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의 효능 자체도 믿을 수 없다. 더구나 2회 접종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백신 패스’ 충족 횟수가 3회가 될지 5회로 늘어날지 알 수 없다. 목숨을 걸고 2회까지 접종했지만 언제 내가 이 사회에서 기피자가 될지 알 수 없다. 접종 미비 때문에 언제 내가 사회 생활을 박탈당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정치적인 문제까지 개입되어 있어 정부도, 의사도, 전문가도 믿을 수가 없다. 들려오는 얘기들이 중구난방이라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알 수도 없지만 그들도 상황에 따라 말 바꾸기를 밥 먹듯이 한다. 복불복이다. 병 걸려 고통받고 죽은 사람만 손해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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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전 이런 일은 겪게 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인 60년을 넘게 살면서 이런 일은 정말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21세기에 역병 때문에 3년째 발이, 아니 온몸이 꽁꽁 묶이고 있다니.

내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콜레라나 장티푸스가 창궐하곤 했다.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법정 전염병’이라는 말의 무게로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전염병은 사라졌다.

조선 시대 아니 그 이전에도 역병은 있었다. 지금은 백신이나 치료약에 나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은 병들도 그때는 수많은 생명을 대책 없이 앗아갔다. 특히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이 돌면 온 마을이 전멸하다시피 했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 우물을 사용했고 그걸 끓여 마셔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대처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마을을 봉쇄하는 것. 그 안에 있는 환자는 물론 환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가둬서 격리하는 것이다. 못 빠져나온 멀쩡한 사람들은 미칠 지경이 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러다 찬바람이 돌면 역병은 제풀에 사라지고 마을에 삼엄하게 둘러졌던 가시 울타리가 걷힌다. 그제야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신을 거둬 불태우고 산 사람은 또 다시 삶을 이어가고…. 이렇게 하여 오늘까지 왔다.

그때는 방역이나 의료 상황이나 지금보다 훨씬 나빴지만 확실한 희망은 하나 있었다. 계절이 바뀌면, 기온이 내려가면, 시간이 흐르면 해결이 된다는 희망이었다. 사실 몇 달 전까지는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코로나19는 높은 온도에 취약하다더라. 여름이면 사그라들 것이다. 독감이나 인플루엔자 같은 유사 전염병도 겨울이 지나면 맥을 못 추었다.”

“국민의 일정 비율 이상이 백신을 접종하면 해결될 것이다.”

“백신을 맞으면 감염률을 상당히 낮출 수 있고 걸려도 그냥 가볍게 지나갈 것이다.”

“유럽의 어떤 나라들은 그냥 방치했는데 집단 면역이 형성되었다더라.”

“바이러스는 확산이 많이 되면 상대적으로 그 위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확진자가 늘어난다 해도 치명률은 높지 않다.”

“위드 코로나가 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내년 2022년에는 외국 여행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경기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런데 이 희망들은 모두 우리를 저버렸다. 작년 2020년 여름에는 정말 확진자가 조금 줄어들었다. 그런데 올여름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온도 상승에 적응한 듯하다. 전 국민의 80%가 백신 접종을 했다는데 확진자 수는 계속 신기록을 갈아치운다. 위력이 약해졌다고 하는데 위중 환자 비율도 점점 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맥없이 목숨을 잃고 있다. 거기다 백신 후유증 사망자까지 그 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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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역병 때문에 3년째 발이, 아니 온몸이 꽁꽁 묶이고 있다.

백신의 효능 자체도 믿을 수 없다. 더구나 2회 접종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2회였다가, 3회였다가, 4회, 5회, 6개월에 한 번씩으로 접종해야 하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다. ‘백신 패스’ 충족 횟수가 3회가 될지 5회로 늘어날지 알 수 없다. 목숨을 걸고 2회까지 접종했지만 그걸로는 언제 내가 이 사회에서 기피자가 될지 알 수 없다. 접종 미비 때문에 언제 내가 사회 생활을, 경제 활동을 박탈당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정치적인 문제까지 개입되어 있어 정부도, 의사도, 전문가도 믿을 수가 없다. 들려오는 얘기들이 중구난방이라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알 수도 없지만 그들도 상황에 따라 말 바꾸기를 밥 먹듯이 한다. 복불복이다. 병 걸려 고통받고 죽은 사람만 손해다.

2.

최근에 내가 관여하던 여행사가 문을 닫았다. 하긴 지난 3년 동안 문 닫은 여행사가, 문 닫은 업체가 그곳뿐이겠는가? 하지만 이 여행사 폐업 소식을 들었을 때 더욱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단지 내가 직접 관여했던 업체라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여행사도 비슷한 상황이었겠지만 그 여행사도 하늘길이 막힌 이후 거의 개점 휴업 상태였다. 직원을 다 내보내고 좁은 공간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젊은 대표는 버티고 또 버텼다. 그리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뜻을 같이하는 우리 몇몇은 당장은 실익이 없지만 그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힘을 보탰다. 관련된 온라인 강의를 하고 클럽을 만들어 고객들과 유대감을 키우고 몇 안 되는 유료 회원으로부터 들어오는 아주 적은 수익을 쪼개 나누면서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머지않은 시간에 이 상황이 끝날 것이다. 하늘길이 열리면 이미 확보된 고객들, 그것도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태우고 비행기만 타면 된다. 지금 힘들어도 그때를 대비하여 열심히 견디자.’

