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물태우로 불렸다. 6공 정권 내내,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 야당에 둘러싸인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으로 강력한 국정운영을 하기 어려웠지만 노태우 특유의 소심하고 유약한 성격 또한 이런 별명이 생긴 원인이었다.

인간 노태우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김영삼 문민정권 등장 이후 12·12, 5·18 군사반란 및 내란에 대한 검찰의 첫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검찰수사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 때문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결국 특별법을 만들어 가까스로 전두환 노태우 등 5공 신군부 인사들을 처벌하는 등 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수사내용은 이후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여러차례 이루어진 12·12, 5·18에 대한 그 어떤 조사보다 충실했다. 검찰이 강제수사권을 갖고 각종 국가기관의 자료는 물론 이후 조사에서는 잠적, 사망하거나 진술을 거부한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벌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반란군의 핵심들은 19791212일 저녁, 정승화 당시 육군 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전격 체포하는 거사를 하면서 장세동 대령이 부대장으로 있는 경복궁의 수경사 30단에 모였다.

정승화 총장의 체포는 서울 한남동 육군총장 공관에서 그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정 총장 연행사실을 알게 된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이 서울 중구 필동 수경사 앞에 전차와 병력을 집결시킨 뒤 수경사 30단에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탱크를 몰고가서 네 놈들 머리통을 박살내겠다고 호통을 치자 모여있던 반란군 수뇌부는 공포에 휩쌓였다.

현장에 있었던 한 장성은 검찰에서 반란군 측 병력동원의 정당성을 설명하면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장태완 사령관이 노발대발하면서 탱크로 다 밀어버리겠다고 하자 특히 노태우 9사단장은 앉았다 일어났다 안절부절을 못하면서 이제 어쩌지 어떻게 하나를 연발했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춤에 권총집을 만지막 거리더니 우리 모두 이 자리에서 자결을 합시다라고 했다. 노태우 소장의 이런 모습을 보고 유학성인지 선배 한명이 왜 그래 겁쟁이처럼이라고 꾸짖었다.”

하지만 이날밤 12·12 쿠데타에서 노태우 9사단장은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서울과 지척에 있는 자신의 부대 9사단을 서울로 출동시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 공관과 광화문 정부청사 일대를 장악한 것이다.

9사단의 출동은 전두환의 요구에 따른 것이지만 당시 육군본부를 점령한 1공수여단 등 여타 부대와 달리 미군의 작전통제권하에 있는, 북한군의 남침을 최전방에서 막는 야전군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쉽지않은 일이었다.

이후 노태우가 전두환의 보안사령관직을 물려받는 등 후계자 코스를 밟게되는 것은 두 사람이 대구 경북 동향에 육사동기로서 30년 우정은 물론 이같은 12·12 쿠데타에서의 역할이 신군부 핵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대한민국의 군 출신 대통령을 자신에서 끝내기 위해 노신영 이종찬 이세기 등 민간인 출신에게 눈길을 주곤했다. 하지만 결국 노태우가 후계자로 된 것은 그의 유약함과 전두환의 퇴임후 구상이 일치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 무렵 사정에 밝았던 사람들의 증언이다.

전두환은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대신 자신은 국가원로자문회의라는 기구의 의장이 돼서 대통령을 주무르는 상왕정치를 구상하고 있었다.

1987년 민주화투쟁의 결과물인 대통령직선제 개헌 수용은 한동안 노태우의 결단으로 포장됐다. 하지만 직선제 대통령선거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던 노태우는 이를 한사코 반대했고, 전두환이 설득해서 밀어부친 것으로 이후 전두환 본인 및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정리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그는 신군부 인사 중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1980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김대중을 처형하면 안된다고 전두환을 설득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는 언론에 공개되기 한참 전부터 광주 5·18묘지를 참배해왔다고 하는데 언젠가부터 밤 마다 악몽에 시달렸던 아버지가 시킨 것이라고 한다.

이상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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