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별세하면서, ‘조문’ 여부를 놓고 ‘죽음 앞에 평등해 질 수 있느냐’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과거 행적을 차치하지 않더라도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해주는 편이 옳다는 의견과 오히려 고인이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더 비판 받아 마땅하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탓이다.

24일 국회 정문 앞에 마련된 본·부·장 비리신고센터를 방문해 발언하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뉴스1)
24일 국회 정문 앞에 마련된 본·부·장 비리신고센터를 방문해 발언하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뉴스1)

與 ‘죽음이 면죄부가 될 수 없어’…송영길 대표 “민사적 소송과 역사적 단죄, 진상규명은 계속 될 것”


먼저 여권 및 정부에서는 전 전 대통령 별세에 대해 일제히 ‘죽음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며 ‘사과 없이 떠나간 것에 대해 오히려 안타깝다’는 견해를 보였다. 전 전 대통령의 과(過)가 명백했고 사죄 없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국가장, 조화, 조문 등)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

청와대는 23일 박경미 대변인의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고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청와대 차원의 조화와 조문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같은 날 “전두환씨는 명백하게 확인된 것처럼 내란 학살 사건 주범”이라며 “이 중대범죄 행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참으로 아쉽게 생각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에 대해 민주당은 조화·조문·국가장 모두 불가하다”며 “생물학적 수명이 다해 형법적 공소시효는 종료됐지만, 민사적 소송과 역사적 단죄와 진상규명은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송 대표는 또 “전두환 사망에 대하여 민주당은 조화, 조문, 국가장 모두 불가입니다”라고 못박으며 ‘내부 단속’을 실시하기도 했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개인형 이동수단 활성화와 국민 안전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당 대표. (사진=국회사진기자단)
22일 국회에서 열린 개인형 이동수단 활성화와 국민 안전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 참석한 이준석 국민의당 대표.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조문 번복’ · 이준석 “조화만 보내도록 하겠다” · 홍준표 “전두환 조문 가는게 도리?”


야권에서는 다양한 입장이 나타났다.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는 발언으로 ‘전두환 옹호’ 논란에 섰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23일 오전 “아직 언제 갈지는 모르겠는데, 준비 일정을 좀 봐가지고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가야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윤 후보는 이양수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을 통해 같은 날 오후 2시경 “전직 대통령 조문과 관련하여 윤석열 후보는 조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면서 조문에 긍정적이었던 입장을 번복한 상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상가에 따로 조문할 계획이 없다”며 “당을 대표해서 조화는 보내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당내 구성원들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조문 여부를 결정하셔도 된다”고 덧붙이며 조문 여부에 대한 당 차원의 내부 단속은 존재하지 않음을 밝혔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조문 여부에 대해 지지자들에게 직접 물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홍 의원은 23일 온라인 커뮤니티 형식의 청년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 내 홍문청답 코너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저의 제2고향인 합천 옆동네 분”이라며 “정치적 이유를 떠나서 조문을 가는 것이 도리라고 보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다수 청년 및 지지자들이 “조문을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입을 모으자, 홍 의원은 24일 공지를 통해 “조문을 갈려고 했는데 절대적으로 반대의견이 많네요. 그 의견을 받아 들이겠습니다”라는 입장을 표명하며 조문 계획을 취소했음을 밝혔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장례식. (사진=연합뉴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장례식. (사진=연합뉴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葬)은 되고, 전두환은 안되느냐” vs “죄의 경중(輕重)이 달라, 성추행과 국민 학살이 같나?”


그간 정치권에서는 논란에 휩싸였거나 기소 당했던 인물이 별세한 경우, 고인에 대한 추모 분위기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우선 장례를 잘 치루어 보내드리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 박원순 전 서울특별시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별세한 후, 장례식을 서울시 기관장(葬)으로 치러준 일이다.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지만,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도리에 걸맞다는 공감대가 여권에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당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장례위원회’는 성추행 피해 여성 측의 기자회견 중단을 요구하면서 “오늘 故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하는 중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지닌 무거운 짐마저 온몸으로 안고 떠난 그입니다”라고 호소했다.

또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같은 시기 박 전 시장의 서울시 기관장 반대에 대해 “정치적 쟁점화를 위한 의도”라며 “관련 규정 등을 상세하게 검토해서 내린 결정”이라 강변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특히 박 전 시장 유족 측 법률대리인 정철승 변호사가 노태우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 결정에 분노를 표하며 “전두환도 12·12 쿠데타와 5·18 민주화운동 등과 관련해 과오가 있지만 경제발전, 대통령 직선제 결정, 88올림픽 유치 등으로 공헌했다는 이유로 국가장을 하게 될 것”이라 밝히면서 ‘내로남불’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다만 양자간 죄의 경중이 다르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전 전 대통령은 내란죄 등의 혐의를 인정 받아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데 반해, 박 전 시장은 수사 받던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검사가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다는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에 따라 불기소 처분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내란죄와 성추행 혐의의 경중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 선상에 놓고 본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마련된 빈소. (사진=뉴스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마련된 빈소. (사진=뉴스엔)

DJ는 되고 전두환은 안되는 국립묘지 안장 문제


정부가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같은 조치가 김대중 전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과 비교되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냐’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두 전임 대통령 모두 유죄 판결을 받고 사면되었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내란죄 등의 혐의를 인정 받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전 전 대통령은 당시 재임중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던 김대중 당선자 간 합의에 의해 1997년 12월 특별사면 됐다. 김 전 대통령 역시 대통령 당선 전인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을 선고 받은 후 1987년 사면 받은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이 2009년 서거할 당시에 법무부는 사면이나 복권시에 국립묘지 안장 자격도 회복시켜주는 것으로 판단했는데, 쟁점은 이 지점에서 나온다. 순수하게 법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번 정부의 안장 불가 방침은 사면 복권된 전직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 여부에 대해 정부가 법리적으로 같은 상황에서 상반된 해석을 내린 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다만 국민 감정 및 수감 사실에 대한 맥락을 염두에 두고 보았을 때 이는 당연한 처사라는 의견이 가장 지지를 받고 있다. 군사 쿠데타, 살인 등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 전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수감된 김 전 대통령을 기계적으로 같은 틀에서 보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전 전 대통령 장례는 가족장, 화장 할 예정”


한편, 전 전 대통령 유족 측은 전 전 대통령이 생전에 ‘국립 묘지에는 안 가겠다’고 말한 사실을 밝혔다. 장지(葬地)에 대해서 전 전 대통령은 생전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5일장을 치른 후 오는 27일 발인할 예정이다. 장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

 

정재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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