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가와현 소재 某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입원환자 3명 살해한 혐의 등
요코하마지방검찰청, 피고인 구보키 아유미에게 '사형' 구형했으나 "정상 참작"
지난 10월1일부터 배심원 참여하는 재판으로 진행...재판부, "갱생 여지 있다"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재판장의 선고를 들은 전직 간호사 구보키 아유미(久保木愛弓·34) 씨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구보키 씨의 사건을 심리한 요코하마지방법원 형사합의1부 가레이 가즈노리(家令和典·60) 부장판사가 “이해했습니까?”하고 물어봐도, 구보키 씨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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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지방재판소.(사진=일본 최고재판소)

이 사건의 주인공 구보키 씨는 지난 2018년 7월7일 살인 혐의로 체포돼, 그해 12월7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사건번호 橫濱地方裁判所 平成30ワ2033). 그가 가나가와(神奈川)현 소재 오구치(大口)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환자에게 투여하는 수액에 계면활성제의 일종인 염화벤잘코늄을 혼입하는 방법으로 동(同) 병원 입원 환자 오키쓰 도모에(興津朝江, 사망 당시 78세), 니시카와 소조(西川惣藏, 사망 당시 88세), 야마키 노부오(八卷信雄, 사망 당시 88세) 등 세 사람을 살해하는 등의 범행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1일 재판원재판(裁判員裁判,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에 상당)으로 열린 이 사건 1심 첫 공판은 9일 재판부가 피고인 구보키 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함으로써 끝이 났다.

피고인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했다. 하지만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 피고인은 범행 당시 발달장애의 일종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와 우울증을 앓고 있던 등, 심신미약 상태였음이 인정된다며, 양형(量刑) 부분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내려고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범행 당시 피고인이 자신이 범행한 사실이 발각되지 않도록 행동하며 자신의 행위가 범죄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피고인의 완전책임능력을 인정했다.

사건은 2016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자들의 수액 상태를 점검하던 간호사가 실수로 수액팩을 점검하다가 실수로 한 환자의 수액팩을 떨어뜨렸는데, 팩에서 흘러나온 수액에서 거품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병원이 해당 수액을 조사한 결과 수액에서는 염화벤잘코늄 성분이 검출됐다. 염화벤잘코늄은 계명활성제의 일종으로써, 주로 소독약의 성분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 성분이 폐로 흡입될 경우 지극히 높은 독성을 보이며, 사람을 단시간 내 사망에 이르게도 할 수 있는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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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면활성제의 일종인 염화벤잘코늄은 손세정제 등에도 많이 쓰이는 물질이다.(사진=연합뉴스)

요코하마 경찰이 처음 구보키 씨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임의 조사를 실시한 것은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2018년 6월말경이었다. 이때 구보키 씨는 자신이 입원 환자 약 20명에게 염화벤잘코늄이 혼입된 수액을 투여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고 한다.

범행 동기는 황당했다. “내 근무 시간에 환자가 죽으면 사망한 환자 가족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게 귀찮았다”는 것이었다. 구보키 씨는 또 “환자가 사망했을 때, 동료로부터 내 실수를 지적받은 사실이 있어, 그 이후로는 근무시간 외에 환자를 사망케 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됐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구보키 씨는 근무 교대 시간대에 문제의 염화벤잘코늄을 수액에 혼입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구보키 씨가 ‘환자의 사망과 관련해 그 가족에 사정을 설명하는 게 귀찮았다’는 취지로 범행 동기를 밝혔으나, 사실은 동료들과의 불화(不和)를 환자들에게 돌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병원은 평소 직원들 사이의 인간관계 등이 문제가 돼 직원들이 이직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고 한다.

재판부도 이같은 사정을 양형의 참작 사유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이 공판 중 유족들에게 “죽음으로써 죄를 갚고 싶다”고 말한 점 등을 들어 “갱생(更生)의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일본 현지에서는 살인 피해자가 친족 등이 아닌 사건에서 3인 이상을 살해하고도 사형이 선고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피해 유족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살인 피해자 야마키 씨의 장남 야마키 노부유키(八巻信行·61) 씨는 “너무나 제멋대로인 범행 동기로써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고도 사형에 처해지지 않은 게 말이 안 된다”며 “검찰이 항소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당초 사형을 구형(求刑)한 요코하마지방검찰청은 판결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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