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로부터 시작된 한국 대권정치의 세가지 특징
노태우로부터 시작된 한국 대권정치의 세가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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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6·29선언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10월유신으로 없어졌다가 1987년 민주화투쟁에 따라 부활된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 시대를 15년만에 열었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6명의 직선제 대통령이 1987년 헌법에 따라 선출됐는데,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첫 당선자로서 지금과 같은 직선제 대권정치의 특징과 유산을 남겼다.

 

①대선캠프와 사조직

전국 규모의 대선을 치르기 위해 후보가 소속된 정당외에 별도의 캠프의 사조직이 등장하게 됐다. 1987년 대선 당시에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이른바 ‘1노 3김’ 후보는 당내 경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후보가 되기 위한 외곽 캠프는 필요하지 않았다.

본선을 위해 정당조직 보다 후보에 대한 충성심과 기동성이 훨씬 강한 사조직은 1987년 대권에서부터 등장했다. 노태우 후보가 측근인 박철언씨 등을 통해 만들었던 ‘월계수회’, 김영삼의 ‘민주산악회’, 김대중의 ‘연청(聯靑)’이 대표적이다. 당시 월계수회나 민주산악회 연청은 같은 조직은 회원이 수십만명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 조직이었다.

이런 사조직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인터넷 기반의 팬클럽,카페 등의 형태로 진화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사모’가 대표적이다.

사조직과 함께 여야 모두 후보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는 2002년 16대 대선 이후로는 일찌감치 대선 전략을 짜고 사람을 모으는 캠프가 대권정치의 필수품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대선캠프는 그 멤버들이 대선 승리후, 정부의 요직과 공공기관장을 나눠먹는, 왜곡된 ‘한국식 엽관제(獵官制’의 병폐를 만들기도 했다.

 

②비자금과 정경유착(政經癒着)

정당도 그렇지만 사조직과 대선캠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정당과 정치조직의 생리는 공중전화에 비유되곤 했다. “딱 돈을 넣는 시간 만큼만 가동된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손을 벌릴 곳은 단 한곳, 기업밖에 없었고 이는 정경유착을 불렀다.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는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2,000억원 가량을 받은 것 외에 여러 기업인으로부터 돈을 조달했는데 이는 집권 후 각종 인·허가 등 특혜, 정경유착으로 이어졌다.

김영삼 정부 때 이루어진 검찰의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수사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과정에서 돈을 내지 않은 주요 기업이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1992년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시도 때도 없이 돈을 요구하는 노태우 대통령 때문에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해서 출마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92년 대선에서 1조원 가까운 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나는 더이상 정치자금을 만들지 않겠다”고 ‘만세’를 부르고 말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수백억원대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휘말렸고, 1997년과 2002년 두차례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 후보는 기업으로부터 차떼기로 돈을 받은 사건, 국세청을 동원해 기업돈을 모은 ‘세풍사건’을 일으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삼성 등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 때문에 측근인 안희정 이광재씨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③차별화와 과거청산, 정치보복 논란

정권 재창출, 또는 정권교체를 위한 전임 정권과의 차별화 및 집권이후의 과거청산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보복 시비를 낳았다.

1987년 12월 직선제 선거를 앞둔 노태우 후보는 ‘전두환의 후계자’라는 이미지를 벗기위해 여러가지 차별화를 시도했고, 전두환 및 그 주변 인사들과 마찰을 빚었다.

집권후 노태우 대통령의 ‘5공 청산’은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시대적 과제였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전두환과 5공세력은 ‘정치보복’으로 받아들였다.

5공 민정당 및 노태우 대통령과의 3당합당을 통해 대통령이 된 김영삼의 전두환 노태우 수사또한 민주화라는 역사적 당위성과는 별개로 정치보복 논란이 일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김대중 정권 대북송금 수사, 이명박 대통령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자살, 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MB정책 청산, 문재인 정권의 적폐수사로 이어지기까지, 잘못된 과거청산과 과거부정의 경계가 모호하다 보니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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