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최신 반도체 'M1프로'와 'M1맥스'를 공개했다. 지난해 자체 칩셋 ‘M1’을 발표한 데 이어, 불과 1년만에 이보다 최대 70% 이상 빠른 고성능 칩을 선보였다. [사진=연합뉴스]
애플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최신 반도체 'M1프로'와 'M1맥스'를 공개했다. 지난해 자체 칩셋 ‘M1’을 발표한 데 이어, 불과 1년만에 이보다 최대 70% 이상 빠른 고성능 칩을 선보였다. [사진=연합뉴스]

애플이 18일(현지시각) 노트북용 최신 CPU(중앙처리장치)를 내놓으면서 ‘탈(脫)인텔’을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인텔도 애플의 이런 시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미 연초에 ‘파운드리(시스템 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다.

애플과 인텔의 이런 행보로 인해 삼성전자도 새로운 경쟁자를 만나게 됐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인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 설계를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바이든과 손잡고 파운드리 강화...애플은 세계 최고 성능의 시스템 반도체 개발 성공

인텔의 파운드리 재진출 과정에서 미 정부가 보여주는 태도와 인텔의 전략을 통해 ‘반도체 패권 탈환을 노리는 미국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 연초에 인텔은 시스템 반도체에 집중하는 대신, 파운드리 부문은 사실상 포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오히려 파운드리 부문도 강화하는 공격적 입장으로 선회했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 부족 사태 등을 감안해, 미국 기업의 파운드리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기업과 정부과 전격적으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애플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최신 시스템 반도체 'M1프로'와 'M1맥스'를 공개하면서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을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로 확고한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지난해 자체 칩셋 ‘M1’을 발표한 데 이어, 불과 1년만에 이보다 최대 70% 이상 빠른 고성능 칩을 공개한 것이다.

이날 애플은 M1프로와 M1맥스를 '야수'(beast) 칩이라고 강조했다. 애플에 따르면 M1프로는초당 11조회 연산이 가능하다. 전력 소모량도 대폭 줄여, 배터리는 최대 21시간 사용을 자랑한다. 현재 기술로는 그 어떤 반도체 업체도 이 정도 성능을 갖춘 칩을 제작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애플은 10년 전만 해도 삼성에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사서 아이폰을 생산했다. AP는 노트북용 CPU를 스마트폰에 맞게 개량한 칩을 의미한다. 그랬던 애플이 2010년 무렵부터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겠다"며 '탈 삼성'을 선언했고, 그로부터 약 10년 뒤에는 세계 최고 성능을 갖춘 CPU를 자체 설계(제작)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는다. 애플이 CPU 구조를 설계하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가 위탁생산해준다. TSMC 공장에는 최신 5나노미터(nmㆍ10억분의 1m) 공정 가운데에는 애플을 위한 전용 라인이 있을 정도이다.

애플은 M1칩에 이어 이번 M1프로와 M1맥스 역시 대만 TSMC에 생산을 맡긴 것으로 알려진다. 애플이 자체 제작 칩 라인업을 확대하면서, 기존 CPU 업체인 인텔은 더욱 수세에 몰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파운드리 키우는 인텔의 겔싱어 CEO, 경쟁자인 삼성전자와 TSMC의 ‘지정학적 리스크’ 지적

애플이 역대급 칩을 내놓은 날,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사진)는 다큐멘터리 뉴스 '악시오스 온 HBO(Axios on HBO)'에 출연, 미 정부를 향해 (파운드리 공장과 관련한) 보조금 지급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 생산비가 아시아보다 30~40% 비싸서는 안 된다. 이 차이를 줄여 미국에 더 크고 빠른 반도체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호소한 것이다.

‘악시오스 온 HBO’에서 인터뷰하는 팻 겔싱어 인텔 CEO. 겔싱어 CEO는 한국과 대만에 반도체 생산을 의존하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위험한 일이라며 미국에서 반도체가 생산되도록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HBO 유튜브 캡처]
‘악시오스 온 HBO’에서 인터뷰하는 팻 겔싱어 인텔 CEO. 겔싱어 CEO는 한국과 대만에 반도체 생산을 의존하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위험한 일이라며 미국에서 반도체가 생산되도록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HBO 유튜브 캡처]

겔싱어 CEO는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곳에 팹(반도체 공장)을 세우는 것은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며 "석유 매장지는 신이 결정했지만 팹을 어디에 둘 것인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며 미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가 이날 ‘파운드리 경쟁력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언급한 점은 아시아의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대만 TSMC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TSMC와 삼성전자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73%를 점유하고 있는 1위와 2위 기업이다. 한국의 삼성전자에는 북한 리스크가, 대만의 TSMC는 중국과 정치적 갈등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을 거론한 것이다.

겔싱어 CEO의 주장은 “미국 본토 밖에서 이들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안보적 관점에서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인텔은 지난 7월 26일(현지시간) 야심만만한 파운드리 비전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를 따라잡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겔싱어 CEO의 노골적인 주장은 한마디로 ‘인텔의 반도체가 애플 제품에 다시 사용되거나, 애플이 인텔에 반도체 생산을 맡기길 원한다’는 것이다. 애플은 그동안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 모바일 제품엔 독자 칩을 쓰면서도, 아이맥·맥북 등 PC에는 인텔 CPU를 써왔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자체 칩 'M1'을 탑재한 첫 맥북 제품을 내놨다.

애플이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의 아성을 위협하자,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TSMC의 지분을 빼앗아옴으로써 손해를 만회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인텔을 노골적으로 지원...정부지원 못받는 삼성전자는 ‘사법 리스크’에 빠져

조 바이든 대통령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 부족 사태 등을 감안해 미국기업의 파운드리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 인텔의 전략을 지원하고 있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이 성장할 경우 바이든은 제조업 일자리 확대라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미 의회도 인텔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재 미 상원은 지난 6월 반도체 제조에 520억달러(약 61조3600억원)를 지원하는 안을 담은 '미국 혁신 경쟁법'을 가결했지만, 하원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겔싱어 CEO는 "이들(TSMC와 삼성전자)과 경쟁하기 위해선 520억달러 지원도 부족하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겔싱어 CEO의 호소에 미국 의회도 빠른 답변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부의 자국 기업에 대한 편파적 지원은 이번만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애플에 대해 노골적인 특혜정책을 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갈등 와중에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미국에 들어올 경우 일종의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애플의 아이폰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됐다. 보복관세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팀 쿡 애플 CEO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애플을 예외로 해달라”고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했다. 트럼프는 애플만 보복관세를 면제받게 해주면서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한 팀 쿡은 현명한 CEO”라고 자랑질까지 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희대의 정경유착 사건’으로 매도됐을 게 뻔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 개최된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1’에서 내년 상반기 GAA 기술을 3나노 공정에 도입하고 순차적으로 2023년에는 3나노 2세대, 2025년에는 GAA 기반 2나노 공정을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지난 7일 개최된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1’에서 내년 상반기 GAA 기술을 3나노 공정에 도입하고 순차적으로 2023년에는 3나노 2세대, 2025년에는 GAA 기반 2나노 공정을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미 행정부와 의회는 자국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손발을 척척 맞추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의회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인텔과 애플과 맞서 시장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는 정부나 의회의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이다. 참여연대 등과 같이 진보를 표방하는 시민단체가 주도해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재판 등의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재판을 마쳤지만 또 다른 고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다.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미국 기업과 정치적 탄압을 받는 삼성전자 간의 반도체 패권전쟁이 앞으로 어떤 양상을 띠게 될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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