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의 남부전략 (Nixon's Southern Strategy) [유태선 시민기자]
닉슨의 남부전략 (Nixon's Southern Strategy) [유태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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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여권의 대선 전략은 기본적으로 강세 지역의 절대적 우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상대적 열세에 놓인 지역에 연고가 있는 후보를 내세워 전국적으로 다수 득표를 얻으려는 것이다. 즉, 전라도 지역에서 계속 90% 이상의 득표율을 유지하면서 경상도에서 태어난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여 40% 정도의 득표를 얻어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계산이다.

이에 반하여 현 야권은 인구가 많은 경상도 출신의 후보들은 대선에서 승리했던 경우가 많은 반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충청도 출신의 이회창 후보가 두 번이나 대선에 패배했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경상도 인구가 전라도 인구보다 많기 때문에 굳이 그런 전략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인지 여권의 전략을 벤치마킹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현 여권의 대선 전략은 미국 민주당이 1868년부터 1960년까지 지속적으로 사용해 왔던 대선 승리 방정식을 배워 온 것에 불과하다.

미국 남부 주민들의 동의 없이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키려 했고 이에 대한 남부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남북전쟁 이후 미국 공화당의 연줄을 타고 뉴욕, 보스턴 등지에서 내려와서 각종 사기를 통하여 남부인들의 재산을 강탈했던 사기꾼들 (Carpet Beggars), 남북전쟁이 끝나자 민주당원에서 공화당원으로 전향하여 북부인들의 하수인으로 각종 비리에 관여했던 일부 남부인들 (Scalawags)에 대한 반감은 남부 전역을 민주당의 텃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쟁 이후 미국 민주당은 남부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열세였지만 뉴욕 주지사 그로버 클리블랜드, 뉴저지 주지사 우드로 윌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 일부 북동부 출신 후보들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을 제압하고 당선된다.

이제 민주당원들은 남부 전역을 장악한 상황에서 북부 지역의 카톨릭 신자, 노동자 단체, 여성계 등의 지지를 받는 북동부 출신의 주류계층에 속하는 인물을 내세우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이었던 아서 슐러징거 (Arthur Schlesinger: 1917년 - 2007년)의 회고에 따르면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1960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린든 존슨 진영이 "카톨릭 신자인 케네디 후보의 득표력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자 격분한 케네디 진영에서 "남북 전쟁 이후 남부 출신 대선 후보가 본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반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1968년 리처드 닉슨부터 1988년 조지 부시까지 공화당은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남부 지역을 석권하면서 여섯 번의 대선 중 다섯 번을 승리하게 된다.

해당 기간 동안 유일하게 민주당이 승리했던 1976년 대통령 선거의 승자, 지미 카터는 남부 조지아주 출신이었고 1992년 대선에서 장기간에 걸친 공화당 대통령들의 시대를 끝냈던 빌 클린턴과 그의 러닝 메이트 앨 고어는 모두 남부인 아칸소주와 테네시주 출신이었다.

이렇게 남부 출신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속설은 깨져 버렸고 미국 대선의 지역 구도는 "민주당 후보가 과연 북부의 주요 지역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민주당 후보가 남부에서 어느 정도 득표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로 180도 변화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렇다면 공화당은 어떻게 과거 민주당의 아성이었던 남부 지역을 1968년 이후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바꾸어 놓은 것일까?

이러한 변화는 1964년 공화당 대선 후보 배리 골드워터가 본선에서 미국 남부 백인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이 그 시발점이다. 미국 서부 애리조나주 출신의 골드워터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신념 하에 "아이비리그 출신 미국 동해안 엘리트들의 탁상 행정이 미국을 망치고 있고 연방 정부의 지방 정부에 대한 개입은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서부의 공화당원들은 연방정부가 개입했을 때 자신들의 지역 사업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이유로 골드워터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던 반면 미국 남부의 민주당원들은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가 흑인과 백인이 모든 영역에서 함께 어울리도록 강제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그를 지지했다.

이에 대항하여 민주당 대선 후보 존슨은 "공화당 후보 골드워터는 복지 예산은 줄이고 군비는 강화하려는 전쟁광이며 연방정부가 추진하는 인종차별 철폐 조치에 반대하는 백인우월주의자"라고 공격하면서 그 해 대선에서 손쉽게 승리한다.

1960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케네디에게 석패했던 닉슨은 1968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재출마하면서 말없는 다수 (Silent Majority)를 위한 법질서의 회복 (Restoration of Law and Order)과 민간 경제에 대한 개입을 자제하는 작은 정부 (Small Government)의 실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다.

공화당은 1964년 대선에서 골드워터가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려서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고민하던 중 유색인종단체뿐 아니라 여성단체, 동성애자들이 모두 민주당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한다.

당시 미국 남부 백인의 주류는 개신교를 믿는 영국계 미국인들로 가족의 가치 (Family Value)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연방정부의 간섭은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반면 여성단체들의 가정주부를 경시하는 태도와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 금지는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기 때문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64년 대선에서 서부의 공화당원들과 남부의 민주당원들이 작은 정부의 구호 하에 연대하여 골드워터에게 투표하는 것을 목격했던 닉슨은 1968년 대선에서 페미니즘과 동성애에 대한 남부인들의 반감을 공화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전환시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는 미국의 정치 지형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968년을 시작으로 남부 백인들은 공화당이 민주당과 달리 흑인, 여성, 동성애자 권익 증대를 위한 투쟁에 협력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 차리고 각자 다른 이유로 지난 100년 동안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던 민주당에서 이탈하여 공화당에 투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민주당 측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케네디와 존슨이 제출한 1964년 민권법안 (Civil Rights Act)의 의회 통과에 반발하던 남부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닉슨의 공화당을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남부가 민주당의 텃밭에서 공화당 우세지역으로 변해 버렸다"고 해석했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 했다.

현재 많은 언론인들이 2022년 한국 대선의 여러 가지 쟁점들에 대하여 논평하지만 가장 명확한 사실 - 경상도에서 여권 후보가 승리하거나 전라도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한다면 다른 모든 사안들에 관계없이 대선의 승패가 결정된다 - 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현 여권이 미국 민주당의 전략을 그대로 사용하여 집권에 성공했던 반면 현 야권은 닉슨으로 대표되는 공화당의 남부전략과 정반대의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자신들의 지지층과 상대 정당 지지자들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아내어 이를 정당의 강령에 반영하고 널리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외면한 채 여권 성향 유권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만약 1968년에 공화당 대선 후보 닉슨이 미국 남부의 대도시 조지아주 애틀란타를 방문하여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사죄했다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을까?

"제가 공화당을 대표하여 남부 주민들께 에이브러햄 링컨의 잘못에 대하여 사죄 드립니다."

오히려 미국 남부 백인들 사이에 "우리가 100년 전 링컨의 만행을 벌써 잊어서야 되겠느냐? 미우나 고우나 남부 사람은 민주당에 투표해야 한다"라는 여론이 일어나면서 페미니즘과 동성애자 권익 보호에 반발하면서 시작되었던 남부 백인들의 공화당 지지 움직임은 조용히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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