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희 칼럼] 그들의 종교는 샤머니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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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10.07 10:20:08
  • 최종수정 2021.10.0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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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하고도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도 샤머니즘을 버릴 수 없다면, 거기에 기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겠다. 그렇더라도 후보들이 믿는 역술가들이 최소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말로 자신의 무능함을 덮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자기 통장을 챙기기보다는 자신을 믿는 후보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인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후보 귀에 달콤한 얘기만 골라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21세기에 이런 소심한 소망을 갖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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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종교는 샤머니즘입니다.”

과학 발달이 정점을 향해 가고 AI가 인간을 찜쪄먹게 생긴 21세기에 샤머니즘이라는 원시 종교를 믿는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누가 아직도 그런 걸 믿느냐, 혹은 우리는 다른 종교를 믿기 때문에 그런 거 따지지 않는다고들 할 것이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이 아직도 샤머니즘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조상의 묏자리 덕이나 탓을 이야기하는 것, 부적을 만들어 몸에 지니는 것, 손(損) 없는 날로 이삿날을 잡는 것 등이 우리가 쉽게 접하는 샤머니즘적 사고라 할 수 있겠다.

외래 종교들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샤머니즘적 요소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 석가모니나 예수, 마호메트 등 세계 대표 종교에서 구세주 혹은 선지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강조한 것은 사랑과 희생, 헌신과 선행이었다.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내세에서의 평안한 영생이지 이생에서의 부귀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부귀영화 혹은 안정된 삶을 버리고 군중 계도에 나섰고 그에 따른 고통을 감수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어떤 종교를 믿든 부귀영화(자녀의 몫 포함)를 기도의 맨 앞에 세우는 사람이 많다. 어찌 보면 누구를 믿든 이런 식의 신앙은 모두 샤머니즘적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최근 어느 경선 후보의 손바닥에 부적처럼 그려진 ‘王’자가 화제가 되었다. 그런 글자를 몸에 새기고 다니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간곡히 권한 사람이 있었을까? 그 제안을 그럴 듯한 이야기라고 받아들여 실행한 후보의 마음 밑바닥에 자리한 간절함이 엿보인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말을 하지만 대선이든 총선이든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이런 샤머니즘 관련 뉴스는 빠지지 않고 등장해왔다. 아버지 묘소를 이장하고 난 후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람도 있고 아예 역술인을 스텝으로 데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선거철이 역술인의 대목이라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들이 정말 효과가 있으며 역술인의 예언은 믿을 만한 것일까?

나도,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어 보이는 샤머니즘적 신앙에 흔들린 경우가 많다. 내가 잘 나갈 때나 아쉬울 것이 없을 때는 이런 것에 동요되지 않는다. 그런데 뭔가 일이 안 풀릴 때는 그 매듭을 샤머니즘적 요소에서 찾는 것이다. 집터가 안 좋은 것일까? ‘손 있는 날’ 이사해서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돌아가신 부모님 묏자리가 안 좋은 걸까? 뭐 이런 식이다.

나는 결혼 후 수차례 이사했는데 꼭 ‘손 있는 날’에만 했다. ‘손 없는 날’에는 이사 비용이 특별히 비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할 때는 처음으로 큰맘 먹고 ‘손 없는 날’을 택했다. 그 덕분일까 아니면 내 노력 덕분일까, 아니면 완전한 우연일까? 이 집에서는 10년이 지나도록 즐겁게 잘 살고 있다. 아주 가끔 ‘손 없는 날’의 효험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10여 년 전 《역사가 보이는 조선 왕릉 기행》이라는 책을 펴냈다. 능 자리가 양지바르고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가 하는 차원에서의 풍수지리는 샤머니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차원을 넘어서 이른바 ‘자손 발복’의 터인가 아닌가에 수준에 이르면 이는 샤머니즘에 가까워진다고 생각된다.

나는 풍수지리 분야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맡은 강의와 답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자손 발복의 관점에서 본 왕릉의 명당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조선 왕릉과 ‘자손 발복’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왕릉 때문에 정치적 분쟁이 일어난 적도 많다. 거기 묻힌 왕의 자손은 왕 또는 왕실 사람들이고 왕조 시대에는 그들이 잘 되고 못 되고가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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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침 한쪽이 비어 있는 서오릉의 홍릉.

말 나온 김에 명당으로 알려진 능 자리에 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 안쪽에 자리한 홍릉(弘陵)은 영조의 첫 번째 왕비인 정성왕후 서씨의 능이다. 그런데 이 능의 능침은 한쪽으로 쏠려 있고, 앞에서 볼 때 왼쪽이 빈 자리로 남아 있다. 그 빈 자리는 원래 영조가 자신이 사후 묻히려고 스스로 정해놓은 자리였다.

