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BS 제공
사진=TBS 제공

방송인 김어준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후보 공개 지지선언은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훼손한 중대사건이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24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재명 후보는 혼자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돈, 줄, 백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 실력으로 돌파하는 길을 가는 사람은 어렵고 외롭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도와줘야 한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특정후보를 공개 지지한 것이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공개지지 입장을 밝힌 김씨를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선거캠프로 가라”고 반발했다. 오죽하면 김씨의 이재명 후보 지지선언에 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경선 도중 다른 후보 캠프가 강하게 반발했을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이상민 국회의원은 김씨의 이재명 공개지지에 대해 “민주당에 대해 오히려 염증이나 혐오감만 불러일으킨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 사태와 관련하여 시민단체의 비판과 TBS(교통방송) 내부의 반발도 있었다. 특정후보를 공개 지지한 김씨가 TBS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계속 진행한다면, 프로그램은 형평성ㆍ균형성ㆍ공정성을 상실할 따름이다. 김어준은 프로그램의 진행을 하루 속히 그만두는 것이 시ㆍ청취자를 위한 도리일 것이다.

방송심의규정들은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에 대해 엄격한 공정성 의무 부여

우리 선거관련 방송심의규정들은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에 대해 엄격한 공정성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강택 TBS 대표는 김어준씨의 이재명 후보 지지발언에 대해 서울시의회 의원이 질의한 답변에서 “뉴욕타임스나 CNN은 선거철이 되면 공개적으로 ‘누구를 지지한다’고 한다”며 김씨의 이재명 지지선언을 두둔해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미국의 언론기관 뉴욕타임스나 CNN은 공공기관의 지원이나 공적재원으로 운영되는 공영미디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TBS와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TBS는 서울시민의 세금이 지원되는 공영방송이다. 더구나 선거기간에 공영방송은 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준수하도록 요구받는다. <공직선거법> 제8조는 ‘언론기관의 공정보도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방송심의규정> 제13조(대담ㆍ토론프로그램 등)는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은 형평성ㆍ균형성ㆍ공정성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방송심의규정> 제21조(후보자 출연 방송제한 등)는 “방송은 특정한 후보자나 정당에 대한 지지를 공표한 자 및 정당의 당원을 선거기간 중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출연시켜서는 아니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우리 선거관련 방송심의규정들이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에 대해 엄격한 공정성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다.

공영방송 진행자 김어준의 특정후보 지지는 일개 유튜버와 달라

대부분의 공영방송은 임직원 및 출연자의 공적 발언에 대한 제반 규정을 두고, 출연자에게도 그 방송사 임직원에 준하는 수준의 품위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공영방송 KBS는 사내규정, 취업규칙, 윤리규정 등에서 KBS의 모든 구성원이 공공성ㆍ공정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KBS 임직원은 정치활동ㆍ정치단체 참여가 금지된다. 즉,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지 않으며, 정치나 정치조직을 위한 활동은 하지 않는다. 그 밖의 특정 이익집단을 위한 방송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김씨가 일개 유튜버라면 특정후보를 지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현재 TBS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공영방송 구성원이기 때문에 갖는 사회적 책무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특정 대선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김씨는 TBS로부터 매월 4천만원, 연봉으로 5억원에 달하는 출연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 연봉이면 공영방송사 최고위 임원의 수준을 능가한다. 일각에서 “김어준씨가 방송이 아닌 유튜브에서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논리로 김씨의 일탈을 변호하고 있으나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런 김씨에게 방송진행의 공정성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하다. 진행자는 방송사 프로그램의 얼굴이다. 공영방송 KBS <방송제작가이드라인>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출연자ㆍ진행자와 해설자에 대해서도 공공성ㆍ독립성ㆍ객관성 유지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동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프로그램의 제작자는 방송에 앞서 출연자들에게 KBS가 요구하는 품위를 지키도록 설명할 의무가 있다. 영국 공영방송 BBC <소셜미디어 지침(Guidance: Social media)>에 따르면 “BBC 직원 개인 SNS의 모든 활동은 BBC의 불편부당성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특히 “SNS 상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 공영방송들은 출연자의 공적 발언이 그 방송사의 의견으로 오해되어 공영방송의 신뢰도와 평판을 저해하지 않도록 규정과 지침을 제정하여 운용하고 있다.

TBS 김어준 교체가 대통령 선거방송의 공정성 훼손을 막는 첩경

TBS 진행자 김어준의 이재명 후보 지지선언 사태는 공영방송이 그 제도의 설립목적에 따라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씨의 특정후보 공개지지로 방송 공정성이 훼손되었다면 TBS 제작자는 방송제작가이드라인을 준수했는지, 심의기능은 제대로 작동되었는지, <방송법>에 의해 설치된 시청자위원회가 프로그램에 관한 의견제시 또는 시정을 적절히 요구했는지, 감독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심의위원회가 제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점검해보면 문제점을 찾아 바로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의 어느 한 단계에서만이라도 게이트키핑(gate keeping)을 제대로 했다면, TBS의 방송 공정성 훼손을 방치하지 않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데올로기(ideology)가 지배하면 사실은 밀려난다고 했다. 이번 TBS 사태는 공영방송 거버넌스의 행위자들이 집단적으로 진영 이데올로기에 함몰되면, 공영방송의 게이트키핑 기능을 형해화(形骸化)시킬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필자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내용을 팩트체크 해보니 부조리(不條理)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김씨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으로 선거방송의 정치적 형평성을 초월적(超越的)으로 위배했다. 선거기간의 불공정방송은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 김씨는 더 이상 TBS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아서는 안 된다. 자진 사퇴하는 게 수순이다. 그렇지 않다면 서울시와 TBS가 진행자를 교체하는 것이 대통령 선거방송의 공정성 훼손을 막는 첩경이 될 것이다.

객원칼럼니스트 황우섭 (전 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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