내가 소개한 어느 단체와 MOU를 맺을 수 있다는 희망에 여행사 대표는 신이 났다. 그 단체 대표가 부산 사람이라 만나려면 서울 올라올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내 말에 그는 활기차게 의욕을 나타냈다.

“제가 부산으로 내려가서 만나 뵙겠습니다.”

위드 코로나가 선포되고 얼마 안 지났을 때였다. 그땐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되어 상황은 급속도로 다시 나빠졌고 앞에 얘기한 그 모든 기대가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여행사 대표는 전격적으로 폐업을 결정했다. 그의 결정에 담긴 처절한 메시지가 말 안 해도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희망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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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암울한 상황에 시달리고 눈을 부릅뜨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3.

오래 전 읽은 알베르 카뮈가 쓴 소설 《페스트》가 생각났다.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에 덮친 페스트.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한 14세기도 아니고 20세기 중반인 194X년이다. 도시 오랑은 완전 봉쇄되고 그 안에 갇힌 시민들은 질병과 죽음과 그 외 여러 가지 부조리와 싸워야 했다.

실존주의 작가로 알려진 카뮈의 작품에서 ‘페스트’란 세상 모든 종류의 악을 상징한다. 죽음과 질병, 빈곤은 물론 전쟁, 전체주의 등 정치적 악까지 포함하고 있다. 심지어 집필 당시 전 유럽을 유린하던 나치를 상징한다고도 했다. 우리에게 닥친 모든 부조리가 ‘페스트’이고 거기에 굴하지 않고 대항하는 사람이 실존적 인간이다.

그런데 작품 해설에 나오는 그런 얘기 말고 소설 《페스트》의 결말이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모든 사람을 공포와 파국으로 밀어 넣었던 그 ‘상황’은 어떻게 종결되는지, 부럽고 간절한 마음으로 소설의 결말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다. 내가 그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찾은 인상 깊은 몇 구절을 소개한다.

“당국은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병세가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반대로 페스트는 며칠 동안 계속된 겨울의 첫 추위에도 물러감 없이 기승을 떨었다. 더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다림에 지치면 아예 기다리지 않게 되는 법이다. 모든 사람은 아예 미래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통계는 매우 낮은 선으로 떨어지고 현 당국은 의사회의 자문을 거쳐서 질병은 퇴치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 덧붙여 도시의 문(門)은 향후 2주일간 폐쇄 상태를 유지할 것이며, 예방 조치는 1개월간 더 계속될 것이고, 그 기간에 위험이 재발할 듯한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현재와 같은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당국은 발표했다.”

“도시의 문들은 2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 아침에, 시민들과 라디오와 현청 발표문의 축복을 받으며 마침내 열렸다. … 밤낮으로 성대한 축하 행사가 개최되었다. 기차는 역에서 연기를 뿜기 시작했고 머나먼 바다로부터 항해해온 선박들은 도시의 항구로 뱃머리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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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치사율이 아무리 낮다 해도 우리는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치닫고 있다.

어쩌다 그런 무서운 병이 그 도시를 덮쳤는지 알 수 없듯이 오랑의 페스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홀연 자취를 감췄다. 그 도시의 페스트는 인간의 힘으로 퇴치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것이 물러갈 때까지 살아남았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서로 도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페스트 상황 종결’ 이후에도 작가가 독자들에게 남긴 말이 더 있다. 예전 읽을 때는 미처 가슴에 담지 못한 구절이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경쾌한 환호성에 귀 기울이며 베르나르 리외(주인공, 의사)는 그러한 기쁨이 항상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환희에 찬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 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속옷들 사이에서 자면서 생존할 수 있고, 또한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나 손수건, 또는 휴지 같은 것들 틈에서 참을성 있게 살아남아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 쥐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페스트》 결말의 이 구절은 놀랍게도 독일인 호르스트 부르거가 쓴 《아버지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 마지막 부분의 ‘경구’와 거의 그 뜻을 같이한다. 《아버지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6세로 나치 치하에서 저항 없이 살았던 ‘아버지’에게 전후 세대인 아들이 던지는 질문과 그에 대한 ‘아버지’의 솔직한 대답이 담긴 책이다. 그 책에서 내가 찾은 ‘경구’는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란 모두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그래서 똑똑히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 시민이 불안에 떨고 비판의식이 사라져 그들을 이끌어줄 강력한 지도자를 바랄 때까지 전체주의자들은 길모퉁이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

아, 언제까지나 암울한 상황에 시달리고 눈을 부릅뜨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언제까지나 전쟁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처음부터 끝이 없는 싸움이었다는 말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 치명적 펀치를 날리고 있는 상대가 역병인지 전체주의자들인지 구분이 안 지어진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쨌든 피곤하다. 절망적이다.

키에르 케고르는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던가? 코로나19의 치명률이 아무리 낮다 해도 우리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치닫고 있는 건 아닐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찾을 수 없다면 말이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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