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칼럼] 진영화 된 정체성 정치...무한혐오와 배척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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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12.28 09:04:50
  • 최종수정 2021.12.2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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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다양성의 정치적 배분은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
전장이 되어버린 문화는 더 이상 문화일 수 없다
집단정체성 유지와 확산을 위한 투쟁은 혐오와 배척으로 이어져
선거 앞둔 정치적 내전 시기...파국의 위험 예감케 해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1. 현실, 갈라진 문화 진영의 사회

21세기 초에 세계화를 평평한 세계라고 설명한 주장이 있었지만 개방된 세계는 정체성 혼란과 갈등으로 얼룩진 주름잡힌 세계다. 고립과 독립을 주장하는 폐쇄적인 문화 집단이 만개한 세상이다. 다원주의의 전개는 사회를 세분된 집단으로 나누어서 문화적 다양성의 지형을 만든다. 놀이를 문화의 본질로 보고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을 설명한 호이징가의 주장이 생각나는 것은 놀이야 말로 문화현상과 사회적 유대관계를 설명하는 적절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함께 향유하는 놀이 현상은 고대의 아레나에서부터 근대의 관람 및 체육 시설까지 이어지는 놀이 공간과 네트워크상의 게임 등 콘텐츠 세상에서 확인된다.

즐거움의 공유와 이것이 형성한 유대가 보편 가치를 상실한 시대에 서로를 연결해주는 고리가 된다. 도시화가 확산되고 이주의 자유와 민주정의 진전으로 자유롭게 풍요로운 문화를 공유하는 환경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쉽게 소통하는 현상의 결과다. 동일한 문화 상품이 국경을 넘어서 서로를 연결하고 감성을 공유하며 문화를 함께하는 집단을 형성한다. 넷플릭스와 디즈니를 통해서 유통되는 영화나 케이팝은 전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가 되었다.

취향의 공감적 유대의 집단이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은 자기 집단만의 문화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음악이나 영화 감상, 지식이나 정치적 의견의 교류, 종교적 가르침의 공유에서 시작하는 공감의 공유가 내면의 정체성을 일깨우며, 그들만의 고유한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집단이 자기 정체성을 확고화하면서 집단의 관점과 태도로 세상에 대응하는 문화 정체성 집단이 된다. 네크워크 사회에서 선호에 따른 연결이 만드는 필터버블 현상은 문화적 집단 정체성을 폐쇄적으로 만들고 정보 편향이 지속되면서 집단은 세상이나 다른 집단과는 구분되는 특성을 갖게 되고 긴장 관계를 야기한다.

2. 문화정치

문화는 집단의 유지와 확장이라는 활동의 중요한 수단이다. 문화 집단이 자신의 독자적 성향과 방향성을 가지고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와 투쟁할 때에 그 문화는 정치 수단이 된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확산시키는 교육과 선전은 문화의 형태로 전파된다. 미학은 정치 철학을 대체하고 예술은 동일성의 기준을 내세우는 광고가 되며 문화는 선동의 방법이 된다. 문화정치는 공통의 감정을 만들고 이성을 장악하며 행동을 제어한다. 혐오하거나 좋아하기 위해서 기억하고 학습하는 과정과 실천으로서의 대립을 통해서 집단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문화정치에서 문화는 정치적 수단이다. 최근 중국의 공자학원은 타문화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과거 중국 문화대혁명은 대내적인 문화정치 현상이다. 모택동의 권력투쟁의 수단이었던 문화대혁명기 수난사를 중국 지식인 계선림은 10년대재앙이라고 불렀는데, 외적인 것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질서를 파괴하는 지독한 재앙이었기에 적절한 표현이다. 집단 정체성을 보존하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현실을 가리고 선전 선동과 억압으로 차이를 부정하며 변화를 거절하면서 외부의 현실과 맞서서 모두를 집단의 정체성 안으로 몰아넣는 것은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에 대한 폭력이며 모두에게 재앙이다.

3. 문화권력

문화의 정치화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힘의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권력은 대립되는 것과의 대결로 행사되므로 대결의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선한 일을 한다는 신념을 기초로 하여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의 장으로 만들어 적과 동지의 구분이 설정된다. 선악의 구도화를 위해서 윤리나 종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경우에도 모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익숙한 문화 환경을 근거로 하여서, 익숙한 것은 선하고 낯선 것은 악하다는 구분법을 만들어서 다툼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체성의 기획은 권리를 확보함으로써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자 한다. 근대는 종교적, 관념적, 추상적인 권리를 구체적인 권리로 전환하고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창설하였다. 권리는 확장되고 세분화되면서 권리로서 확보된 지위는 힘이 된다. 문화 다양성은 문화 정체성을 권리화한다. 국가는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서 문화국가를 표방하면서 고유한 국가 정체성을 개발하고자 하지만 다원주의의 진전에 따라 국경내의 다양한 정체성의 분화는 통합을 어렵게 하고 국가는 세분화된 문화정체성 집단의 연합체가 된다. 지역 기반의 집단이더라도 오늘날의 지역성은 문화에 의해서 표방된다. 문화 다양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문화복지라는 형태의 시도는 문화권리화의 최종적인 형태다.