그러나 영조는 그 자리에 묻히지 못했다. 손자 정조가 엉뚱한 자리를 능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영조는 동구릉 원릉(元陵)에 묻혔는데 그 자리는 이전에 효종의 능이 있던 곳이다. 한번 파헤쳐졌던 곳이라, 왕릉 터를 잡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기와 혈이 이미 날아간 터이다. 말하자면 김이 새버린 터에 할아버지 묘를 쓴 것이다. 이는 아버지를 죽인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로 보인다. 피바람을 일으켰던 연산군에 비하면 참 소심하게 복수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조상의 묏자리가 후손들의 길흉화복을 결정한다고 믿었던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자신의 명운과 국운을 건 대대적인 복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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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융릉. 왕릉 정자각에는 잡상을 세 개 올리는 것이 원칙인데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정이 깊었던 정조는 잡상 하나를 더 올려놓았다.

반면 나중에 왕으로 추존된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1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명당에 모셨다고 한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융릉은 원래 왕실의 묘소인 능이나 원의 조성 요건에 맞지 않는다. 능이나 원은 한양 도성으로부터 80리(지금 이수(里數)로는 100리, 즉 40km) 안에 두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왕의 부모 묘소인 능이나 원에는 왕이 성묘를 다녀야 하므로 당일에 다녀올 거리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 수원은 도성으로부터 88리였다. 능 자리가 무척 탐났던 정조는 “이제부터는 수원을 80리라고 명하노라”라고 억지를 부려 그 자리를 택했다고 한다.

정조는,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할아버지는 그로부터 103년 전에 파묘된 흉당에 매장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억지까지 써가면서 최고의 명당에 모셨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자신의 직계 조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정조는, 잘 되면 아버지 덕, 잘못되면 할아버지 탓으로 만들고 모든 공을 아버지에게 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아무튼 지금 이 시점에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그래서 ‘1천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최고의 명당’에 마련된 사도세자의 융릉이 후손들에게 명당 구실을 했는가이다.

융릉 자리가 진짜 명당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명당이니 정조를 비롯하여 이후 모든 왕이 다 사도세자의 후손 아닌가.”

융릉 자리가 명당 구실을 못했다는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 후손이 나라를 망해 먹었지 않나. 더구나 고종은 생물학적으로 사도세자의 자손도 아니다. 그 할아버지 남연군이 양자로 그 집안으로 들어왔으니 말이다.”

결국 그 떠들썩하게 골랐던 명당의 효험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편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다.

“웬 귀신 하나가 궁궐에 들어와서 큰 소리로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라고 외치고는 땅으로 들어가버렸다. 왕이 괴이쩍게 여겨 땅을 파보게 하니 깊이 3척쯤 되는 곳에 거북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등에 ‘백제는 둥근 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라는 글씨가 있었다. 왕이 무당에게 그 뜻을 물으니 무당은, ‘둥근 달 같다는 것은 가득 찬 것이니 이지러질 것이라는 얘기이고 초승달과 같다는 것은 아직 차지 않았으니 점점 차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노하여 무당을 죽였다. 다른 이가 ‘둥근 달과 같다는 것은 왕성한 것이요, 초승달과 같다는 것은 미약한 것이니 백제는 왕성해지고 신라는 점차 쇠약해지나 봅니다’라고 말하자 왕이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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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 충신 계백 장군 동상.

우스갯소리로 이런 얘기도 있다. 유명한 점술가를 찾아갔는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점술가가 ‘고객’에게 일갈했다. 그것도 다짜고짜 반말로….

“너 어릴 적 살던 집에 우물 있었지?”
“어?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그 정도야 내가 다 알지.”

우물이 있었다면 말할 것도 없이 점술가는 의기양양해지고 그는 아주 용한 사람으로 신뢰도가 엄청 올라갈 것이다. 동시에 그 고객은 점술가의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우물이 없었을 경우는 어떨까? 점술가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잘못 알았나?”하고 고개를 갸우뚱할까? 놀랍게도 그런 경우 점술가는 더욱 의기양양해지고 목소리 또한 커진다.

“거 봐, 거 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우물 있었으면 넌 거기 빠져 죽어서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어.”

이런 허망하고도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도 샤머니즘을 버릴 수 없다면, 거기에 기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겠다. 그렇더라도 후보들이 믿는 역술가들이 최소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말로 자신의 무능함을 덮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자기 통장을 챙기기보다는 자신을 믿는 후보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인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백제의 무당처럼 후보 귀에 달콤한 얘기만 골라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21세기에 이런 소심한 소망을 갖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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