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칼럼] 우파 정치가 압축 성장할 수 있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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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10.12 08:04:42
  • 최종수정 2021.10.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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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 사태, 필자의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진영의 역량 차이 절감
우파 대중들의 정치적 경험을 체계적, 조직적으로 축적해야
아스팔트 우파 세력, 코로나 사태 아니더라도 실천적 조직적 지속성 갖기 어려웠다
정치토론이 우파 정치학습의 핵심이어야...하지만 우파 진영에는 정치토론 심각하게 결여
토론의 핵심은 구체적인 실행 어젠다...역시 관건은 사람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 다시 한번 좌파 진영과 우파 진영의 조직력의 차이를 실감한 계기는 지난 8월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 사태였다. 이재명이 황교익을 경기관광공사(화천대유 사건의 유동규가 사장으로 일했던 바로 그곳이다) 사장으로 내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낙연이 ‘친일’ 시비를 건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황교익은 자신의 SNS와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서 말 그대로 부들부들 떨면서 “이낙연의 정치 생명을 끊겠다”는 메시지를 내며 극렬 반응을 보였고, 이런 돌발 상황에 이재명 캠프는 물론이고 여권 전체가 난감해하는 처지가 됐다. 이 사태를 수습 못하면 여권 전체의 대선 구도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마저 보였다.

앞으로 더욱 흥미진진한 판이 전개될 것이라는 필자의 기대는 하지만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해찬과 김어준 등이 등판해 사태 수습에 나서자 황교익이 순식간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황교익은 ‘민주당 재집권을 위해서’라는 대승적 입장을 내세우며 경기관광공사 사장 후보에서 스스로 사퇴했다. 황교익의 평소 성품이나 경기관광공사 사장직에 보였던 집착 등을 고려했을 때 허무할 정도로 깔끔한 결말이었다.

그때 느꼈다. 아, 이 친구들이 장난 아니구나. 만일 우파 진영에 비슷한 사태가 생겼다면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아마 대통령 선거 당일까지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악재들까지 겹치면서 자멸하지 않았을까? 지난해 4.15총선 이후 2년 가까이 우파 진영을 수렁에 빠트리고 있는 부정선거 논란만 봐도 짐작이 간다. 우파 진영은 조직력과 결속력, 위계질서 등에서 좌파에게 압도당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먼저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차이를 들게 된다. 이게 본질이다. 다른 요소들은 이런 근본적인 요인에서 파생된 문제들이라고 봐야 한다.

좌파의 이념은 설계주의 특성이 강하다. 근대 좌파 이념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운동 법칙과 인류사의 진행 과정을 하나의 도식으로 정리해냈다. 이른바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이 그것이다. 이 세계관은 자기 완결적인 속성이 강하고, 내적 정합성이 높아서 비교적 쉽게 도식화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도그마로서 대중적 전파에 유리한 요소이다.

마르크스가 좌파 이념의 세계관을 완성했다면, 레닌은 정치투쟁과 조직의 무기로서 좌파 이념을 완성했다. 직업 혁명가 조직인 전위정당, 엄혹했던 러시아 짜르 체제의 탄압을 돌파하는 조직화 무기로서 전국적 정치신문(NPN, National Political Newspaper)인 당 기관지 <이스크라> 그리고 의회정치 전술 등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탁월한 점이 있다.

좌파 이념은 출발부터 목적의식적으로 설계됐다. 이는 단순 요약과 도식화가 쉽고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전파하기에 유리한 요소이다. 당연히 정치투쟁에서도 우위를 갖게 된다. 나아가 좌파 진영 내부의 동질성을 높이고 그 구성원들이 강력한 철의 규율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황교익이 이낙연의 ‘친일’ 공격에 분노해 길길이 날뛰다가 순식간에 꼬리를 내리고 스스로 민주당 정권 연장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순한 양이 된 배경에는 이런 좌파 이념의 영향력이 있다. 이해찬 등이 황교익에게 당근 또는 채찍을 사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 진영의 역량 자체는 결국 이념의 영향력에서 나온다고 봐야 한다.

