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도 없고, 법률 지식도 없다. ‘인권 의식’은 더더욱 없다. 그저 하루, 하루를, 무사·태평하게 보내기만을 바라는, 여느 공무원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내가 접한 경찰관들 태반이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의 보호망이 작동하지 않을 때 호출해 기대라고 만든 게 경찰이다. 그렇지만, 한낱 기자가 2~3개월을 걸려 달달 암기할 정도로 쉬운 ‘경찰관 직무집행법’도 모르는 게 경찰이다. 기대는 것도, 나보다 뭔가 나아야 기댈 수 있는 법이다. 대한민국 경찰의 수준이 우리가 기대는 것을 허락할 정도로 높은 것일까? 이런 수준의 경찰에 실탄이 든 권총을 쥐어주면, 그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그게 더 무섭다.

박순종 펜앤드마이크 기자
박순종 펜앤드마이크 기자

‘층간소음’ 갈등을 빚어오던 이웃집 남성이 이웃집 모녀(母女)를 상대로 흉기를 휘두르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피해자 모녀를 데리고 있다가 비명을 지르며 ‘나 살려라’ 하고 꽁무니를 뺀 인천 여경 사건이 온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자격 미달의 여성들을 경찰관으로 대거 채용하는 바람에 이같은 참사(慘事)가 벌어졌다며 문제의 원인을 ‘도망 간 여경’에게 돌리는 이들이 대다수인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화 이후 공권력이 약화된 결과’라며 ‘매뉴얼상 총기조차 제대로 쓸 수 없게 돼 있는 상황에서 성별을 불문하고 경찰관이 막상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목소리도—비록 소수이지만—나오고 있다.

공권력에 힘을 더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아주 납득하지 못할 만한 것은 안 되지만, 경찰과 관련해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일들을 돌이켜 볼 때, 과연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까 싶다. 이곳 펜앤드마이크에 입사한 이래, 주로 현장을 누비며 다니는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경찰들과 부딪힐 일이 많이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경찰이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 ‘전문성도 없고, 사명감도 없는 조직’—이게 내가 보는 ‘경찰’이다.

여기, 내 경험 하나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사건은 지난 3월18일 오후 2시 40분경 발생했다. 이날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날이었다. 외교부 청사 앞에서 벌어진 반미(反美) 단체들의 반미 시위를 보기 위해 이날 아침 일찍부터 광화문 거리에 나왔다. 하지만, 내가 시간대를 잘못 맞추는 바람에, 내가 외교부 앞에 도착했을 때 문제의 반미 단체는 이미 해산하고 난 후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청와대 분수대 광장으로 가면 좌·우익 단체가 시위 중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청와대 앞으로 가기로 했다. 과연 그곳에는 수많은 경찰 병력이 있었고, 분수대 앞 한편에서는 그 유명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관계자들을 비롯 좌익 단체 관계자들이 ‘반미’를 주제로 하는 시위를, 다른 한편에서는 우익 단체 관계자들이 ‘한미동맹 강화’의 필요성을 주제로 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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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관계자들이 지난 3월18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의 방한을 맞아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반미 시위를 하는 모습.(사진=박순종 기자)

어쨌든, 좌·우 양 성향 단체들의 주의·주장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고, 기사를 작성하러 회사로 복귀하려던 참이었다. 그곳에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블링컨·오스틴 두 장관이 통상의 경우처럼 효자로를 통해 청와대로 들어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나는 블링컨·오스틴을 태운 차량이 지나가든 말든 별 관심이 없었으므로, 분수대 광장을 뒤로하고 광화문 앞을 지나 동십자각 방면으로 향했다.—인사동에 있는 회사 사무실로 가기에는 그 길을 걷는 게 가장 빠르니까. 하지만 동십자각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그때까지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마주한 것은 경찰 근무복을 입은 다섯 명의 사내. 그 중 최선임으로 보이는 이가 내게 다가와 내 앞길을 막더니 다짜고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나를 언제 봤다고, 인사도 안 하고 질문을 하나?’

사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르면 불심검문 대상자는 경찰관의 불심검문에 응할 의무가 없다. 또, 불심검문을 시행하는 경찰관은 소속과 이름 등 자신의 신원을 구두로 밝히면서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불심검문 대상자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뿐 아니라 불심검문 대상자에게 질문을 할 경우 그 질문의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등, 적법한 불심검문이 갖춰야 할 요건은 법률상 엄격히 정해져 있다.─어떤 공무집행이 적법한 것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우선 절차상 위법성이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 경찰관은 내 앞길을 막아서고는 그 어떤 절차도 지키지 않은 채 내게 “어디로 가느냐?”며 대뜸 질문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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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용 방한 파카를 입은 사내 5명이 기자의 앞을 가로막으며 아무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진로를 방해했다.(사진=박순종 기자)

불심검문 자체가 ‘임의수사’에 상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응할 의무가 없는 고로, 나는 이들의 요구를 물리치며, 내 갈 길을 가려 했다. 하지만 이들 다섯 명의 제복 입은 사내들은 내 앞길을 지속적으로 막아서면서,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 내게, 이번엔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마스크 착용 의무 없다! 강요하지 마!”

“마스크 착용 안 하면 과태료 물어요.”

“비키라니까!”

해당 경찰관은 내게 ‘감염병 예방법’을 들먹이며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며 또 다시 내 앞길을 가로막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

“어이구, 이거 왜 이래?”

다른 경찰관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내가 보기에 경찰관들은 기본적으로 현행 법률이 어떤 꼴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선 조금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고 나선 그 경찰관도 언급한 ‘감염병 예방법’ 제49조 1항에는 마스크 착용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한 방역 지침과 관련한 내용은 광역자치단체장 등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린다’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다. 설사 ‘마스크 미착용’이 과태료 부과 대상 행위라고 하더라도 경찰 공무원에게는 단속 권한이 없다.

더구나 당시 유효했던 서울특별시 행정명령 상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상황에서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할 의무도 없었다. 과태료 부과 대상도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그들은 끝내 나를 몸통으로 밀어내며 내 진로를 방해했다. 그렇게 티격태격하기를 20분, 동십자각 앞으로 블링컨·오스틴 두 장관을 태운 차량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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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방한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탑승한 차량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사진=박순종 기자)

나중에 들어보니, 이들은 “미국 국무부·국방부 장관이 곧 이 길로 지나갈 예정이라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며,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취지로 내게 해명했다. 그러면, 일개 시민의 신체의 자유이며, 거주 이전의 자유이며, 양심의 자유이며, 그밖의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제(諸) 권리가 침해당했어도 괜찮았다는 말인가? 솔직히 말하면,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불심검문을 시행하는 방법도 몰랐던 것 아닌가?

대한민국 경찰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다.

매너도 없고, 법률 지식도 없다. ‘인권 의식’은 더더욱 없다. 그저 하루, 하루를, 무사·태평하게 보내기만을 바라는, 여느 공무원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내가 접한 경찰관들 태반이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의 통치 공백이 발생할 때 호출해 기대라고 만든 게 경찰이다. 그렇지만, 한낱 기자가 2~3개월을 걸려 달달 암기할 정도로 쉬운 ‘경찰관 직무집행법’도 모르는 게 경찰이다. 기대는 것도, 나보다 뭔가 나아야 기댈 수 있는 법이다.

대한민국 경찰의 수준이 우리가 기대는 것을 허락할 정도로 높은 것일까?

이런 수준의 경찰에 실탄이 든 권총을 쥐어주면, 그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그게 더 무섭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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