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영역으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李...'정규직의 과다보상'은 '비정규직의 과소보장' 초래
"공공부문에선 이미 노동이사제 도입, 문제없다" 자신하지만...민간부문에선 '시장의 규율' 적용받아
독일의 노동이사제는 그 나라의 특수성 반영돼있어...'귀족노조' 있는 한국의 현실엔 맞지 않아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4일 ‘노동이사제’를 민간 기업까지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방문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인 노동이사제가 이행되지 못한 채 임기가 끝나간다”는 지적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공공분야에서 준공공기관으로 확대하고 민간 영역으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기도 산하기관은 다 해놓았다.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느냐”라며 “노동자 대표에게 이사 자격을 부여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것이 뭐가 문제냐”라고 일갈했다.

그는 특유의 ‘사이다 발언’을 쏟아냈지만 ‘단편적이고 편의적인 그리고 미숙한 정책사고’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노동이사제가 채택되지 않은 것이 한국 경제를 옥조이는 가장 큰 족쇄인 가. 그렇지 않다. 그의 발언은 ‘2017년 5월 12일’의 기억을 되살린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문대통령의 첫 행선지는 같은 날 ‘인천국제공항공사’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공공부분의 비정규직을 임기 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 하겠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큰 인기를 끌었지만 곧 공공부문 정규직 취직을 꿈꾸는 취업준비생의 반발에 부딪쳤다. 문대통령은 역설적으로 그 발언 때문에 임기 내내 ‘공정성 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비정규직 해소(구제)라는 ‘결과적 정의’를 위해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는 ‘인천공항공사 방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 ‘노동조합과 노동이사제’ 병립은 노동의 대표성 과다 표출

이재명의 사이다 발언대로라면, “사용자도 경영진 임원 한사람을 노동조합에 간부로 심어 놓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게 하면” 된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재명의 ‘노동이사제와 노동조합’ 병립은 조직구성 논리상 과다식별(옥상옥)이다.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노동이사제는 노동의 ‘대표성’을 과다 표출한 것이다.

이재명의 노동이사제는 KAI 방문 현장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2017년 2월 SBS가 주관한 ‘대선주자 국민면접’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상균 위원장을 사면한 후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하겠다“고 발언했다. 당해 발언 당시 그는 복역 중이었다. 한상균이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아 복역 중인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재명의 발언은 민노총 그리고 더 나아가 노동조합에 구애(love call)한 것이다. 그가 염두에 준 것은 민노총 ‘팬덤(fandom) 정치’였던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비정규직 고용과 근로조건, 2017” 보고서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의 고용특성을 “정규직 여부, 대기업 여부, 노조조직 여부”로 구분할 때. “정규직이면서 대기업에 속하고 노조를 조직한 비율”은, 즉 3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한 비율은 7.6%에 지나지 않는다. 이 7.6%가 소위 ‘귀족노조’인 것이다. 반면 “비정규직이면서 중소기업에 속하고 노조마저 조직하지 못한 소외된 근로자 비중”은 27%나 된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정책적 관심은 ‘7.6% 귀족노조’가 아닌 ‘소외된 27%’에 두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재명의 관심은 7.6%의 귀족노조이다. 그 이유는 간명하다 조직된 7.6%가 정치적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 실상을 다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직시하지 않는 명제’가 있다. 그것은 “정규직의 과다보상이 비정규직의 과소보상을 가져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노총은 ‘비정규직 철폐’라는 상투적인 구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엄정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O ‘노동이사제’ 불비(不備)로 기업의 경쟁력이 낮아 졌는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노동이사제 도입인가? 그에 답하려면 ‘기업은 왜 존재하는 가’를 성찰해야 한다. 밀튼 프리드만(M. Friedman)은 경쟁력 있는 기업의 조건으로 ‘계속기업’(going concern)을 제시하고 있다. 계속기업은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주주에게 배당하고, 국가에 세금 내고, 협력업체에 납품대금을 지불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경쟁력을 갖춰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이 계속기업인 것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기업은 평균적으로 계속기업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가? 전혀 아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자보상배율이 100% 미만인 기업의 비중이 2020년 기준으로 34.5%이다. 이지보상배율이 100%가 안 된다는 것은 수익으로 이자마저 지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자보상배율이 100% 미만이면 그 기업은 빚을 줄이지 못한다. 코로나 펜데믹 이전인 2019년으로 돌아가더라도 이자보상배율이 100% 이하인 기업은 31%나 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자보상배율이 0%미만인 기업비율이 2019년 기준으로 21.1%라는 것이다. 펜데믹 이전에도 20%가 넘는 기업이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법인세수 부담 집중도를 보자. 2019년 총(總)법인세수는 72조2천억원이다. 그중 100대 기업이 부담한 법인세는 25조9천억원으로 전체 법인세수의 36%이다. 매출 5천억원을 초과하는 대기업(733개, 전체 0.2%)의 법인세 비중은 59.9%이다. 매출 1000억원 초과 기업으로 기준을 내리면 전체 기업의 0.9%가 전체 법인세의 74.2%를 부담하고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전체 기업의 99.1%가 전체 법인세수의 25.8% 밖에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기업이 법인세를 한 푼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개의 사실을 종합하면, “30% 넘는 기업이 이자에도 못 미치는 수익을 내고 있으며 대다수의 기업은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을 정도로 법인세를 내는 기업만 법인세를 낸다”는 것이다. 그만큼 경쟁력을 갖춘 ‘계속기업’이 적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 가? 경쟁력을 갖춘 계속기업이 많아지도록 규제를 완화해 기업과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는 주장은 ‘무엇이 급한 것이지 전혀 우선순위를 망각‘한 것이다.

