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1월 23일 백담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경내를 둘러보며 스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별세한 23일은 33년전인 1988년 11월23일 그가 연희동 자택에서 재임기간 중의 실책과 잘못 및 비리에 대해 사과하고 부인 이순자 씨와 강원도 인제에 있는 유서깊은 고찰, 백담사로 향했던 날이다.  백담사는 일제하 독립운동가였던 시인 만해 한용운이 오래 머물렀던 절로 유명하다.

전 전 대통령은 소설가 이병주씨가 써 주었다는 대국민사과문을 낭독하면서 쓰고 남았다는 정치자금 139억원과 개인 자산 23억원 등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다고 밝혔다.

이날 아침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 앞 골목길은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과 취재차량으로 발 디딜 틈 조차 없었다. 당초 전 전 대통령은 대국민사과를 한뒤 서울을 떠날 것임을 예고했지만 행선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이 대문을 열고 나와 차량에 오르자 대기중이던 수십대의 취재차량이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뒤를 따랐다.

전 전 대통령이 탄 희색 그랜저 승용차는 연희동 골목을 빠져나와 합정동 양화대교 방향으로 질주했다. 한강을 건너 김포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전 전 대통령이 탄 승용차는 급 브레이크를 밟으며 중앙선을 너머 반대방향으로 질주했다. 갑작스런 유턴에 뒤를 따르던 취재차량들은 겹겹이 추돌사고를 내면서 멈춰섰다.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량은 사라졌다.

당시 서울에서 발간되던 중앙 일간지 중 석간신문은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경향신문 그리고 창간된지 얼마 안되는 국민일보 등 네곳이었다. 점심 무렵 거리에 배포된 석간신문들은 행선지를 몰랐기에 “전 전 대통령 대국민사과, 연희동 출발”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그런데 동아일보만이 “전두환 전대통령 백담사 도착”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 ‘3허’ 중 허문도 전 문광부 차관이 불교계와 그의 유배지로 백담사행을 협의해왔는데, 동아일보가 이를 알아낸 것이었다.

당시 한 조간신문의 초년병 기자로 전 전대통령의 차량을 놓치고 서울시내를 배회하던 기자는 부랴부랴 사진부 기자와 함께 백담사로 향했다. 오후 늦게 백담사에 도착했을 때, 수백명의 전경이 절을 에워사고 취재진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0년 12월30일까지, 2년1개월 동안 백담사에 머무르며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잊혀진 사람’이 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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