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2주기를 맞아 현충원 묘역을 참배하는 국민의힘 지도부 및 대권주자. (사진=연합뉴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2주기를 맞아 현충원 묘역을 참배하는 국민의힘 지도부 및 대권주자. (사진=연합뉴스)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42주기였다. 이에 국민의힘 지도부와 대권주자들은 박 전 대통령을 추도하며 동작구 국립 서울 현충원 묘역을 참배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었다. 관련 기사에서 느껴지는 인터넷 여론이 꽤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2주기 묘역참배 관련 기사 네이버 덧글 캡처.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2주기 묘역참배 관련 기사 네이버 덧글 캡처.

한 네티즌은 27일 자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 관련 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며 “70년대 이전 가난에서 우리를 구한 위대한 경제지도자로서 그 분의 업적은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른 네티즌은 “대한민국 산업화가 박정희가 아닌 국민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논리면 임진왜란의 승리도 이순신이 아닌 관군의 노력 덕택”이라며 “모든 사람이 열심히 일해도 리더가 무능하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 그만큼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반드시 재평가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언급된 두 덧글 모두 추천 수가 비추천 수 대비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덧글들은 금방 비추천을 받아 내려갔을 것이다. 한 연예인이 십 년도 더 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한 것으로, 잊을만하면 언론의 도마 위에 올라 혼쭐나던 시절이었으니까.

김동률 ‘그게 나야’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배우 공유. (사진=유튜브 캡처)
김동률 ‘그게 나야’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배우 공유. (사진=유튜브 캡처)

이는 배우 공유의 이야기이다. 패션잡지 ‘보그걸’ 2005년 7월호에는 이 매체와 공유와의 인터뷰가 게재됐다. 당시 인터뷰에서 공유는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남자’로 “아버지, 마이클 조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았다.

인터뷰 당시에는 큰 논란이 일지 않았지만, 이후 뒤늦게 2012년 영화 ‘도가니’가 개봉하던 때와 2016년 영화 ‘부산행’이 개봉하던 때 논란이 재점화 되며 공유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사회적 풍조는 자못 이해하기 힘들다. 박 전 대통령에겐 분명 과(過)도 있다. 다만 박정희 시대를 거쳐 온 국민들이 버젓이 살아있고, 박 전 대통령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했다’고 평가 받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특정 개인의 의견에 대해 이런 식의 소위 ‘인민 재판’이 행해진다는 것은 분명 표현의 자유가 축소되는 것과 접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재판의 뒤편에는 ‘옳은 역사관’을 규정하려는 시도가 있다.

불과 수 년 전만 하더라도 강제 되던 그 올바른 ‘역사 인식’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역사 인식은 어떻게 광범위 하게 전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연구한 동아시아연구원(EAI)의 2020년 10월 5일자 워킹 페이퍼 ‘한국인의 역사인식과 정체성’에서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저서 '해방전후사의 인식' 6권 관련 사진 (사진=문화일보)
저서 '해방전후사의 인식' 6권 관련 사진 (사진=문화일보)

▲ ‘민중적-민족적 관점’에서의 ‘역사 인식’과 그 흐름

불과 수 년 전만해도 통용되는, 당당하게 이야기하며 다닐 수 있던 것은 소위 ‘진보적’ 역사관이었다. 이 좌파 민족주의적 역사관의 주춧돌이 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시리즈 6권과 그 영향에 대한 EAI 워킹 페이퍼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들은 해방 전후의 사회변동을 분단체제의 형성과정으로 제시하였는데, 냉전의 구조화라는 국제적 상황과 좌우합작, 농민과 노동운동의 국내적 변동을 ‘민중적-민족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해방전후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였다(송건호 외 2004; 강만길 외 1985; 박현채 1987).”

“더불어 진보 학계는 한국전쟁의 발발 책임과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한 재조명, 박정희 정권의 폭압적 성격과 노동 통제에 대한 비판적 평가 등을 통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박정희를 근대화를 이끈 지도자로 미화 해왔던 주류 시각에 도전하였다(박명림 외 2006; 손호철 2011).”

이는 결국 이승만-박정희 정권 및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의견의 대두와 ‘노동 운동’ 및 ‘민주화 운동’의 우상화로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동원된 ‘노동’과 ‘민족’이라는 감상적 개념들은 한 쪽을 치켜 세우는 동시에 다른 한 쪽을 ‘입에 담아서도 안 될’ 대한민국의 흑역사로 규정 짓는 것에 일조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功)을 언급하려는 시도는 ‘독재 미화’로 읽혔다. 장년층이 이런 시도를 한다면 그들은 ‘태극기 부대’ 였고 젊은 층이 이런 시도를 한다면 그들은 ‘일베’ 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이러한 경향은 정권 초기 더욱 극심해졌다. ‘표현의 자유’ 논란 속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2월 발의한 ‘5·18 왜곡 처벌법’과 지난 8월 발의한 ‘위안부 왜곡 처벌법’ 역시 그 연장 선상에 있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남는다. 어떻게 이러한 좌파적 역사관은 우리 사회에 넓게 퍼질 수 있었을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련 사진. (사진=뉴시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련 사진. (사진=뉴시스)

▲ 교육과 시위라는 두 축을 통한 확산

이러한 역사관이 널리 퍼지게 된 것 뒤편에는 주된 두 축이 존재한다.

