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블라인드 채용과 지방 할당제는 명백한 역차별" 반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지난 7월 경남 창원교도소 입구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 수감에 슬퍼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지난 7월 경남 창원교도소 입구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 수감에 슬퍼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블라인드 채용’이 화두로 떠오르며 입시와 채용에 걸친 일련의 선발 과정들에 대한 공정성 및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자신이 경희대학교 ‘분교’ (국제캠퍼스) 출신이지만, 블라인드 채용 덕에 KBS에 입사할 수 있었다고 발언한 사실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 의원이 이 같은 발언을 한 이유는 ‘블라인드 채용법’의 공동 발의를 민주당 의원에게 요청하기 위해서 였다.

지난 13일 고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은 전태일 열사의 51주기. 블라인드 채용법을 발의하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께 글을 썼다”고 적었다. 이어 “다들 선거로 바쁘실테지만 청년들이 출신학교를 지운 ‘블라인드 테스트’를 치를 수 있도록 ‘공공기관 공정채용법 제정안’을 만들었다. 저 또한 블라인드 테스트로 KBS에 입사한 경험이 있어 법제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는 당시 분교였던 경희대 수원캠퍼스를 졸업했지만 이 제도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제2, 제3의 고민정이 탄생하도록 동료 의원님들의 공동발의를 요청 드린다”고 했다.

고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언론 보도와 커뮤니티 게시글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지며 논란을 낳고 있다. 자신의 모교인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현 국제캠퍼스)에 대해 은연 중 평가절하 하는 뉘앙스가 있다는 점을 제쳐 두고서도, ‘블라인드 채용’이 과연 공정하고 유효한 규제인지에 대한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른 탓이다.

구직 관련 사진. (사진=연합뉴스)
구직 관련 사진. (사진=연합뉴스)

블라인드 채용, 과연 옳은가?...’지방 할당제’와의 병행도 문제로 꼽혀

2017년 6월 22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하반기부터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추진하라”는 지시로 시작된 블라인드 채용은 같은 해 8월부터 모든 공공기관 입사지원에 적용되며 본격화 됐다. 제도의 취지는 소위 ‘공정한 실력평가’다.

그렇게 도입된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의 핵심은 입사지원서와 면접에서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항목’을 삭제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항목에는 ▲출신지역 ▲가족관계 ▲신체조건(키, 체중, 사진을 포함한 용모 조건) ▲학력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도입 당시부터 문제시 되던 부분이 존재했다. ‘역차별’ 논란이다. 이 같은 논란이 대두된 핵심에는 ‘지역 할당제’의 병행이 있었다.

‘지역 할당제’는 소위 ‘서울 공화국’ 등의 용어로 대표되는 수도권 집중 개발 및 과밀화를 막고자 하는 취지로 시행된 제도다. 수도권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대한민국의 특성상, 서울 지역에 집중된 인프라의 혜택을 보지 못한 지방 출신 학생들이 겪을 수 있는 ‘지역 차별’과 인재 유출로 인한 ‘지방발전의 자율성 결여’를 막기 위해서 도입됐다.

문제는 이 같은 조치가 ‘똑같은 조건과 출발선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목표로 하는 블라인드 채용과 근본적으로 상충된다는 점이다. ‘지방 대학’ 출신이라는 조건을 갖춘 지원자만 합격할 수 있는 정원을 따로 빼놓는다면, 학벌이나 출신지역 등 모든 간판을 떼어 놓고 실력만으로 겨루자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블라인드 채용의 자체적인 성격으로 인해, 여성이나 유공자 및 장애인 할당제 등 모든 종류의 ‘기회의 평등’ 전형들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비판받게 되는 경향도 존재한다. ‘이중 규제’로 해당 전형에 포함되지 않는 수험생이나 구직자들의 불만은 커지는 반면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특혜’를 받았다는 따가운 시선을 사회에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지'라는 목소리가 대두되는 이유다.

지방 할당제 자체로도 문제되는 구석도 있다. 지방 할당제는 출신 대학의 ‘소재지’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즉 20년간 부산이나 광주 등지에서 살던 학생도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진학할 경우, 서울 인재로 분류되어 지역 인재 가점을 받거나 특별 전형에 지원할 수 없다.

