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음모로 여기면 선택지를 스스로 좁히는 것이다.

상속세를 폐지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유연하게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부동산, 주식 등을 상속받더라도 이를 현금화하지 않고 생산과정에 다시 투입하는 경우, 상속세 부과는 마땅히 이연되어야 한다. 상속과세의 자본이득과세로의 전환도 상속세 완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평등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날 때, 경제를 도덕률로 재는 원리주의 역시 수그러들 수 있다. 상속은 세대 간 계주이다. 60%의 징벌적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은 ‘국가 폭력’이다. ‘고래’가 해체되어 죽은 고기로 거래 되면 모두 ‘가난이라는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게 될 것이다. 최재형 후보의 문제제기는 시의 적절하고 옳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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