정치편향교육

첫번째 축은 ‘정치 편향 교육’으로 수차례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언론 보도가 있었다.

당장 지난 18일자 조선일보에 ‘유치원생까지 노동 3권 교육시킨다는 전교조’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전교조 조합원들이 지난 20일 있었던 ‘민주노총 총파업’을 앞두고 18~20일 사흘간 유·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 수업을 진행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이 ‘노동인권 수업’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유치원생과 초등 저학년에게 미국의 동화작가 도린 크로닌의 그림책 ‘탁탁 톡톡 음매~ 젖소가 편지를 쓴대요’를 읽어주고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르친다. 이 책은 추위에 떠는 젖소들이 ‘전기 담요를 놓아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농장주에게 보내고, 이를 거부하는 주인에게 항의하기 위해 우유 짜기를 거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자신들의 총파업 정당화를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해 ‘노동 3권 수업’을 영유아에게도 하는 셈이다. 이들에게, 아이가 학교에서 ‘파업하는 젖소’ 이야기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모의 심정은 고려사항이 아닌 듯 싶다.

지난 2019년에는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에선 일부 교사들의 ‘정치 편향’ 논란이 있었다.

당시 교내 행사에서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반일 구호를 외치도록 강요하고, 수업시간 중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낸 학생들에게 “일베 하느냐”며 모욕적 언사를 가하기도 했다. 또 ‘조국 뉴스는 가짜뉴스니 믿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16년에는 세월호 사건을 정치 편향적 교육 목적으로 소비했던 ‘전교조 4.16 교과서 선동’ 논란이 있었다. 무려 16년 전인 지난 2005년에도 신자유주의와 부시(미국) 정부 반대를 골자로 하는 ‘전교조 반(反)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수업 전국 실시’도 있었다.

지난 2002년에도 정치 편향 교육 관련 논란들이 기사화 된 것을 미루어 볼 때, 대한민국 공교육은 적어도 19년 이상 이러한 역사관과 정치적 편향성을 허용한 셈이 된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그대로다.

트럼프 방한 반대 시위 포스터.
트럼프 방한 반대 시위 포스터.

시위

두번째 축은 ‘시위 행위’다. 동원되는 명분은 다양하지만, 결국 진짜 목표는 ‘반미(反美)’와 ‘반(反) 정부 기조’ 확산에 있다.

2002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가 있었다. 이는 분명한 주한미군의 과실치사 사고로, 가슴 아픈 사고이지만 반미 시위로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사고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해보면, 당시 관측병 페르난도 니노 하사는 무전기 고장으로 인해 조종수에게 사람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기갑차량에서 무전기가 고장 나면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 승무원의 의사소통도 원천 차단되는데, 이는 시끄러운 엔진 소리로 인해 귀 옆에 대고 소리를 질러도 말을 알아 듣기 힘들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조종수 마크 워커 하사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고는 정치적 시위로 변질됐다. 두 하사의 무죄 판결이 ‘반미 감정’을 자극하기에 좋은 소재였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월간조선 뉴스룸 보도에 따르면, 10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1년 마다 추모 명목으로 반미, 반 정부 시위가 이어졌다고 한다. 사건의 배경인 효촌리 마을의 한 주민은 이렇게 찾아 오는 시위패들이 와서 연극을 하고,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고 증언했다. 유가족은 물론이고 마을 주민 대다수가 반기지 않는데 말이다.

이 외에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 사드 배치 반대 시위, ‘이석기 석방’ 플랜 카드가 내 걸리는 총파업 등 다양한 시위가 존재했고, 명분만 달랐을 뿐 핵심적 목표는 대동소이 했다.

이들이 명분으로 위장해 개입한 주 무대에는 ‘감정적 동요’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두 학생이 희생된 미군 장갑차 사고, 산호초가 파괴되고 있다는 제주 강정마을, 전자파로 고통 받는다는 성주 사드 배치, 일자리를 잃어버린 노동자까지.

이렇게 연민이라는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이들이 목표한 바는 절반 이상 성공한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공분을 일으키듯, 사람들은 ‘연민의 대상’의 반대편에 서 있는 측에 ‘적대감’을 자연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특정 정치 집단 및 세력과 결탁된 많은 시위가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얽혀 ‘폭력 시위’로 변질되는 이유다.

 

정재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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