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보하는 정치가 모든 것을 정치로 환원하면서 한국사회 발목 잡아
87년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의 민주정 30년은 大실패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지향...文정권이 그 실체 보여줬다
2021년 가을은 제6공화국의 가을...대한민국의 봄을 기약할 수 있을까?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어김없이 찾아온 가을,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펼쳐지는 혼란은 지난 30여년의 대한민국 제6공화국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 기업은 2류, 한국 정치는 4류“라는 고 이건희 삼성회장의 95년도 발언을 소개한 어느 칼럼은 이 발언 이후 26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속의 초일류 기업이 등장하는 등 사회 각분야는 시대에 대응하여 변화해 왔고 여러 면에서 대한민국은 공화국으로서 위상을 자리잡았지만 정치는 후퇴한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위 발언의 의미는 퇴보하는 정치가 모든 것을 정치로 환원하면서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아 모두 함께 추락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혼란의 도가니가 되어버린 정치 현실에서도 선거의 계절은 다가왔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선택을 해야 하지만 선택할 정당이나 정치인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 무성한 것은 퇴보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심정을 보여준다.

87년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의 민주정 30년은 실패가 아닌가 싶다. 정치가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한채 제6공화국 이전의 민주와 독재라는 구호만을 반복하면서 과거로 퇴행하였다. 세력으로서의 보수가 몰락한 이후 실질적으로 반대 정치세력을 배척하고 탄압하는 적폐청산이란 명분의 정치는 보수를 향한 한풀이를 넘어서서 모든 영역에서 공화국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고 과거의 명분을 내세우는 진영간의 전쟁 양상에 이르고 있다. 내년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든 불안할 수 밖에 없음은 이합집산의 정치 상황에서 미래를 담당할 책임과 능력을 보기 어렵고, 현실 문제의 해결이나 미래 이야기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30여년전 제6공화국이 모색했던 통합이라는 과제는 이행되지 않고, 정파간의 과거 명분의 전쟁만이 남은 현실에서 과연 민주정이 지속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갖게된다. 누가 승리하든 다음 정권은 잠재적인 전쟁 상황을 잠재우고 평화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극단적 대립 상황에 처한 제6공화국은 단일한 하나의 공화국으로서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지향했던 제6공화국의 오늘은 우리의 실체를 보게 하였다. 촛불혁명으로 이루었다는 새로운 시대에 조국 사태와 조국사태 시즌2라고 불리우는 대장동 게이트등 막장에 이른 우리 현실이 드러났다. 어떤 명분으로도 현실을 가릴 수 없음에도, 현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진영의 존속과 이를 위한 선거의 승리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한 뻔뻔스러움이 과거의 명분을 대체하는 명분 아닌 명분으로 내세워진다. 명분을 투쟁에 끌어들이는 모습은 우리 사회 구조의 내면의 실체를 불러낸다.

한국 사회의 실체가 자기가 속한 연고 집단을 수단으로 해서 개별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파편화된 사회라는 점은 여러 연구자들이 이야기해 왔다. 헨더슨과 기무라 간의 지적처럼 연고를 통해서 중앙 무대를 지향하면서 상승으로 나아가는 소용돌이 모습이거나 헨더슨의 모델을 수정한 이영훈의 나선형 사회모델로 설명된다. 리(理)를 중심으로 하는 중심과 주변의 모델로 설명한 오구라 기조의 설명도 이러한 소용돌이의 지향성을 확인하게 한다. 소용돌이 안에서의 상승을 향한 투쟁을 지향함은 명분으로 정당화되고 힘을 얻는다. 명분에 가리워진 상승을 위한 투쟁 지향이 우리 모습이다.

이영훈 교수가 대한민국사에서 87년까지의 공화국 대한민국 역사를 서술하면서 건국의 과정은 계속 진행중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국가 건설의 전반기를 지난 후의 제6공화국은 이어서 국가 건설을 마무리해야 했는데, 그후 30여년을 지나서 마주한 건국 시기와 같은 혼란과 분열의 상황을 보면 다시 원래의 우리 모습으로 돌아간 듯 하다. 언젠가는 소용돌이 자체가 무너져 내려서 추락하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오직 상승의 소용돌이에 모든 것을 걸면서 공동체의 틀을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하였다. 제6공화국 체제는 그러한 우리의 본래의 모습에 맞기에 오늘까지 이어오지 않았나 싶다.

