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모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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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2010년 발생한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으로 양국이 1972년에 관계를 정상화한 이래 최악의 상태를 맞은 바 있다. 그 후 양국관계는 현재까지 여전히 갈등관계에 처해 있다. 중국은 2012년 이후 지금까지 센카쿠열도의 영해 내에 정부선박 및 군함을 수시로 진입시킴으로써 일본의 실효적 지배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공세적 외교를 구사하고 있는 중국을 적극 견제하고 있다. 금년 3월에 개최된 미일 외교·국방장관회의 공동선언에서 “기존 국제질서에서 벗어난 중국의 행동이 국제사회에 정치·경제·군사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으며, 이는 양국이 공동발표문에 처음으로 ‘중국’을 명시한 것이다. 또한, 일본은 쿼드(QUAD)에 참여하고 있고, 일본 방위차관은 금년 6월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공격은 ‘레드라인’이다. 대만을 민주주의 국가로서 보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 국민의 상호인식은 최악의 상태에 있다. 일본인의 90%가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고, 중국인의 66%는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2010년 이래 양국은 아베 일본 총리의 2018년 방중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제한적인 관계개선을 실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국 관계개선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양국관계의 악화가 이렇게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중일관계의 구조적 문제, 즉 중일간의 역사적인 경쟁관계, 미일동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양국 간에는 역사적인 경쟁의식이 존재하여 왔으며, 이러한 역사적인 경쟁의식이 현재에도 중국과 일본이 서로 상대방을 보는 시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광대한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이 상대적으로 약세에 있는 일본과 역사적인 경쟁관계가 있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불신과 증오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오랫동안 동아시아에서 자국 중심의 위계적인 중화질서를 통해 이웃국가들의 순응을 요구하여 왔다. 이에 대해, 일본은 섬이라는 지정학적 유리함을 이용하여 중화질서의 밖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여 왔으며, 중국에 대해 우월함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동등함을 요구했다. 쇼토쿠 태자는 607년 중국의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편지를 보낸다”라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 이는 중국과의 외교에 있어서 대등한 관계를 기대하는 명백한 의사 표명이었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침략과 피침략의 관계가 되었다. 일본이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중국의 시각에서 오랑캐 국가였던 일본이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를 와해시킴으로써 양국관계가 새로운 관계로 돌입하게 되었다. 일본은 1932년 중국의 동북지역을 침략하여 괴뢰정권인 만주국을 설립했고, 1937년부터 중국 본토를 본격적으로 침략한 후 1945년까지 중국의 국토를 유린했다. 이러한 근대의 중국과 일본의 역사는 양국 간에 불신과 증오의 유산을 남기게 되었다.

한편,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함에 따라, 이번에는 중국이 일본에 대해 그간의 수치를 청산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냉전에서 양국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적대적 진영에 각각 속해 있었다. 이에 따라 양국관계는 상당히 악화될 가능성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비교적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렇다면 양국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중국과 일본이 안보적으로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으며, 특히 경제적으로 후진국인 중국은 선진국인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일본에 대해 복수를 하는 대신 전략적으로 자제했다. 당시 마오쩌둥은 역사문제와 관련 일본에 대해 ‘이분법’을 채택하여, “중국침략의 책임은 당시의 일본정부에게 있고 일본 국민들에게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1972년 관계 정상화 시 일본에 대한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포기했다. 일본은 중국이 막대한 배상금을 포기한데 대해 감격했고 과거사에 대한 사죄의 표시로 중국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함에 따라, 양국 간에는 ‘원조하는 국가, 원조 받는 국가’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냉전시기에는 양국관계의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에 냉전이 끝나고 중국이 경제적으로 급속하게 부상함에 따라, 양국관계에서 역사적 경쟁관계가 전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첫째, 안보적으로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졌다. 그리고 중국은 부상하면서 동아시아에서의 현상변경을 시도하고 있고, 일본은 ‘보통국가’를 추구하면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둘째, 중국은 2010년에 GDP에서 일본을 추월하는 등 일본을 경제적으로 압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과거와 같이 일본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가 없다고 보고 전략적 자제를 중단하게 되었다. 즉, 중국이 ‘시간은 중국의 편’이라는 인식을 갖고 일본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최근 양국관계 악화의 주요한 원인이다.

최근 양국의 경쟁의식은 ‘부상하는 중국, 이것이 달갑지 않은 일본’의 구도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부터 양국 국력의 상대적 변화가 현저하게 나타나면서 경쟁심리가 더욱 부각되어 왔다. 최근 일본정부 내에서는 시진핑 정부가 특히 공세적이며 중국이 자신의 패권적인 중화제국의 지위를 회복하려 한다는 인식이 증대되고 있다. 중국정부는 일본을 재무장하기 위해 긴장을 일으키는 문제아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양국관계가 악순환을 보임에 따라, 양국관계 악화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과 일본은 역사적 경쟁의식에 기초하여 패권경쟁을 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중요 국가인 한국과의 관계를 각각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 시진핑 주석은 2014년 한국을 방문 시 서울대의 강연에서,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양국 군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해 전쟁터에 나갔다. 명나라 등자룡과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직했다”고 언급함으로써 양국이 연합하여 일본에 대항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중국은 한미일의 안보협력이 중국을 겨냥하는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한국을 설득하고 있다. 한편, 최근 한일관계가 소원한 상태이지만, 당초 일본정부는 외교청서와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 또는 “한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권위주의적 국가인 중국을 함께 견제하기를 희망해 왔다.

우리는 중일관계의 악화가 향후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중일관계의 추이를 주시하면서, 우리의 국가이익을 냉정하고 균형 있게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모두 우리의 국가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국가로서, 우리는 중국과 일본 모두에게서 건설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 한일관계는 역사문제로 인해 소원한 상태이지만 우리는 한일관계를 복원함으로써 한중관계와 한일관계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한일 간에는 중일관계와 같이 패권경쟁이라는 중대한 갈등요소가 없으며, 한국과 일본은 부상하는 중국이 평화적인 국가가 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고 북한의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공동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연상모 객원 칼럼니스트(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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