우파는 정반대 상황이다. 우파 시민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얘기이겠지만, 우파의 이념에는 세계관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규칙과 질서가 어떤 것인지, 인류의 역사는 어떤 원칙에 의해 전개돼왔고 앞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제시하는, 체계적으로 정리된 모델이 없다는 얘기이다.

우파의 이념을 경험주의적이라고 부르는 근거가 이것이다. 한마디로 이 세계의 법칙은 살아봐야 아는 것이고, 그렇게 얻은 결론도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이다. 우파의 이념이 틀렸다거나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역사적 경험은 우파의 이념이 좌파의 그것보다 현실 정합성이 높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우파가 지지자들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도그마의 체계화에 실패했고, 이것이 정치투쟁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해온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념의 전파 능력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좌파는 대규모 공장제 생산이고, 우파는 소규모 가내 수공업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20세기 전세계 지식인과 대중에게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다만 좌파가 이념투쟁에서 우위를 갖는다고 해서 그게 정치적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 세계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좌파의 정치적 승리는 해당 공동체의 몰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은 지난 세기에 세계적인 정치적 역사적 실험을 통해서 분명하게 검증됐다.

우파는 현실적 타당성의 검증에서는 승리했지만 그 이념적 완성도에서는 투박하고 거칠다. 그래서 우파 이념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에는 오랜 진통과 경험의 축적을 거쳐야 한다. 그나마 역사적인 답이 나왔을 즈음에는 해당 공동체는 몰락의 운명을 맞은 이후이다. 사회주의 시험을 거친 국가들이 예외 없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파 이념의 현실적 정합성과 이념으로서의 체계화 부족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 우파 대중들의 정치적 경험을 체계적 조직적으로 축적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우파 대중의 정치적 무능력과 지성의 빈약함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극복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앞서서 이념적 갈등을 거쳤던 국가들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 특히 경험주의 철학의 바탕이 튼튼한 영미권 국가들의 사례가 중요하다. 영국과 미국 등은 어떻게 이념적 도그마의 취약점을 극복하고 좌파 진영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자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의 힘이라고 봐야 한다.

암묵지는 언어 등의 구체적인 형식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경험과 학습에 의해 체화된 지식이다. 반면 구체적인 형태로 형식을 갖추어 표현된 것을 명시지(明示知, explicit knowledge) 또는 형식지라고 한다. 명시지가 서양 합리주의의 산물이라면, 암묵지는 영미 경험주의의 에센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가 독일 등 유럽 합리주의의 기반 위에서 발원하고 나아가 서양문명의 변방이었던 러시아 즉 암묵지의 축적이 취약한 지역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후로도 좌파 이념은 주로 암묵지의 축적이 취약한 중국 등 제3세계 지역에서 위력을 떨쳤다.

지적 축적이 빈약한 사회의 지식인일수록 사상 체계로서 완성도가 높은 좌파 이념에 매력을 느끼고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복음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체계적인 지적 경험이 천박하기 때문에 좌파 이념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없는 것이다. 20대에 사회주의자가 아닌 자는 심장이 없고, 40대 이후에도 사회주의자인 자는 두뇌가 없다는 경구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지적 현실적 경험의 체계적인 축적만이 좌파 이념을 극복할 수 있는 백신이자 치료제이다.

중국은 몇천 년 황하문명의 축적이 대단한 나라인데 암묵지가 부족하다는 게 무슨 말이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인 암묵지는 근대에 들어와 체계적인 전승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단절이 심해서 근대화 이후의 지적 생태계에서는 별 의미가 없어졌다.

그런 단절이 아니더라도 중국 문명의 유산이란 게 제대로 된 암묵지의 역할을 했을지도 의문이다. 상류 귀족계급의 전유물이었던 한자에 기반을 둔데다 집단주의적이고 몰개성적인 중국 문명의 특성상 전통적인 암묵지가 보존됐다 해도 그게 근대문명의 대중 민주주의에 적용할만한 지적 자산이 되기는 어렵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암묵지의 축적이 좌파 이념과의 체제 대결에서 그렇게 중요한 요소라면 중국이나 우리나라 같은 동아시아 문명권(일본은 경우가 다르다)은 희망이 없는 것 아닐까? 실제로 우리나라 현대사는 우파 선진들의 처절한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드라마틱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항상 좌파의 이념 공세에 취약점을 드러내왔다.

