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가들 “실체가 모호하지만 궁극적으로 한미동맹 끝내라는 것”

북한이 지속적으로 ‘폐기’를 주장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은 도대체 무엇일까? 김여정은 지난 9월 25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간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적대시 정책’ 철회를 조건을 내걸었다. 김정은도 같은 달 29일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모든 협상과 합의의 걸림돌로 제기해온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은 워싱턴 정계에서 북한문제를 다룰 때 오랫동안 피로감을 더해온 수사다. 미국의 외교 당국자들은 북한의 고위 관리들이 협상 때마다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지만 정작 그 뜻을 물어보면 답변을 늘 회피한다고 회고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주장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은 실체가 모호하며 궁극적으로 한미동맹을 끝내라는 뜻이라고 지적한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북한은 (미북 협상에서) 적대시 정책을 수없이 언급하면서도 분명한 뜻을 밝히지 않았다”며 “북한은 적대시 정책 때문에 대화해 봐야 소용없다고 말하려 하지만 끝내야 할 적대시 정책이 무엇인지 정의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조셉 디트라니 전 미국 6자회담 차석대표도 VOA에 “북한은 적대시 정책이라는 용어를 항상 쓰면서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디트라니 전 대표는 “북한은 협상에서 진전을 보지 못할 때, 그리고 미국, 한국, 일본 등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적대시 정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막상 원하는 것을 얻고 진전이 이뤄지면 그 말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적대시 정책’은 상황에 따라 “전술적”으로 쓰는 표현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열린 북한과의 반관반민 회의에 여러 차례 참석했던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적대시 정책의 정의와 관련해 “북한은 의도적으로 이를 매우 모호하고 일정한 형체가 없게 유지하면서, 그때그때 자신들이 원하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겨뒀다”며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거듭 비난하는 북한 당국자들에게 ‘우려를 덜어줄 수도 있으니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면 그들은 주제를 바꾸거나 정확한 의미에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고 VOA는 전했다. 구체적으로 지난 2019년 10월 스티븐 비건 당시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스톡홀름에서 북한 당국자들과 만나 그들이 제기하는 안전보장과 평화선언, 적대시 정책의 의미에 대해 물어봤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른바 ‘뉴욕채널’을 통해 미북 실무협상을 전담했던 전 국무부 관리들은 비공식 회동 시 북한의 외교 관리들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조목조목 열거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며, 여러 요구사항들이 있지만 ‘한미동맹의 종식’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의 (지난달) 발언은 연합훈련과 미군 배치가 적대시 정책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유용한 예”라며 “하지만 다른 북한관리들은 한미동맹을 끊고, 한반도와 한반도 주변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만이 적대시 정책을 중단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수년 동안 말해왔다”고 했다. 앞서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지난달 2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미국을 향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우리를 겨냥한 합동 군사연습과 각종 전략 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대조선 적대시 정책 포기의 첫걸음을 떼야 한다”고 촉구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유럽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 적대시 정책을 거듭 언급하는 북한의 고위 외교관으로부터 그런 (한미동맹 종식) 정의에 대해 분명히 들었다”며 “몇년 전 뉴욕을 방문한 북한 외무상에게도 적대시 정책의 뜻을 묻자 그는 ‘적대시 정책은 한미동맹, 한반도와 역내 배치 미군으로 대표된다’며 ‘이같은 적대시 정책을 종식한다면 미래 어느 시점에 비핵화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클링너 연구원은 VOA에 “북한이 오랫동안 언급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종합해보면 목록이 상당히 광범위하다”며 “미군의 한국, 일본, 서태평양 주둔, 한미 상호방위조약, 미일 상호방위조약, 역내 미 핵 자산, 미국과 유엔의 제재, 인권 상황 비판 등이 포함된다”고 했다. 이어 “북한은 서울에서 벌어지는 반북 시위와 한국 언론에 실리는 북한 비판 기사까지도 적대시 정책으로 간주하는 등 필요할 때 어떤 의미로든 사용한다”고 했다.

브루스 벡톨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VOA에 북한의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의 “단기적 목표는 제재 완화이며 장기적 목표는 한미동맹을 끝내고 한반도에서 우세한 위치를 차지해 한국으로부터 대규모 양보와 원조, 현금, 식량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벡톨 교수는 “결국 미국이 하는 모든 행동이 북한에는 적대시 정책”이라며 “문제는 북한이 책임감있는 행동이나 양보는 절대로 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수십년 동안 한반도 긴장의 원인을 제공해온 북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문제삼는 것은 ‘적반하장’이자 ‘주객전도’라며 북한의 대미·대남 전략이 바로 적대시 정책이라는 사실을 공개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킹 맬로리 랜드연구소 국제위기안보센터 국장은 VOA에 “1950년 정당한 이유 없이 한국에 대한 전쟁을 시작한 뒤에 10여 척의 한미 선박을 납치 또는 침몰시켰고 청와대를 습격해 한국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으며, 육·해상으로 비무장지대를 10여 차례 넘어 침투한데다 국경을 넘나들며 저지를 50여 건의 사건에 책임이 있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약속을 위반한 당사자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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