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1등 서기관 “유엔사는 사실상 미군사령부...북남 화해 협력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

김인철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서기관이 2021년 11월 4일 제76차 유엔총회 제6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인철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서기관이 2021년 11월 4일 제76차 유엔총회 제6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북한이 9일 또다시 한국에 있는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유엔 홈페이지에 따르면 김인철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1등 서기관은 지난 4일 법률 문제를 다루는 제76차 유엔총회 제6위원회 회의에서 “개별 국가가 정치·군사 목적으로 유엔 이름을 남용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지체 없이 바로 잡아야 한다”며 “유엔사는 유엔과 관련이 없는 미군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 서기관은 “미국은 한국전쟁의 책임을 북한에 전가하고, 1950년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옛 소련의 유엔 안보리 불참을 이용해 미군 산하 ‘통합사령부’ 설립을 꾀하고 이후 이를 교묘하게 ‘유엔사’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문제는 이 같은 불법적인 허위 단체가 유엔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및 아시아 전략을 뒷받침하기 때문에 유엔에 수치이며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에 반한다”고 했다.

그는 “‘유엔군’ 이름 뒤에 숨어 남한에 주둔하는 미군이 온갖 종류의 연례 군사훈련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하고 북남 화해와 협력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며 “최근 남북한에서 동시다발적인 미사일 발사가 있었고 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극초음속 발사체 시험발사가 있었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발사들만 국제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규탄받았다”고 했다.

미국이 호주에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이전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미국은 말로만 국제 핵 비확산 체제 강화를 주장하면서 핵확산 우두머리로서 본색과 이중태도를 드러냈다”고 했다.

앞서 김 대사는 지난달 27일에도 ‘특별정치와 탈식민 문제’를 다루는 유엔총회 제4위원회에서 한국에 주둔 중인 유엔군 사령부의 해체를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유엔사는 미국에 의해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행정과 예산 모든 면에서 유엔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며 “유엔사 존립에 대한 미국의 주장은 한국에 대한 점령을 합법·영속화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정치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1950년 불법으로 창설된 유엔사는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사령부와 다를 게 없고 유엔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유엔은 유엔사에 대한 지휘권도 없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2018년에도 유엔총회 제6위원회에서 유엔사를 ‘괴물’에 비유하며 해체를 주장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도 ‘유령’이라고 지칭하며 같은 주장을 했다. 당시에도 북한은 1975년 유엔총회 결의를 유엔사 해체의 주요 근거로 내세웠다. 실제로 당시 유엔총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결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동시에 남북대화 촉구 등 한국의 입장을 담은 별도의 결의도 동시에 채택해 한쪽의 일방적 조치만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18개 회원국들로 구성된 유엔사는 유사시에 유엔기 아래 병력과 장비를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당시 유엔군은 한국군 59만명 등 17개국 총 93만 2964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뒤 유엔사의 역할은 정전협정 준수 확인과 관련 임무로 축소됐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종전선언이 단순히 정치적, 상징적 제스처로 끝나지 않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구축된 유엔사의 존립 근거가 취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스콧 스나이던 미 외교협회 한미정책국장은 지난 3일 미국의소리(VO) 방송에 “종전선언을 제안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선언이 어떻게 기존 협정보다 평화유지에 더 효과적이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이라며 “종전선언과 관련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대체 협정이 평화를 유지하는 데 현재 협정(정전협정)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했다.

군사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VOA에 “북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미동맹의 분열”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한미동맹의 요소 중 하나인 유엔사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넷 연구원은 “북한은 (동맹을) 분열시킬 수 있는 기회마다 이를 놓치지 않았고, 유엔사 문제는 그 중에서도 쉬운 것으로 선택됐다”며 “특별히 종전선언에 대한 관심이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그런 주장이 더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유엔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유엔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주한미군 특수작전사령부 출신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유엔사 해체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최근 종전선언 관련 사안들이 언급되는 상황 속에서 북한은 유엔사를 비롯한 미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것을 큰 전략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북한보다 먼저 발언한 미국 대표는 특정 국가를 거론하지 않은 채 “미국은 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 헌장에 따라 부과한 표적 제재가 국제평화와 안보 유지를 위한 중요한 도구라는 점을 강조한다”며 “우리는 제재 이행 강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지지한다”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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