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중국 유명 테니스 선수 펑솨이는 장가오리 전 국무원 부총리에 대한 '미투'를 폭로한 후 돌연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후 의혹이 증폭되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풍설이 나왔지만, 여전히 전 세계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펑솨이를 찾는 테니스계 인사들의 소셜 미디어 사진. [소셜 미디어 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펑솨이를 찾는 테니스계 인사들의 소셜 미디어 사진. [소셜 미디어 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우여곡절 끝에 펑솨이의 신변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사한 사건의 경우 ‘공식석상에서의 실종’ 기간이 훨씬 더 길었던 점에 비하면,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뭘까. 또 펑솨이의 신변은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마윈과 판빙빙도 감금설 이후 현업에 복귀 못해

그간 시진핑 국가주석이나 공산당의 눈밖에 난 연예인이나 기업인들이 돌연 사라지는 일은 빈번히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판빙빙, 자오웨이, 정솽, 마윈 등이 있다. 판빙빙이나 자오웨이 등은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추거나 활동이 미미한 상태이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도 지난해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 금융서밋'에서 중국 금융당국의 후진적인 규제 관행을 공식 석상에서 비판한 후, 돌연 자취를 감췄다. 이후 3개월간 행방이 묘연해 감금설이 나돌았지만, 1년만인 지난 10월 홍콩에서 사업 동료 여러명과 만나 식사 자리를 함께 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감금설은 해소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경영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번 폭로 당사자인 펑솨이에 대해서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 당국이 추진하는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두 달여 앞둔 시점에 폭로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펑솨이가 성폭행 폭로했던 장가오리는 서열 7위권인 최고위급이자 시진핑 측근

펑솨이의 폭로 대상인 장가오리는 최근 몇 년 새 중국에서 발생한 성폭행 폭로 대상 중 직위가 가장 높은 인물이다. 2012~2017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인사로, 중국 정치 서열 7위 안에 들었던 최고위급 정치인이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14억 중국을 지배하는 공산당 최고 그룹으로, 시진핑 국가 주석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구성된다. 특히 장가오리는 시진핑 주석의 전반부 5주년을 함께 했다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펑솨이의 존재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펑솨이는 일반 연예인과는 급이 다른 스포츠계의 유명 스타로, 중국 공산당으로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이다. 펑솨이는 동양인이 두각을 나타내기 힘든 테니스 분야에서 2014년 여자 복식 세계 랭킹 1위를 찍었고, 2013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 여자 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단식 우승을 비롯해 2개의 단식 타이틀과 22개의 복식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국제적 인지도가 높은 글로벌 스타이기 때문에, 펑솨이의 주장과 안전에 전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팡솨이는 국제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은 글로벌 스포츠 스타이기 때문에, 펑솨이의 주장과 안전에 전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펑솨이는 국제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은 글로벌 스포츠 스타이기 때문에, 펑솨이의 주장과 안전에 전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펑솨이는 지난 2일 본인 소셜미디어에 장가오리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당시 “절대 동의하지 않는 관계가 이뤄졌다”며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되더라도, 자멸을 재촉하는 길일지라도 진실을 알리겠다”고 밝혔다. 펑솨이가 남긴 글에는 성폭행 사실 외에도 둘의 첫 만남부터 바둑과 노래를 함께 불렀다는 내용 등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힘든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감금설 2주 만에 관영매체에 나타난 펑솨이, “성폭행 보도 사실 아냐”

글은 20여분 만에 삭제됐지만, 캡처본이 돌면서 순식간에 미국 언론을 비롯해 전 세계로 퍼졌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관련 뉴스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펑솨이의 소셜미디어 계정이 사라졌고, 인터넷 검색창에서 장가오리와 펑솨이라는 단어의 검색이 금지됐다. 곧 펑솨이가 중국 당국에 의해 감금됐다는 추측이 널리 퍼졌다.

여기까지의 전개로 볼 때는 판빙빙이나 자오웨이 등 여자 연예인들이 사라진 것과 비슷한 일이 진행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런데 2주 만에 의외의 일이 발생했다. 지난 17일 펑솨이가 국제테니스협회(WTA) 회장에게 보낸 이메일 문건이 중국 관영매체를 통해 보도된 것이다.

그는 이메일을 통해 “성폭행에 대한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나는 무사하고, 사생활 보호를 위해 보도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중국 관영 매체 기자들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펑솨이의 일상 사진 등이 보도됐다.

시진핑의 역점 사업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기류에 화들짝 놀란 듯

이런 이례적인 전개에는 시진핑의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불과 70여일 남았다는 점이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펑솨이의 이번 폭로가 ‘올림픽 보이콧’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정부는 이번 올림픽을 2년여의 코로나19 대응에서 승리한 중국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기회로 여기며 사활을 걸고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권 문제 등을 이유로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자, 국제 사회에서도 동조 움직임이 일었다.

영국 외교부는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에 펑솨이의 소재와 안전을 입증하라고 촉구했고, 상대적으로 잠잠하던 국제올림픽위원회의 딕 파운드 위원도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되면 내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IOC 위원장과 화상 통화도 했지만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는 장담 못해?

지난 21일 펑솨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와 인터넷 화상 통화를 했다. 둘은 이 통화에서 내년 올림픽 때 만나 함께 식사를 하자는 약속까지 했다. 펑솨이가 국제올림픽 위원회를 상대로 본인 안전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증명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21일 펑솨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와 인터넷 화상 통화를 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지난 21일 펑솨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와 인터넷 화상 통화를 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물론 이 과정에 중국 정부의 요청이나 강요, 혹은 위협 등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많은 운동선수들이 그의 안전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세계 언론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겨울올림픽에 대한 보이콧 움직임이 일었고, 중국 정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성공리에 끝내고 싶은 중국 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적어도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는 펑솨이의 안전이 보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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