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찍어내 정부지출하라는 MMT, 정통경제학계에선 이단아 취급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근로 의욕 자극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
정치인의 요설로 정신세계까지 황폐화..."세상에 거저는 없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의 경제정책 실패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갚은 성찰 없이 정책화한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마르크스 경제학에 기초한 외래종인 ‘임금주도성장’(wage led growth)의 ‘한국적 변용’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작명부터 잘 못 돼있다. 소득주도성장에서 ‘성장’은 소득증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소득이 주도하는 소득성장’인 셈이다. 주어와 목적어가 일체라면 ‘무엇이 다른 무엇을 견인 한다’는 주체와 객체 구분조차 불분명한 ‘암수한몸’인 것이다. 실패는 이미 내재화되어있다.

소득주도성장의 악몽이 채 잊혀 지기도 전에 ‘소주성’보다 더 맹독성의 외래종인 ‘현대화폐이론’(MMT: modern monetary theory)이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에 의해 거시경제정책 대안으로 한국에 상륙하려고 한다. MMT를 간단히 요약하면 ‘돈을 찍어내서 정부지출을 하라’는 것이다. 이재명에겐 복음으로 들렸을 것이다. MMT는 정통경제학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아 뿌리 내리지 못했지만 미국의 좌파 정치인, 민주당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과 ‘오카시오 코르테스’(Ocasio-Cortez) 하원의원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정체불명의 외래종의 국내 유입은 소득주도성장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대한민국이 이재명의 MMT 실험장으로 전락해서야 되겠는 가? 이재명의 정책사고를 비판하고자 한다.

O 이재명의 공약 1호 실종사건

‘△△ 실종사건’은 정치를 포함해 많은 분야의 패러디 소재가 돼왔다. △△에 ‘이재명 후보의 경제 제1 공약’을 넣으면 제격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후보가 되기 전부터 ‘기본소득’을 입에 달고 다녔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 후보로 지명된 그의 경제 1호 공약이 기본소득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1월 2일 가진 민주당 중앙선대위 출정식에서 ‘기본소득이 1호 공약이 아니라’고 했다 대신 1호 공약은 ‘성장 회복’이라고 했다. 그는 공약 1호를 ‘전환적 공정성장’으로 명명했다. 어떤 의미의 ‘전환적’인지 그리고 통상적 의미의 성장이 아닌 ‘공정성장’이 무슨 의미 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기본소득을 버릴 수 없는 그 이기에 ‘기본소득=전환적 공정성장 수단’으로 기본소득에 역할을 부여했다. 하지만 왜 기본소득이 공정성장의 수단인지 그 논거를 밝히지는 않았다.

소통을 위해서는 ‘용어’ 정의부터 오해가 없어야 한다. 소득은 통상적으로 ‘생산요소 소지자가 생산한 부가가치 중 그의 기여분을 현금화 한 것’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생산 활동의 결과물로서의 소득과 ‘기본소득에서의 소득’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은 당사자의 기여와 관계없이 ‘혈세(血稅)를 재원으로’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금환급’(negative tax)으로 표현해야 맞다. ‘보편적 세금환급’을 공정성장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그의 주장은 논리 비약이다.

이재명은 ‘국토보유세’를 걷어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부동산세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토보유세’는 생경스럽기 짝이 없다. 민간은 토지를 소유하면서 세금을 내는 것이지, 국토를 보유하면서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O 이재명, 기본소득제에 대해 충분한 숙지하고 있는 지?

스위스는 기본소득제 도입 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였다. 국민투표를 기획한 BIS(basic income Switzerland)는 “기본소득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로봇으로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안전판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6년 6월 5일 가구당 ‘월 300만원’(2500 스위스프랑)을 지급하는 안을 국민투표에 붙였는바 스위스 국민 77%가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해, 동 제안은 폐기됐다. 반대의 가장 큰 논거는 “국가가 돈을 ‘거저’ 주면 그만큼 세금을 더 걷어 간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도 주목할 만하다. 경제·사회 분야에서 실험을 하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실험의 조건’을 갖춰 정책효과를 정량화 했다. 핀란드는 ‘무작위로 선별한 25~58세 실업자 2000명에게’ 2017~2018년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0만원)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실험을 수행했다.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살려, 수혜자가 ‘구직활동을 하지 않거나 직업을 새로 구하더라도’ 기본소득을 계속 지급됐다.

실업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실업수당을 청구하는 것이다. 핀란드 실업수당은 1,000유로로 기본소득의 두 배이지만, 실업기간 동안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구직(求職)시 실업수당 지급은 중단된다. 실업자는 기본소득을 지급받거나 실업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다. 만약 기본소득을 선택한 실업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에 참여한다면 ‘기본소득제가 근로를 독려 한다’고 판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실험결과, 기본소득을 받은 실업자(실험군)는 2017년 구직활동을 통해 ‘49.7일’ 일했고 실업수당을 받은 실업자(대조군)는 ‘49.3일’ 일했다. 실험결과 “실업자의 취업과 기본소득(재정적 인센티브) 지급 간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과 ‘0.4일 차이’를 위해 기본 소득제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더 열심히 구직활동을 해 실업상태에서 벗어날 것’이란 기대가 현실세계에서는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기본소득제는 ‘복지개념’으로 인간의 근로 의욕과 동기를 자극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O 박근혜의 기초연금이 ‘기본소득’의 원조라는 이재명의 요설