모의평가를 치르는 수험생들. (사진=연합뉴스)
모의평가를 치르는 수험생들. (사진=연합뉴스)

반대로 서울 지역에서 나고 자라 지방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의 경우, 단순히 입시 성적이 상대적으로 낮아 지방에 위치한 대학으로 간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특별 전형이나 가점의 수혜자가 된다. 치열한 입시 경쟁 끝에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 서울권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에게서 ‘역차별’이라는 볼멘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 소재 H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A씨(26)는 이에 대해 “명백한 역차별”이라고 말한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재수까지 해서 서울권 대학교로 진학한 그는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며 똑똑한 친구들과 경쟁하고 내 역량을 강화하고 싶었다”며 “그 결과가 ‘서울 출신 대학교’라는 딱지로 돌아와 취업에서 오히려 불이익으로 작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소재 K대학교에 재학중인 B씨(27)도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B씨는 “나는 서울 출신이기는 하지만, 강북 지역에서 자라서 흔히 이야기하는 ‘좋은 학군’이나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며 “이런 식의 논리면 강북이나 금천 지역 등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울시 내 자치구도 우대해줘야 하는 것 아니느냐”고 현 정부의 일률적인 정책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 한국전력 본사를 출입하는 직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 한국전력 본사를 출입하는 직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인서울 대학교 선호’ 현상 타파 목적도 있으나…낮아지는 대학 경쟁력, 매마른 일자리 등 문제로 꼽혀

이러한 ‘지방 할당제’와 ‘블라인드 채용’ 양립에 대한 비판이 이러한 제도의 도입 취지 자체가 ‘인서울 대학교 선호’를 타파하기 위해서이므로 의미가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즉 서울 소재 대학교로 편중된 수험생 선호를 고루 분산시켜, 지방 대학으로의 인재 유입을 활성화 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강제적인 정책에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우선, 강압적인 정부 통제 경향으로 연구 활력이 떨어지게 됐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지난 3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2021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대한민국은 2009년 시작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거뒀다.

이는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국내 대학 중 한 곳도 아시아 10위권 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한국 대학의 77%는 지난해보다 순위가 내려간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의 한 대학 부총장은 “정부가 감사(監査)를 내세우며 대학 통제를 강화하는 경향이 심해져 대학 사회가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정부 지원이 잘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는 형식이라기보다 지역 안배 등 나눠주기식에 그치게 되어 교육 자체의 질적 저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실질적인 지방 정착과 지역 인재 창출을 위해 ‘지방 할당제’를 도입했지만 무위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이 출신 지역의 공기업 입사에 도전하려고 해도, ‘서울 소재’ 대학 출신인 경우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C대학교에 재학중인 C씨(28)는 “광주 출신인데, 한국전력공사 등 고향에서 가까운 공기업에 입사하려고 해도 타지역 출신 ‘전남·광주 지역 지방거점 국립대학교’ 학생에게 밀린다”며 “뭐 학생끼리 맞교환이라도 하자는 건지…이럴 거면 굳이 서울까지 와서 고생하며 학교 다닌 이유가 있을까 후회도 되고 그런다”고 밝혔다.

인구절벽. (사진=연합뉴스)
인구절벽. (사진=연합뉴스)

대학에 대한 정부 통제 줄어들어야…해묵은 ‘균형 발전론’도 폐기시켜야 할 때

사실 이러한 대학의 ‘위기론’과 공정한 선발론의 대두는 비단 입시 문제나 지역 균형 발전론에서 비화된 이야기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학생수 감소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감사원 ‘학령인구수 변화 예상’에 따르면 2017년 846만명에 이르는 학령인구수는 2040년 520만명을 거쳐 2067년에는 364만명으로 쪼그라든다. 50년 후에는 학령인구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는 것인데, 이 경우 많은 대학들은 폐교하게 될 것이다. 입학할 학생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폐교 현상은 현실화되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할 것’이라는 괴담까지 떠돌고 있다. MBC가 부경대 지방분권발전연구소에 의뢰해 신입생 충원율과 등록금 의존율 등 23개 변수를 적용해 분석한 결과, 전국 203곳의 4년제 종합대학 중 3분의 1 가량이 10년 안에 폐교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수도권 제외 시·도별 20대 순이동인구 현황. 
2020, 2021학년도 전국 시도별 4년제 대학 등록률 및 전문대학 등록률.

또 청년층 지역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일할 기회, 배울 기회, 누리면 살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청년층이 모이는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시행해 온 근시안적 나눠 먹기 정책의 결과는 이렇게 되돌아왔다.

위 분석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사실 자명하다.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인데 수도권 인프라를 지방으로 물리적으로 나눈다고 해서 없던 인구가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단순히 학생을 나누어 일률적으로 각 지방에 이전한다고 대학 경쟁력은 증가하지 않는다.

결국 현 정부식의 ‘지방 살리기’ 공정 정책 및 할당 정책은 ‘제 살 깎아 먹기’인 셈이다. 이런 식의 접근법으로는 그나마 유지하던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산업 및 대학 경쟁력마저 하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눠주기’식 대안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할 이유가 이 지점에서 나온다.

정재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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