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죄의 非범죄화'에 대하여─무엇을 처벌할 것인가?

펜앤드마이크 박순종 기자
펜앤드마이크 박순종 기자

◇사인간 분쟁에서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기준은 ‘타인의 소유(권)를 침해했는가’

문제는 과연 ‘명예’ 또는 ‘명예 감정’이 어떤 사람의 소유(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에 있다.

다시, 결론부터 말하면,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명예’에 대한 소유권은 보편적으로 부정된다. ‘명예’, 바꿔 말하면 ‘평판’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타인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지 본래부터 특정인의 소유(물)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므로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명예훼손죄’로 다뤄져 검사의 수사와 기소로 이어지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최근 조 전 장관의 행위가 낳은 결과가 ‘명예훼손죄’에 관한 한 영미법계 국가의 이같은 접근 방식이 매우 타당하다는 주장을 방증(傍證)했다.

조 전 장관은 여당·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문재인 대통령에게 큰 호감을 보여 온 이들(소위 ‘친문’)로부터 큰 지지를 받아 왔다. 특이한 점은 문 대통령에게 큰 호감을 보여 온 이들은 같은 정당 소속이지만 문 대통령과 대척점을 이뤄온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는 큰 반감을 보이는 한편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조 전 장관의 어떤 행위가 이들을 조 전 장관에게서 등을 돌리게 했다. 이낙연 전 대표가 민주당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조 전 장관은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썼는데, 이게 문제가 된 것이다.

조 전 장관이 최초 게재한 글은 “이낙연 후보의 승복으로 민주당 경선이 끝났습니다. 제안 하나 올립니다. 자신이 반대했던 후보에 대한 조롱, 욕설, 비방 글을 내립시다”라는 내용으로 돼 있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의 내용. 수정 후(위), 수정 전(아래).(출처=인터넷 검색)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의 내용. 수정 후(위), 수정 전(아래).(출처=인터넷 검색)
한 네티즌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저서 《조국의 시간》을 불태웠다며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게재한 사진.(사진=인터넷 검색)
한 네티즌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저서 《조국의 시간》을 불태웠다며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게재한 사진.(사진=인터넷 검색)

이 게시물의 내용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퍼지면서 그간 조 전 장관을 지지하고 응원해 온 ‘친문’ 성향 네티즌들이 조 전 장관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욕설을 퍼붓거나 하는 등의 방식으로 큰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들은 조 전 장관의 게시물 내용을 이재명 후보를 공격하는 데에 열을 올린 자신들을 거꾸로 공격하는 취지로 받아들이며 조 전 장관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조 전 장관 편을 들 이들이 이제 거의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조 전 장관을 지지한다는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그들의 생각을 존중할 셈이다.

그렇다면 최초에 내가 제기한 문제로 되돌아가 ‘명예’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다시 고찰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명예는 원래부터 조 전 장관의 소유(물)이라고 할 것인가, 타인에 의해 형성된─그것도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평판의 집합(체)’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것인가?’ 결론은 명확해진다.

영미법계 국가에서 명예훼손 행위가 형사상 책임을 져야 할 행위로 다스려져야 한다고 해서 ‘명예훼손의 피해’를 호소하는 이가 아무런 구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명예훼손에 의해 피해가 발생한 경우 그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구체적 수치로 입증해 법원으로부터 인정받는다면 가해자로부터 손해배상을 얻어낼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가해자가 책임을 지는 부분은 ‘명예훼손’ 그 자체가 아니라 명예훼손으로 인한 ‘결과’(피해액)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소송도 명예훼손의 결과로 발생한 피해 규모를 구체적인 수치로 입증할 책임이 그같은 피해를 주장하는 이에게 있으며, 이마저도 피해를 주장하는 인물이 ‘공인’에 해당할 경우 법원은 해당 피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게 보편적 경향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만을 비범죄화하자는 조 전 장관의 주장을 적극 반대한다. 오히려 나는 ‘명예에 관한 죄’(모욕을 포함) 그 자체를 형법이 정한 범죄 목록에서 빼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침해할 수도, 침해될 수도 없는 ‘명예’를 무슨 방법으로 훼손할 수 있단 말인가?

특정인의 ‘명예’란 것은 원래부터 특정인의 소유(물)가 될 수 없다. ‘명예’란 언제나 가변적인 것이며, 그마저도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된 무형(無形)의 것으로써, 침해할 수도, 침해될 수도 없는 속성을 가진 것이다.

‘명예에 관한 죄’가 형법에 도입된 경위를 따져 보면, 본디 신분제 국가에서 신분이 낮은 이가 신분이 높은 이를 험담하는 행위 등을 벌하고자 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며 만민이 평등한 ‘민주 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 범죄라고 할 것이다.

생각해 보자─소유할 수도 없고 소유한 적도 없는 ‘명예’를 침해당했다는 주장을 받아 검사가 사람들을 오라 가라 해대고 공소장을 써서 재판에 넘기고, 판사는 또 그것을 검토하고……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행정력 낭비가 어찌 아닐 수 없단 말인가?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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