황하문명의 거대한 영향력이 여전히 우리의 정신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다 1945년 해방 당시 38선의 남과 북에 각각 진주한 미국과 소련의 준비 정도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소련은 처음부터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적화라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체계화된 정치 프로그램을 갖고 점령에 임한 반면 미국은 한반도 정책에서 뚜렷한 목표와 전략를 갖지 못하고 우왕좌왕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6.25 전쟁 이전까지 소련이 북한 지역에 쏟아부은 지원도 미국이 남한 지역에 지원한 물량을 압도했다. 6.25전쟁 초기 북한군의 우세는 소련의 그런 지원의 결과였다.

그런 점에서 북한 체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특유의 설계주의에 근거한 정치 기획의 결과물이다. 김일성의 주체사상도 스스로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극복이라고 강조하지만, 결국 극복대상인 마르크스 레닌주의 자체가 새로운 이념체계의 사상적 태반(胎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우파는 이렇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념적 사상적 지형에서 정치투쟁의 승리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애국시민들이 길거리에 쏟아져나와 목청을 높이기도 했고, 좀더 조직적 고민을 하는 분들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유튜브 생태계의 경우 우파가 오히려 우세를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념적 사상적 기반이 약한 아스팔트 우파 세력은 코로나 사태가 아니더라도 실천적 조직적 지속성을 갖기 어려웠다. 4.15총선의 참패 이후 우파 교육 프로그램들 역시 활기를 잃고 존속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체계적이고 도식화된 도그마를 갖고 있지 못한 우파의 이념은 커리큘럼 위주의 교육 프로그램에 적합하지 않다.

우파가 그나마 장점을 보여온 유튜브는 각각의 국면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활동 목표 즉 메시지를 제시하지 못하고 교과서적으로 옳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준에 그쳤다. 일부 유튜브 채널의 심각한 도덕적 정치적 일탈은 논외로 치고 하는 얘기이다.

암묵지를 핵심으로 하는 우파 이념의 특성상 우파의 정치적 훈련은 철저하게 정치 현실에 대한 분석과 대안 제시를 중심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즉, 현장 실습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외 정세는 어떠한지, 좌우파 진영의 역관계는 어떤 상황이고 어떤 이슈가 이 전선의 역관계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지, 구체적인 실천 지침은 무엇인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 즉, 정치토론이 우파 정치학습의 핵심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우파 진영에는 이 정치토론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 결론도 없이 끊임없이 소모전인 논쟁을 벌이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파의 정치토론은 구체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분명한 결론을 내고 그 결론이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탄탄한 조직 기반 위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실행할 수 있는 조직만이 그런 토론을 조직할 수 있다. 바로 정당만이 이런 정치토론을 조직하고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다. 이것이 정당과 시민단체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이런 토론의 핵심은 구체적인 실행 어젠다이다. 그리고, 정당에서 당원들의 가장 민감한 실행 어젠다는 자기가 투표권을 행사할 지역의 공직선거 공천 문제이다. 당면 정치정세를 바라보는 정치철학, 지역의 중요 현안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책 등이 모두 공천 문제로 집약되기 때문이다.

실천 프로그램과 기획의 성공 여부는 결국 사람에 달려있다. 우파 정치의 암묵지를 강화하고, 조직력을 강화하는 정치토론 역시 관건은 사람이다. 당비 제대로 내고, 기본적인 정체성 교육을 이수한 진성당원들에게 공천권 등 중요 의사 결정권을 부여할 때 우파는 정치적 무능력과 훈련 부족을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우파 정치의 심각한 과제인 리더십 결핍의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정치 경험의 축적에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하지만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은 단기간에 압축 성장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IT와 SNS 등의 사회적 인프라가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이다. 이 결단을 통해 대한민국 우파는 정치적 패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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