우리의 문제는 민주정의 가을과도 함께 한다. 자유민주정의 궁극적 승리라는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주장은 철회되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사회는 사회 양극화와 기술전체주의라는 위험을 만들었다. 한때 유행했던 트위터 민주주의라는 낙관적 용어가 기대했던 민주정의 진전은 멈추어섰고, 민주정의 존속 여부가 논란되고 있다. 개인들이 네트워크로 직접 연결된 네트워크화된 사회는 민주정의 기반을 넓히고 사회 다원화를 가능하게 하리라는 희망을 주었지만, 가짜뉴스와 음모론의 범람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을 만들고 있다. 개인간의 자유로운 연결이 오히려 에코챔버에 가두고 듣고싶은 정보만 듣게 되면서 개인과 집단의 편파성을 극대화한다. 마누엘 카스텔은 네트워크 사회에서 각종 사회운동을 통한 정체성의 기획이 권력을 획득하여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해체한다고 주장했다. 정체성 정치는 미디어를 통해 문화의 영역으로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공화정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분열과 대립을 이용하는 포퓰리즘의 범람과 정체성 정치의 진전은 민주정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위기의 원인인 정체성 정치는 자신의 본연의 주장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 같은 대립되는 과거의 명분을 자신의 명분으로 채택하면서 양극화 질서에 가담하여 양극화를 부추긴다. 정치적 양극화는 정치가 추구했던 가치를 고려하거나 현실의 문제 해결 또는 미래를 위한 정초를 쌓기 보다는 상대편을 이기기 위한 수단에만 몰두한다. 양극화된 질서는 모든 이를 소외시킨다. 어느 정파나 진영도 소속된 구성원의 입장을 실제로 대변하지 않는다, 양극화된 진영은 소속감이라는 효용을 제공한다. 양극화 현상은 심리적 양극화이고 정체성의 양극화다. 경제적 양극화 상황은 개선 과제라는 질문이라도 던져주지만, 심리적, 정체성의 양극화는 정신 승리를 과제로 삼기에 대립을 극단화하고 파괴를 지향한다.

제6공화국의 87체제 헌법은 제1공화국에서부터 제5공화국에 이르는 과거를 기반으로 해서 통합과 공존의 질서로 설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의 헌법 현실은 끊임없는 상호 부정을 원천으로 대립을 지속하여 왔고, 더 이상 공존이 어려운 정체성으로 양극화된 진영간의 전쟁 국면에 이르렀다. 오래된 한국적 구조의 사회적 지향성이 드러나고 오늘날의 민주정의 위기와 맞물리면서 공화국 대한민국은 을씨년스러운 가을을 맞이 했다.

2021년 가을은 제6공화국의 가을이다. 르네상스를 바라보면서 중세를 고찰한 호이징거의 중세의 가을은 근대로 가는 길 위에서 중세에 축적된 자산들을 기술하였다. 제6공화국의 가을이 이렇게 스산한 것은 공화국의 역사를 망각하기 위한 과거의 파괴 과정 이후의 폐허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제6공화국의 파탄은 제6공화국 이전 공화국의 기반을 거부하는데서 시작했다. 과거의 민주 대 반민주, 친일 대 반일이라는 낡은 프레임으로 공화국의 지난 역사를 애써 지우고 의도적으로 역사를 건너뛰어서 왕정국가 조선으로 회귀하게 한다. 이에 제6공화국 이후의 공화국의 역사를 아예 부정하는 반발을 초래하게 되었다. 87년을 기점으로 공화국의 역사가 반으로 갈려 있다.

우리의 분열은 시간에 대한 것이고, 우리의 전쟁은 역사에 대한 것이다. 현재로 이어지지 않는 시간은 없다. 전개된 역사는 인생과 같아서 부정할 래야 부정할 수 없고 부정되지도 않는 현실이다. 삶을 단절시키고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와 싸우는 것이다. 삶과 역사에서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만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없었던 것으로 편집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현재의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미래를 없앤다.

자신의 근원을 없애고 자기 자녀를 삼킨 크로노스가 결국은 몰락하여 자신의 시대를 잃어버린 것처럼 역사를 재단하는 자기 기만의 괴물은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없앨 운명이다. 공화국을 세웠으나 공화국을 부정하고, 공정과 평화를 외치면서도 서슴없이 이를 파괴하는 범죄를 자행하는 괴물은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누구나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 서있고 지나간 자취를 지울 수 없다. 우리는 편집된 삶과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를 유일한 동력으로 사용하고 모든 것을 정치로 환원함으로써 모순을 극대화하면서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의 기반을 허물어 왔다. 지나간 봄을 부정하고 여름을 기억하지 않으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역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습으로 가을을 맞이할 수 밖에는 없다.

지난 30여년의 세월이 남긴 폐허같은 현실에서 제1공화국에서부터 제6공화국에 이르는 공화국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2022년은 대한민국의 봄을 기약할 수 있을까? 2021년 지난 30여년을 뒤로하고 87 체제의 가을이 깊어간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前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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