2017년 ‘OECD 기업지배구조 팩트북(fact book)’에 따르면 OECD 35개국과 비회권국 11개을 합한 46개국에 대해 노동이사제 도입 여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국가는 독일, 오스트리아, 데만크 스웨덴 등 17개국이며, 노동이사를 도입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 미국, 영국, 러시아 등 29개국이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국가는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가 분리된 이중이사회 구조’를 갖고 있으며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에만 참여해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하지 않은 국가는 경영이사회만으로 일원화된 구조를 갖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게 되면 ‘일원화된 이사회구조 하에서 노동이사를 두는 변칙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O 아재명 주장대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가?

이재명 주장대로 ‘노동이사가 경영이사회에 참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가? 노동이사가 도입되면 그렇지 않아도 노사 간에 기울어진 운동장은 완전히 뒤집어질 것이다. 뒤집어질 정도로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경기를 한다면 유료 관중이 들어올 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노동이사제 도입은 경영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 가. 자본조달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노동이사가 경영이사회의 일원이 되는 순간, 기업 전체 보다 노동자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게 될 것이므로 외부에서 자본을 조달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다. 노동이사를 채택한 기업의 주가는 어떤 영향을 받을 가. 자본조달에 애로를 겪는다면 그리고 주주 전체 보다 노동자의 이익을 먼저 고려한다면 그 기업의 주가는 올라갈 수 없을 것이다. 신규채용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가. 자본조달에 애로를 겪고 주가 상승이 여의치 못한 기업에서 신규인력을 채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재명은 경기도 공공부문에서 이미 노동이사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민간부문으로의 확대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노동이사제와 민간기업의 노동이사제의 층위가 같을 수 없다. 민간 기업은 자본시장과 상품시장의 규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는 노동이사제로 멀쩡한 민간 기업을 망하게 할 일이 있는 가.

끝으로 유의할 것은, 노동이사제 도입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독일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독일은 패전국이다. 독일 제조업의 기반을 이루는 기업들은 모두 ‘전범(戰犯) 기업’으로 승전국의 처분에 그 운명을 맡겨야 한다. 독일 입장에서는 자국전범기업의 보호를 위해서는 일종의 ‘보호막’이 필요했고, 노동자 대표가 포함된 2중구조의 이사회가 그 방책으로 고안된 것이다.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노동이사제를 고집할 일은 아니다. 근로자의 이익을 두텁게 할 것으로 기대되는 노동이사제는 사실 노동자에게 쪽박을 안길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주장한다면 그의 경제지력을 의심해야 한다. 귀족노조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부정적 인식을 감안할 때, 이재명의 정치 감각에는 문제가 많아 보인다. 철지난 좌파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의 ‘중도로의 외연확대’는 요원해 보인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