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미국 신규 반도체공장 투자 계획이 조만간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약속했던 선물보따리 중의 하나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약 20조원)를 들여 미국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이나 미국 모두 일자리 창출이 정권의 최대 과제이다.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는 제조업에서 나온다.

이재용이 백악관과 미의회 고위인사 연쇄 면담하는 까닭은?...보조금 지급과 세제혜택 요구 중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금융자본주의에 치중해온 결과 제조업이 취약해졌다고 판단, 제조업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특히 4차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재료인 반도체, 그중에서도 시스템반도체 생산공장 건설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중간의 글로벌 경제패권 전쟁의 승부처가 반도체 생산능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21일 현재 방미중이다. 20조원짜리 파운드리 공장 투자 지역과 조건을 최종협의하기 위한 목적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방미 행보를 보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백악관과 의회 그리고 주정부 핵심인사들과의 면담 일정이 촘촘하게 잡혀 있다는 점이다. 20조원짜리 공장을 미국에 세우는 데 대한 ‘다각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측은 보조금 지급, 세제혜택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캐나다·미국 출장을 위해 14일 오전 서울김포비지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캐나다·미국 출장을 위해 14일 오전 서울김포비지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세계1위 기업이다. 미국에 설립하려는 공장은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공장이다. 이 시장의 세계 1위는 대만기업인 TSMC이고, 삼성전자가 2위이다.

삼성전자가 한국에서 보조금 요구했다면 ‘맹비난’ 받겠지만 미국은 달라

이 정도의 글로벌 기업이 보조금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자살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재벌기업이 공장을 세우면서 세제혜택과 보조금까지 요구하는 파렴치한 행각을 벌인다”는 식의 맹비난을 퍼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다르다. 일자리 창출을 하는 자는 중소기업이건 대기업이건 간에 우대를 받는다. 각종 특혜를 제공받는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예산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주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삼성전자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 후보지로 그동안 텍사스주 오스틴시와 테일러시, 애리조나주등이 테이블 위에 올랐다. 이중에서 한 때 오스틴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이미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이 가동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전혀 새로운 곳보다는 이미 물류 등 시스템이 갖춰진 곳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테일러시가 유력후보로 굳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테일러시가 세제감면 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 방안을 발빠르게 승인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반도체생산촉진법’은 62조원의 보조금 지원방안 담아...인텔은 삼성전자 제외하려고 맹렬하게 로비 중

또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을 방문해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에는 연방의회 핵심 의원들을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이 의회와 백악관 관계자들과의 연쇄회동을 갖는 가장 큰 목적은 분명하다. 20조원짜리 파운드리 공장에 보조금을 지급하라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다.

사실 삼성전자의 보조금 요구는 당연한 권리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초에 인텔에게 파운드리 산업에 대한 본격적 진출을 강하게 압박했다. 당초 인텔은 TSMC가 최강자로 군림하고 삼성전자가 치고 올라오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발을 빼려고 했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와 같은 강점에 집중하려는 경영전략을 펴려고 했다.

그러나 바이든의 생각은 달랐다. TSMC나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할 경우 미국경제가 독립성을 상실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바이든은 인텔이 포기하려던 파운드리 산업을 오히려 강화할 경우 대대적인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생산촉진법(CHIPS for America)’을 즉각 발의했다. 미국의 IT공룡들이 해외가 아닌 미국에 투자하도록 무려 520억 달러(약 62조원)의 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게 골자이다. 이 법안은 지난 6월 상원을 통과했다. 상원에서 통과된 법안은 삼성전자나 TSMC와 같은 해외기업들도 미국에 생산공장을 세우면 보조금 지원등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하원에서 이 같은 내용에 대한 반박이 거세지고 있어 최총 통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관측이다. 즉 삼성전자·TSMC 등 외국 기업은 제외하고 미국기업에게만 보조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주장은 인텔과 같은 미국 기업들이 로비를 통해 확산시키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재용은 문재인 정부 지원없이 인텔을 상대로 외로운 ‘보조금 전쟁’ 벌이는 중

인텔로서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TSMC나 삼성전자가 미국에 공장을 세운다고 보조금을 줄 경우, 가격 경쟁력 등에서 밀릴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이 18일 만난 연방하원의회 의원들은 ‘반도체생산촉진법’을 담당하는 의원들이다. 삼성전자도 보조금을 받도록 한 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켜 줄 것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미국에서 인텔을 필두로 한 미국기업들과의 보조금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인텔은 백악관과 미의회의 고위인사들을 움직여서 이익을 관철시키고 있는 데 비해, 문재인 정부가 이 전쟁에서 삼성전자를 돕고 있다는 소식은 한 줄도 보도된 바가 없다. 이재용 부회장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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