4. 문화전쟁

다양한 집단이 각자의 문화정체성을 확고한 권리로 주장하면서 문화집단은 권력이 된다. 문화 집단이 문화 정체성 보전과 확장으로 나아갈 때, 문화집단간의 권리와 의무의 조정이 어려워진 상황은 힘의 대결로 이어진다. 문화 연합의 국가내에서 문화 진영간의 대립관계는 중세 유럽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국경내의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의 범람은 오늘날 정체성 정치의 동력이 된다. 다양성은 풍요의 시대의 산물인데 풍요의 시대의 끝에는 전쟁 발발의 위기가 도래한다.

집단 정체성의 유지와 확산을 위한 투쟁은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기 위해서 대립의 장치로서 혐오와 배척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정치학은 옳음과 좋음을 구분하였지만 좋음이 옳음과 일치되는 시대에 정치는 좋고 나쁨이라는 편견의 보존이고, 자기만의 태도를 간직하려는 게으름이며, 자기 주장을 강요하는 억지이고, 다른 것과의 교류로 인한 변화를 거부하려는 고집이다. 다양성의 무지개가 아무리 아름답고 그럴듯하게 보여지더라도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배척하는 대립 상황의 지속은 바깥의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 고립으로서 변화의 물결을 따르지 못하면서 타인의 변화까지 저지한다.

진영화된 문화권력간의 투쟁인 문화전쟁은 문화 정체성의 대결이다. 문화 전쟁에서 문화는 프로파간다가 된다. 문화는 더 이상 교류가 아니며 설득과 양해와 화합은 없는 일방적인 선포다. 문화를 정치가 지배하고 관리할 때, 정치는 문화에 흡수되어서 소멸된다. 집단 정체성을 내세워 다른 문화와의 충돌로 인하여 공화국의 단일성과 독자성은 위기에 처한다. 정체성 집단간의 문화 전쟁의 상황에서 내일의 문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장이 되어버린 문화는 더 이상 문화일 수 없다.

5. 다양성은 어떻게 평등 및 자유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민주정은 문화다양성의 확대와 권리화로 말미암아서 증가하는 문화정체성 집단에 의한 정체성정치의 확산으로 정체성 혼란의 위기를 겪고 있다. 다시 권리 이전의 문화, 정치 이전의 문화로 돌아갈 수는 없다. 민주정의 현재의 질서체제로는 세계화된 도시안의 문화 집단 간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인한 문화충돌과 문화전쟁을 대처하기 어렵다.

확장된 권리로 인한 의무의 확장 및 증대로 인하여 권리와 의무를 조정하기 어렵다. 증대하는 의무로 인한 자율성의 제약과 권리 간의 충돌로 인한 자유에 대한 제한이 증가할 수 밖에는 없고 결국은 평등이라는 균형의 달성이 어렵다. 문화 정체성의 투쟁 상황은 재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에 복지 문제 이상의 난제 중 난제다. 문화 다양성의 정치적 배분은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었을까? 공존을 이룰 것이라는 공화국의 제도적 틀이라는 것은 근대가 만든 가치 체계와 함께 근대의 꿈이 아니었을까?

문화전쟁의 시대는 겪어야만 하는 변화의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집단을 단위로 생각하는 다양성과 국가 이상의 단위에서 도출되는 평등과 자유의 요구는 서로 충돌하여 해결방법이 보이는 않는 상황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두려움의 원인인 위험을 예견하게 된다. 정체성 정치가 만연한 시대에서 민주정의 지배층인 선거귀족은 오히려 그러한 혼란을 근거로 지위를 유지하는지 모르겠다. 파시스트에 의한 권력장악의 역사적 경험은 선거를 앞두고 민주정이 항시 겪게되는 두려움의 실체다.

정치가 모든 것이 아니며 유일한 해결방법이 아니고, 모든 것의 권리화가 권리로 인해서 궁극적인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문화 정체성이 정치 문제로서 해결해야만 하는 우리의 본질적인 과제가 아닐 수 있다. 자기 단위에서 권력을 내려놓거나 비정치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방법일까? 호이징가의 설명으로 돌아가서 문화를 놀이로 본다면 이러한 생각도 가능하겠다. 영구적인 놀이는 없고, 놀이를 보존할 의무도 없다. 풍요한 시대에 놀이는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무대의 장치는 현실과 유사한 경험을 주지만, 언제까지나 관람석에 앉아서 연극을 즐길 수는 없다. 연극은 언젠가 끝나고, 현실은 찾아온다. 순수한 유대관계만을 남겨두고 우리의 공간을 비워진 상태로 남겨둘 수는 없을까?

민주정의 승리 이후 기대에 찬 21세기의 평평한 세상의 꿈은 오히려 주름진 세계의 재발견이라는 현실을 맞이하였다. 어쩌면 근대의 꿈에 가려져 있었던 세상의 본래적 모습을 확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변화를 약속하는 선거를 앞둔 시기에 오로지 자기 집단의 정파적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오로지 상대방에 대한 비방으로 일관하는 정치 상황은 파국의 위험을 예감하게 한다. 극한 대결로 달려가는 정치적 내전의 시기를 살면서 언젠가는 끝날 연극에 취하지 말고 냉정한 현실을 돌아보면서 계속하여 질문을 던져야 하겠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前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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