이재명은 박근혜의 기초연금(2012년)이 ‘기본소득의 원조’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요설(妖說)이 아닐 수 없다. 연금이 성립하려면 소득을 벌 때 일정률로 소득을 떼어내 이를 적립해야 한다. 따라서 기초연금은 편의상 붙여진 이름이다. 정확히는 아동수당 같은 ‘노령수당’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금이라고 명명한 것은 수혜자의 품위 유지를 위해서였다. 노인석 대신 경로석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당시 기초연금은 사회·경제적으로 필요했다. 국민연금이 도입(1988년)된 역사가 일천해 ‘연금 혜택 없이 은퇴하는 사람들의 한시적 소득지원책’이 절실히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기초연금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차 감액되면서 국민연금에 흡수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기초연금과 기본소득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은 기본소득에 대한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해 견강부회를 서슴치 않은 것이다.

O 국토보유세 포기한 이재명의 믿는 구석

이재명은 11월 29일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국토보유세를 시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국토보유세는 기본소득의 재원이며, 기본소득은 공정성장을 위한 핵심적 수단이기 때문에 국토보유세를 포기하면 기본소득과 공정성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공정성장 공약의 기초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이재명이 이렇게 폭탄선언을 한 데에는 그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믿는 것은 MMT(현대화폐이론)이다. ‘국가 발권력’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화폐를 찍어낼 수 있고, 이를 기초로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추론된다.

이재명은 “개인은 부채를 못 갚으면 파산하지만 ‘국가부채는 이월 가능하다’고 서슴없이 주장한다. 부채를 어디로 이월한다는 것인가? 이월은 언어유희로 ‘부채누적’일 뿐이다. 부채를 누적한다고 해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참한 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베네주엘라는 지금도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현대화폐이론의 특징은 ‘정부와 중앙은행’을 사실상 ‘한 몸’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중앙은행에 인수시키면 통화는 그만큼 팽창한다. 이는 ‘부채의 화폐화’(monetarization of debt)로 익히 알려진 바이다. 정부가 화폐발행권을 가지며 중앙은행을 휘하에 두게 되면 ‘중앙은행의 정치적 중립성’은 지켜질 수 없다.

현대통화이론의 처방대로라면, 발권력을 이용해 국가가 개인의 부채를 갚아주어도 된다. 이재명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국가가 충분히 국채를 발행하지 않아 즉 빚을 충분히 내지 않아 개인이 빚을 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궤변이다. 국가가 빚을 진다고 개인의 빚이 어떻게 줄겠는 가?

우리나라에서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상황에서 ‘나 홀로 뒤쳐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fear of missig out), 영혼을 끌어 모으고(영끌) 빚내 투자해 (빚투) 잡을 구입하려 했기 때문에 빚을 진 것이다. 과거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었을 때에는 가계부채가 문제시 되지 않았다.

MMT는 오도된 ‘신(神)의 한수’를 강력하게 시사한다. 이재명도 스스로 신의한수에 갇혀있다. ‘제로(zero) 금리 영구채’를 발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제로 금리로 발행하면 국채발행에 대한 이자부담 지지 않아도 되고 영구채이면 상환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발행된 돈으로 경기를 부양하면 경기가 좋아지고 실업이 일소되어 경기가 선순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영구운동기계’는 없다. 예컨대 “발전기로 모터를 돌리고, 모터가 발전기를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MMT의 치명적 약점은 “인플레이션이 없다면”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없는 상황에서 통화를 풀어 경기를 진작시키면 국공채 매입을 통한 통화 공급과 달리 그 혜택이 ‘자산가가 아닌 일반 대중’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폐의 무제한 발행은 ‘통화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 자명하다. 인플레가 진행되어 가치 저장 수단으로 적합지 않은 화폐를 계속 들고 있을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 나라는 국제통화질서에서 배제된다. 베네주엘라 화폐를 외환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MMT 처방은 필히 통화증발을 유발하기 때문에 ‘기축통화국’에서 한시적으로만 운영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O 맺는 말: 세상에 거저는 없다

대한민국이 짧은 시간에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루이스(A. Lewis) 교수가 설파한 ‘경제 하려는 의지’를 온 국민이 공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정부에의 의존’이 ‘타성화’ 된 활력 잃은 국가로 전락했다. 정치인의 요설로 정신세계까지 황폐화되고 있다.

포퓰리스트 이재명에게 ‘부작용 없이 화폐를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다’는 MMT의 처방은 복음으로 들렸을 수 있다. 가짜는 ‘실패로 판명되기 직전’까지도 스스로를 새로운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바보는 가짜를 철석 같이 맹신하고 있다. 돈을 찍어 헬리콥터로 살포한다고 성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은 ‘투자에 의해 견인되고 혁신에 의해 추동’된 결과이다. 경제는 정치가의 자비심과 선의(善意) 아니면 정반대대로 요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땀과 눈물에 기초한 정직함이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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