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교황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기꺼이 가겠다고 말해”...교황청 공식 발표엔 교황 ‘방북’ 관련 언급 없어
워싱턴 정가, 교황 방북에 대해 “한반도 긴장 완화보다 남북한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공산 크다” 우려
신자 확산 두려워하는 북한이 교황에 초청장 보낼 가능성도 낮아

29일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하고 있다. (교황청 제공.연합뉴스)
29일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하고 있다. (교황청 제공.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전(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방북을 공식 제안했다. 청와대는 교황이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기꺼이 가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황청의 공식 발표에는 교황의 방북 관련 언급이 없었다. 교황의 방북 여부와 관련해 교황청에서 현재 검토가 진행 중인 사안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7박 9일 일정으로 유럽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 부부는 이날 바티칸 교황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배석자 없는 단독 면담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면담에서 “교황님께서 기회가 돼 북한을 방문해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인 브리핑에서 전했다.

박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교황에게 “한국인들이 큰 기대를 하고 있다”며 “다음에 꼭 한반도에서 뵙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한과의 대화 노력이 계속되길 바라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평화를 위해 나는 기꺼이 가겠다. 여러분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형제이지 않느냐, 기꺼이 가겠다”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교황청 방문 때도 교황에게 방북을 제안한 바 있다. 당시 교황은 “북한의 공식 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고 했으나, 북한은 공식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18년 만남을 상기시키며 “지난 방문 때 교황께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 노력을 축복해 줬다”고 했다. 교황은 문 대통령에게 “언제든지 다시 오십시오”라고 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에게 폐철조망을 수거해 만든 십자가인 ‘평화의 십자가’와 그 제작과정을 담은 이동식디스크(USB)를 전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에게 교황청 공방에서 제작한 기념패와 코로나로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기도한 사진과 기도문이 담긴 책자를 선물했다.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텅 빈 광장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고 했고, 교황은 “역설적으로 그때만큼 많은 광장이 꽉 찬 적이 없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면담에 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곧바로 교황을 면담했다. 한미정상은 현장에서 마주치지는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교황과 90분간 면담한 것에 비해 문 대통령이 35분을 만난 것이 너무 짧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35분 동안에도 많은 대화가 오갈 수 있다. 양측이 그만큼 많은 라포가 형성돼 있다”고 박 대변인은 답변했다.

한편 로마 교황청이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교황의 ‘방북’ 관련 언급이 없었다. 청와대는 교황이 "초청장이 오면 (북한에) 기꺼이 가겠다"고 말했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교황청의 공식 발표에는 이와 관련된 언급이 없었다. 

교황청은 보도자료에서 양자는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가톨릭 교회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며 “공동의 노력과 선의는 연대와 박애주의의 지지를 받아 한반도 평화와 정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공유했다”고 했다.

미국 ABC 방송도 이날 청와대가 설명한 방북 가능성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에 대해, "로마 교황청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한 교황의 방북 여부와 관련해 교황청에서 현재 검토가 진행 중인 사안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도 30일 교황청은 문 대통령과의 면담에 대해 한반도 평화 발전에 대한 희망을 공유했다고 밝혔을 뿐 ‘방북’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교황청 대변인실은 29일(현지시간) 문 대통령의 교황 면담에 대해 질문한 VOA에, 두 지도자의 대화 중에 “양국 간 상호 좋은 관계와 가톨릭 교회가 사회에 제공하는 긍정적인 공헌에 대한 사의가 표시됐다”고 밝혔다. 또한 “남북 간 대화 증진과 화해를 위해 전개되는 특별한 부단한 노력도 환기됐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공동의 노력과 선의가 연대와 형제애의 지원을 받는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이 공유됐다”고 했다. 교황청 대변인실은 “대화는 현 지역 현안과 인도적 문제와 관련한 일부 주제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했을 뿐 교황의 방북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무리한 교황 방북 추진에 대해 워싱턴 정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긴장 완화 역할보다 남북한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었다.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VOA에 “교황의 방북이 김정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지 의심스럽다”며 “김정은이 무척 갖고 싶어하는 지위와 위신, 관심을 주게 될 뿐”이라고 했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교황이 평양에서 미사를 집전할 수 있겠느냐”며 “천주교 신부는 북한의 가짜 천주교 신자나 신부에게 성찬식을 행할 수도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황은 자국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강력한 체제의 꼭대기에 앉아있는 지도자와 악수할 수 없다”며 “교황은 과거에는 인권 침해 국가들을 방문하고 그런 국가들과 관여했지만 북한처럼 신자들을 잔인하게 근절하지 않는 천주교 국가들이었고, 북한 정권 수준의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는 나라는 더더욱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교황은 현재까지 교회와 사제가 없는 국가를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문 대통령이 교황에게 방북을 거듭 요청하는 이유는 ‘종전선언 밀어붙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지난 8일 북한 대사직을 겸임하고 있는 페데리코 파일라 주한 이탈리아 대사를 만나 “종전선언에 대해서 많은 협력과 지지를 바라고 남북관계 개선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북이 성사되도록 공감대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교황 첫 예방 전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이 집전한 한반도 평화 특별 미사에서 “한반도에서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지구상 마지막 냉전체제를 해체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강조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교황의 방북은 남북대화와 미북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로 삼으려는 시도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미첼 리스 전 미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VOA에 “교황이 현재 남북한을 갈라놓고 있는 것과 관련한 어떤 합의도 중재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희망은 정책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기저에 깔린 긴장과 불협화음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한국전쟁 종전선언 등을 하는 것은 암 환자에게 반창고를 붙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김정은 정권은 교황의 방문으로 제재가 완화되고 무조건전 지원이 제공되면, 김일성이 1970년대에 주장한 고려연방제 구축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기대할지 모른다”며 “교황의 관점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황의 보좌관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절박한 상황이고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면서도 “교황이 모든 교파의 기독교 신앙을 억압하는 북한정권을 아무 조건 없이 방문해 문 대통령과 그의 당에 선물을 안기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세계 최악의 종교 박해 국가인 북한이 교황에게 초청장을 보낼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1989년 베를릴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9월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이듬해 북한의 보호막 역할을 해주던 소련이 해체되고 1992년 8월 한중이 수교하자 김일성은 로마 바티칸 교황청과 직접 접촉을 모색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북한에 오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실제로 1991년 북한 외무성 내 교황을 평양에 초청하기 위한 상무조(TF)가 편성됐다. 그러나 북한 내 천주교 교인이 급속하게 증가할 것을 우려한 김정일의 반대로 무산됐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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